9월, 2024의 게시물 표시

바울이 강론한 하나님 나라

  바울이 강론한 하나님 나라     사도행전 19장 8절『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19장에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핵심 사역인 에베소 개척 사역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약 3년간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이 기간은 바울의 선교 사역이 꽃을 피운 기간이었다. 바울은 두란노서원에서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날마다 말씀을 강론했다. 그랬을 때 온 아시아 사람들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다 복음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마술사들이 회개하고 마술 책을 불태우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바울이 강론한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내용인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전후의 이야기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첫째는 성령세례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도행전 19장 1-2절에서  『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 어떤 제자들은 아볼로의 제자들이다. 바울이 성령에 대해서 그들에게 물었는데,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볼로는 성령에 대해서 알고, 다만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 제자들은 왜 성령에 대해서 모르는가? 기독교의 핵심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신앙이다. 그런데, 성령을 모르는 것은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아볼로가 교회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성령에 대해서도 듣지도 못한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의 많은 교역자와 신자들이 이와 같을 것이다. 19 장 4-5절『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세례는 성령세례, 곧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되는 자에게 하나님이 성령으로 새생명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삼상 5장 1-12)   1-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에는 다곤이라는 우상이 있었다. 다곤이라는 우상 아래 여호와의 궤를 두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믿는 우상의 우월함을 나타내고, 또 여호아의 궤는 우상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곤은 물고기를 의미한다.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물고기 형상을 하는 그런 우상이었다. 그림을 통해서 보면, 상반신(남자의 형상)은 농경 사회를 나타내고, 하반신인 물고기는 해양민족으로서 사회를 반영한다. 농경사회에서 풍요를 기원하고, 해양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한 것이다. 오늘날 기복주의가 만연하는 그런 모습이기도 하다. 마태복음 6장 24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호와의 궤는 형상을 가지지 않고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말씀이 없는 교회는 마치 다곤과 같은 우상이 가득한 그런 곳이 되는 것이다. 말씀이 없는 곳은 십자가의 죽음과 현재적 부활이 없는 그런 곳을 의미한다. 3.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나팔)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나팔은 종이 주인에게 엎드리는 그런 모습이다. 다곤 신이 여호와 앞에 항복하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시 다곤을 세웠는데, 다곤이 쓰러진 원인을 몰랐기 때문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신으로 경배하는데, 그 신이 쓰러지고, 다시 세우는 것은 이미 신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우상의 본질이다....

왕 같은 제사장

  왕 같은 제사장   베드로전서 2장 9절『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게노스)이요 왕(바실레이온)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에드노스 하기온)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오스 에이스 페리포이에신)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게노스 (γένος) 는 민족 국가를 의미한다. 바실레이온 (βασ ί λειον) 은 왕가(royal)라는 표현이다. 왕가의 제사장은 다윗과 같이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에드노스 (ἔ θνος)   하기온 (ἔ θνος  ἅ γιον) 은 거룩한 나라다. 라오스 에이스 페리포이에신 (λα ὸ ς ε ἰ ς  περιπο ί ησιν ) 은 그의 소유가 되는 백성이다. 아레타스  (ἀ ρετ ὰ ς) 는 아름다운 덕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네가지로 말한다. 택하신 족속, 왕가의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했다. 동물을 죽여 그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므로 제사장이 죄인의 대리자로, 그리고 제사장은 하나님의 죄 용서를 주시는 은혜의 중보자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갔으며, 그 분이 또한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정체성을 말한 이유는 어두움에서 불러내고, 기이한 빛(하나님의 의)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의미를 깨닫는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면 어깨가 우쭐댈 정도가 되면 곤란할 것이다. 제사장은 죄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한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을 지키기만 하...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삼상 4:1-21)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하야, 야짜)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하야는 존재하다라는 말이고, 야짜는 나아갔다 라는 말이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충만하다라는 의미이다. 말씀이 충만하게 되면 전쟁이 일어난다. 이 전쟁은 하나님이 엘리 가문을 심판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었다. 블레셋은 아벡에 진을 쳤는데, 사울(삼상29장)이나, 엘리나 아벡 전투에서 모두 죽게된다. 하나님의 뜻은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하도록 하셨는데,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신도에게 있어서 옛사람이 전쟁에서 패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데, 신도들은 자가라는 옛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과 유사한 것이다. 전쟁에서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백성들은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신을 도구화 하는 것이다. 교회 신도들이 안수기도를 받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많은 헌금으로 보답한다.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기복신앙으로 뭉쳐져 있으면 교회가 아니라 점을 보며 복을 비는 무당과 같은 곳이 되는 것이다.   2-3.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의 의미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의 의미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을 자주한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는 대체로 세가지의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율법주의 시각이다. 둘째는 계명에 입각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다. 셋째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속에 의미를 깨닫고 행동하는 것이다. 첫째, 율법주의 시각에서 볼 때, 성경 66권의 모든 말씀에 비추어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열심히 노력해 보는 것이다. 비록 완전하게 말씀대로 살지는 못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 노력을 가상히 여기신다는 말씀이다. 율법주의를 기본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고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단지 내죄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것을 믿을 뿐, 온전히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나도 죽었음을 믿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 죄에 대해서 죽은 자이다. 세상(돈)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자들은 말만 그렇게 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을 하면서도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자들은 결국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계명에 입각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다. 요한복음 14장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그리고 14장 21절에서는『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모든 성경의 말씀은 결국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며, 이것을 깨달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된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면 결국 이웃 사랑이고 하나님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