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지파의 두 견해

 열두지파의 두 견해   민수기 14장 1-10절「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 이후에 빚어지게 되는 이스라엘 공동체 내의 갈등과 그에 따른 결과에 관한 내용이다.『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부정적이며 비관적인 보고를 접하게 된 이스라엘 회중, 곧 백성의 대표자들은 소리 높여 아우성을 쳤고, 그 소리를 듣게 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실망감에 밤새도록 통곡을 하였다. 열정탐꾼들의 하나님을 향한 눈이 감겨있었기 때문에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계시며 백성들을 보호해주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주시하던 열정탐꾼으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가 순식간에 절망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

(3) 창세전 그리스도의 예정과 택함

  (3) 창세전 그리스도의 예정과 택함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1장 1-2절의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헬라어 성경과 개역개정은 번역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다시 번역하면,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첫째 되시는 그 분 안에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계셨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이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되셨더라.』(헬라어 번역성경) 1장 1-2절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먼저, “ 첫째 되시는 그 분 안에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계셨고”에서, 첫째 되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셋째 부분에서, “ 하나님이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되셨더라” 말하자면,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말씀이다. 이는 빌립보서 2장 6절에서도 증거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첫째 부분과 셋째 부분 가운데, 둘째 부분이 핵심이다. “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창조하시고, 첫사람을 창조하시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예수 그리스도로서 사람의 몸을 통하여 태어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리스도가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요한복음 1장 3절에서 언급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으로 일으키시고, 하늘의 몸을 입혀서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신 것이다. 그를 믿고 그 속으로 들어오는 자는 모두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 인정하시며,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시켜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는 자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이다.에베소서 1장 4절에서『곧 창세 전...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민수기 13장 1-3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사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렙산을 떠난 지 11일 만에 약속의 땅 변경에서 멀지 않은 바란 광야에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 진을 쳤다. 여기서 백성들은 정탐꾼을 보내어 그 땅을 탐지하자고 모세에게 제의하였다. 모세는 곧 이 문제를 여호와 앞에 제출하여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고 이 일을 위하여 각 지파에서 족장 한 사람씩을 선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모세는 지시받은 대로 사람들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그 땅에 가서 그 위치와 자연의 이점과 거기 거하는 백성들의 강약과 다소를 살피되 그 땅의 토질과 비옥도를 살피고 그 땅의 열매를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민수기 13장 4-15절까지는 열두 정탐꾼의 명단이다. 이중에서 호세아가 포함되는데, 모세가 개명을 해준다. 13장 16절「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히브리어 여호수아는 헬라어로는 예수로 불린다.     민수기 13장 17-20절「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하작) 약한지(라페) 많은지(랍) 적은지(메아트)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토브) 나쁜지(라)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네겝은 히브리어로 네게브인데 팔레스타인의 남부지방의 ...

(2) 탕자의 비유

  1. 성경의 전체적인 그림으로 구원을 나타내는 것이 부족하다 (2) 탕자의 비유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의 아들이 재산을 상속해 달라고 했는데, 아버지로 부터 재산을 상속받아 나가서 방탕하게 살다가 재산을 다 날린 둘째 아들의 이야기이다.   아들이 재산을 다 날린 다음에 다른 나라의 돼지를 키우는 곳에서 쥐염나무의 열매를 먹고 살았다. 그때 기억난 것이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품꾼들은 이 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한 것을 기억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더니 아버지는 혼내지도 않고 뛰어가서 입을 맞추고 안아주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좋은 신발을 신기게 하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탕자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이 죄인이 되어 세상의 물질세상에 갇혀있다가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범죄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았지만, 죄를 범하므로, 세상이라는 옥에 갇혀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 회개케 하러 오셨다. 예수님이 탕자의 비유를 하신 이유는 탕자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자기의 의를 나타낸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하여 돌이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탕자와 같이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이들은 큰 아들의 모습으로 비유된다.   예수님 당시 큰 아들의 모습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사람들 중에 신앙생활에는 열심히 하지만 자기가 주인인 사람이 바로 ...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민수기 12장 1-3절「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이쉬)   모세는 온유함(아나브)이 지면의 모든 사람(아담)보다 더하더라(메오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하는데 대해서 반대했으나 그는 구스 연인과 결혼을 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비방하다 라는 말이 없다.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그들이 반대하다가 그가 그 여인과 결혼하므로, 그들이 모세에 대한 불만을 하나님을 향하여 돌린 것이다. 왜 모세를 통하여만 말씀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말씀하시지 않는가 라는 것이다.     아나브는 비천한, 온순한, 마음이 억압된 등의 의미를 갖는다. 메오드는 급속하게, 열렬하게, 매우 등으로 사용된다.  “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   이 말을 다시 번역하면,  “ 이 남자 모세는 억압된 마음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심각하더라 ” 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세상적으로는 여자가 필요한 남자라는 것이다.   모세는 이방여인인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의 딸 십보라와 결혼했다가 십보라가 죽자 다시 이방여인인 구스 여자와 결혼을 한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이방여인과 결혼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그가 율법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만 왜 말씀하시는가 불만스러운 말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을 하나님이 들은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역을 하느라,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남자라는 위치에서 아내를 챙기지 못한 탓으로 아내였던 십보라가 죽고, 이방 여인인 구스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모세의 입장에서...

(1) 하나님 나라에서의 이야기로 시작

  1. 성경의 전체적인 그림으로 구원을 나타내는 것이 부족하다. (1) 하나님 나라에서의 이야기로 시작 성경학자 루이스 뻘콥(번역 신윤복)이 지은 “기독교 신학개론”의 인간론(제1장 제1절)중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각 개인의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 세가지 이론이 있는데, 창조설, 선재설, 유전설이라고 말한다. 첫째, 창조설은 육체가 생길 때, 하나님이 영을 창조하셔서 육체에 불어 넣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영혼을 직접 창조하셨으며, 그리고 그 시간에 직접적인 창조행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영혼은 처음에는 순결하게 창조되지만 전인간성이 지니고 있는 죄의 구조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출생 이전에도 죄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학설은 하나님을 적어도 죄에 대한 간접적인 책임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순결한 영혼을 죄의 구조 속에 넣어서 마침내는 그 영혼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둘째, 선재설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을 육체에 가두는 것이다. 어떤 사변학자들은 사람의 영혼이 전세에 존재하였다는 점과 그리고 이전에 발생한 이 영혼들이 현재의 영혼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날 이 견해는 사람이 다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가장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학설은 거의 환영받지 못한다. 셋째, 유전설이다. 유전설은 부모로부터 육체를 받고 지식과 지혜가 자라면서 영혼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은 출생될 때, 육체와 함께 번식되며, 그러므로 그것은 부모에 의하여 자녀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육체와 영혼을 다 같이 죄있는 마리아에게서 받았다고 하면, 이 때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무죄성을 변호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이론적으로 가장 합당한 것이 두번째인데, 오늘날 대부분은 영의 창조설을 주장한다. 영과 육이 결합해서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영이 육체 와 결합...

나는 제대로 된 성경을 읽고 있는가?

  신도들은 성경은 왜 읽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구원에 대한 것을 찾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는 관점이 참 중요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세상이 완전한 창조였는데, 하나님이 아담에게 준 자유의지를 아담이 잘못 사용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와 교제를 하면서 영원히 지낼려고 했는데, 아담과 하와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으므로 그게 깨졌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세상을 멸하실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들이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고, 나아가 악한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 나가자라는 목표 아래 선한 행동을 해 나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선한 사람들이 노력하여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신도들은 깨달아야 성경을 바라보는 마음 자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도들이 어떻게 살것인가 라는 개선의 노력이 아니라, 세상에 살면서 자신이 죄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데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성경의 전체를 조망하고 성경 공부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구약성경을 배우고 공부할 때, 창세기의 주제인 베레쉬트가 태초에 로 번역된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마음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베레쉬트에 대해, 히브리어 사전을 통해서, 그리고 전체적인 문맥을 통해서 많은 연구를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베레쉬트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창세기 나아가 구약성경, 그리고 더 나아가 성경 전체의 주제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단어 하나가 전체적인 의미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