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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양과 염소의 비유

  (9) 양과 염소의 비유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 라는 삶의 실천에서 찾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이웃에게 어떻게 사랑을 실천했느냐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32-33절에서“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라고 말한다.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심판대 앞에 모을 것이며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삶의 모습대로 구분하여 심판할 것이라고 신도들은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 성경은 사랑의 실천을 권면하며, 이것이 두 종류의 구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의인과 악인,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 영생복락을 누릴 자와 지옥형벌에 처할 자로 구분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신도들은 받아드린다. 오른편에는 양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면회를 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웃의 아픔을 알고 찾아가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며, 이런 사람이 양의 편에 설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의인들이 주님께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주님께 물었더니, 주님은 소외된 이웃,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였던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의인들이 다시 묻는다. 주님, 내가 어느 때에 그렇게 했습니까,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말을 통해서 오늘날 신도들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주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주님께서 십자가에 대신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 주셨는데, 우리도 마찬가지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민수기 21장 11-20절「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을 떠나 오봇에 진을 쳤고 오봇을 떠나 모압 앞쪽 해 돋는 쪽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세렛 골짜기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아모리인의 영토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강 건너편에 진을 쳤으니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곳이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하였더라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이르렀고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렀더라」   오봇(히브리어 오보트)은 물병을 뜻하는 오브의 복수형으로“물 담는 가죽부대”를 뜻한다, 여기에 진을 쳤다는 것은 광야를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첫 진지로서 시작을 의미한다. 물은 하나님 말씀으로 물을 담은 가죽 부대는 하나님 말씀에 충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예아바림은 모압 동남편의 변방 불모지였고 모압과 에돔이 만나는 장소로서, 교차로의 폐허라 지칭한 대로 사람에 생존할 수 없었던 곳이다. 하나님 말씀에 충만한 자라도, 물없는 곳(말씀이 없는 곳)을 지날 때가 있는 것이다.   해 돋는편 광야란 요단 동쪽에 위치한 광야라는 뜻이다. 세렛 골짜기에서, 세렛은 긴 시내를 형성하는 지역으로 모압의 남동쪽을 지나 사해의 남동쪽으로 물줄기를 이룬다. 이스라엘은 이 세렛 시내를 건넘으로 비로소 광야 38년간의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8) 달란트의 비유

  (8) 달란트의 비유 달란트 비유는 주인이 각기 다른 달란트를 가진 세 종에게 맡긴 것과 종이 행동한 결과에 대한 주인의 칭찬과 비난에 대한 비유인데, 이 비유는 신도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상황에 있음을 나타내어 준다. 그래서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신도들은 하나님의 일과 봉사에 실제적으로 근면해야 할 필요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선을 위해 애쓸 것을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권고받고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달란트 비유는 마태복음 25장 14-18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있다.『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의미한다. 타국에 간다는 말은 이 세상에서 있다가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율법을 이루시고, 회개하는 자의 죄를 다 가져가신 것이다. 예수님이 타국에 가실 때 종들에게 맏겨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이다. 이 복음을 어떻게 전했느냐 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복음전하는 것을 장사로 표현했다.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를 주셨다”라고 말하는데, 재능대로는 헬라어로 두나미스(권능, 능력)라고 하는데, 인간의 재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병고치고, 각종 이적을 일으키는 것)을 따라 부활생명이 없는 것을 부활생명이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금 다섯 달란트에서 헬라어 성경에는 금이라는 표현이 없다. 달란트는 헬라어 달란톤(히브리어 키카르: 떡덩어리)에서 발전했다. 다섯 달란트는 둥근 떡이 다섯개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

불뱀과 놋뱀

  불뱀과 놋뱀   민수기 21장 4-9절「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이스라엘은 에돔의 방해로 인해 평탄한 왕의 대로가 있는 에돔 동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홍해의 길 즉 아카바 만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광야 길로 가기 위해 다시 바란 광야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스라엘은 이 광야를 통해 남쪽으로 계속 행군하여, 에돔의 서쪽 국경을 형성하며 남북으로 뻗어있는 세일 산을 지나, 아카바 만의 입구와 인접한 엘랏과 에시온 게벧 곁을 통과했다. 이렇게 우회한 이스라엘은 에돔의 동쪽지역의 광야길을 통하여 다시 에돔 북쪽의 모압 지역을 향하여 올라간 것이다.   이스라엘이 지름 길을 제쳐 놓고 고역스런 광야 길로 나서야 했기에 백성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노를 일으키고 말았다. 이러한 백성들의 원망은 죽음으로부터 그들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경륜을 멸시하고...

(7) 열처녀의 비유

  (7) 열처녀의 비유 마태복음 25장 1-13절의 열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대부분 신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깨어 있는 자는 천국에 데려감을 당하지만 깨어 있지 않은 자는 내버림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신랑으로 비유하면서, 신랑이 늦게 오므로, 기름이 다 타버리게 되자,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자는 천국 문에 들어가고,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으로, 기름은 성령이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원래 준비한 기름은 성령이지만, 추가로 준비하는 것은 신도가 준비해야 할 그 무엇이라는 말로 해석한다. 그 무엇은 신도가 신앙생활에서 하는 다양한 열심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들은 열심을 내어 하는 기도생활, 교회 생활, 봉사활동 등의 행동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마태복음 25장 1-2절에서,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라고 말한다.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신랑이 오는 것에 대해서, 대부분 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생각하며 심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성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심판이 아니라, 영적 혼인이며,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에게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임재의 모습인 것이다. 성도는 옛사람의 죽음으로 이미 심판받았으며, 그래서 부활생명을 받으므로,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열처녀가 가지고 있는 등불에 대해서 잘 이해하여야만 한다. 등불에서 나오는 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빛(부활생명)이다.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그리고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도『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은 세...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민수기 21장 1-3절「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아랏은 '야생 당나귀, 도망자'등의 뜻을 지닌 지명으로, 헤브론 남쪽 약 32Km지점의 네게브 사막 둥북부에 위치해 있었다. 호르산에 진치고 있던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을 통해 아랏의 영내로 진입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 통치자는 그들을 선제 공격하여 몇 명의 포로를 잡아갔다. 한편 여기서 아다림 길은 정탐의 길이란 뜻으로서, 이전에 이스라엘 열두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해 가데스로부터 남방(네게브) 길로 해서 헤브론으로 올라갔던 그 길이었다.   이스라엘은 아랏인들의 예상 못했던 공격에 극도의 분노틀 나타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선민으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여호와께 승리를 보장해 달라고 했다.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야드)에 넘기시면(나탄)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하람)” 야드는 손, 힘이 미치는, ~안에, 손을 들어 맹세하는 등의 의미를 갖는다. 나탄은 주다, 배당하다, 부여하다, 차지하다 등의 의미다. 하람은 바쳐진, 진멸되는 것, 그물 등으로 사용된다.   만일 주께서 넘기시면, 마치 희생 제물을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듯, 그 성읍에 속한 모든 것을 멸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맹세하였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바치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

(6) 천국 혼인 잔치에 대한 비유

  (6) 천국 혼인 잔치에 대한 비유 마태복음 22장 1-2절에서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비유의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과 악한 농부의 비유에 이어서 임금이 베푼 혼인잔치에 대한 비유를 하셨다. 비유의 내용은 누가 천국 백성인지 알리시기 위한 내용이었다. 결론적으로 임금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예복을 갖추고 참석하는 자가 천국 백성이라는 것이다. 줄거리를 보면, 임금이 혼인 잔치에 이미 초청한 사람들에게 종들을 보내서 준비된 잔치에 오라고 했는데 그들은 오기를 원치 않았다. 임금은 다른 종들을 보내 혼인잔치에 참여해 달라고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초대했다. 손님들은 세 번 초청을 받은 셈인데도 참석을 거부했다.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다는 것이다. 분노한 임금은 군대를 보내 종들을 살해한 자들을 멸하고 동네를 불사르게 했다. 그 후 임금은 종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다시 초청하도록 지시했는데, 혼인 잔치는 이미 준비되었고 시간은 급하므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큰 길로 나가 만나는 대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초대하게 했다. 종들은 누구든지 데리고 왔다.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들이나 상관없이 데려왔고 혼인 잔치는 손님들로 가득 찼다고 했다. 임금이 혼인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을 보려고 들어왔을 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 “어떻게 예복도 없이 이곳에 있을 수 있느냐” 라는 질문에,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임금은 일꾼들에게 만찬에 합당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결박해 바깥 어두운 곳에 내던지라고 명령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이 비유의 말씀을 두고, 신도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는 있지만, 택함을 입는 자는 적다고 생각한다. 예복을 입은 여부로 출입이 결정되는 것에 대해서, 초청부터 아들의 혼인 잔치가 열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