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신명기 15장 11-15절「땅(에레츠)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에비온)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에비온) 자와 궁핍한(아니) 자에게 네 손(야드)을 펼지니라(파타흐 파타흐)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이 글은 종에 대한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나, 영적으로 출애굽을 상징하며, 또한 사탄으로부터 자유함을 입는 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에레츠는 땅이지만, 세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에비온은 궁핍, 가난한 자, 부족하다, 거지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아니는 억압된 고통받는 자.   야드는 손, 수단, 방향을 의미하며, 파타흐는 열다, 해방시키다 등의 의미로서, 여기는 중복적으로 표현되었다. “네 손을 펼지니라”(파타흐 파타흐 에트 야드) 이 말은 “너의 권한으로 자유를 자유를 줄 것이라” 두번으로 강조한다.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육과 칠의 숫자가 등장한다.   육은 창세기 1장에서 짐승과 사람이 같은 날 창조되었는데,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돕는 베필이 오지 않은 존재가 바로 짐승이라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만날 때 사람(칠)이 되는 것이다. 육은 만남의 숫자이다. 육은 짐승을 의미하며, 불완전한 숫자인 것이다. 출애굽기 21장 2-3절에서『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의 기도와 엘리야의 기도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의 기도와 엘리야의 기도   야고보서 5 장 15-18 절『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성도는 현재 부활함을 믿는 자이고 , 그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져 그리스도가 호로고스로 임재하신 것을 믿는 자이다 . 그래서 성도는 프로슈케 기도를 한다 . 프루슈케 기도를 하지 않는 신도들은 초신자라고 말을 할 수 있다 . 심령 속에 호로고스의 임재하심으로 기도 ( 프로슈케 ) 하지 못하는 초신자들은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 육적으로 연약하여 항상 죄에 노출되어 있음을 기도하라는 것이다 . 그래서 죄로 오염된 육체가 병이 들었지만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의를 구한 것 같이 육체의 병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 기도하는 순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고 , 처음 믿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죄 사하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 병든 자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죄를 사해주심과 같이 병도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 이것이 믿음의 기도다 . 유케의 기도는 프로슈케의 기도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 서로 모여 기도할 때 ,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 유케의 기도는 프로슈케의 임재기도를 모르는 신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 』여기서 의인은 선지자 엘리야를 의미한다 . 엘리야가 기도하는 것은 프로슈케 ( 보좌에 나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 의 기도를 하는 선지자였다 .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신명기 15장 6-10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다바르)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다바르는 약속하시다, 언약하시다, 선언하시다 등의 의미다.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은 세상의 복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이 된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다.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아밭) 줄지라도 너는 꾸지(아밭) 아니하겠고” 아밭은 전당잡히다, 담보물로 주다 등이다.    전당잡힌 것은 종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바로 전당물에 대한 희생과도 같은 것이다. 전당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물로서 그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는 것이다.    위의 것을 다시 번역하면 “네가 여러 나라에 전당잡혀 줄지라도 이제너는 전당잡히지 아니하겠고” 다시 말해서 이전에 애굽의 종이 되었지만, 이제는 애굽으로부터 자유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영적으로 사탄의 종이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야고보서 5장 12절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 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여기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에서 헬라어 원문에는 생각이라는 단어는 없는데, 번역하는 자가 끼워넣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그러면 그렇다고 말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Yes(예), 하겠습니다』로 받아드리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No,(우리 말:예),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적 관습의 차이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그래서 호로고스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은 맹세가 필요없다.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자들이 맹세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3-37절에서도 맹세에 대해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맹세에 대해서 『지키라』는 것이 구약성경의 가르침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들이 자원하여 맹세하는 것은 금하지 않았으며, 만약 맹세했다면 반드시 지키라고 명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무지 하지 말라고 했으며, 심지어 악에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맹세 자체를 무조건 금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위선적 형식적인 맹세를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에게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을 자기들 편리한 대로 악용하는 잘못된 습관을 당장 그만 두라는 뜻이었다.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맹세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셨다. 그들은 금과 예물(성전에 바칠 헌물)을 걸고 맹세한 것은 꼭 지키되, 성전과 제단에다 대고 말로서 한 맹세는 꼭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금보다 성전이, 예물보다 제단이, 성전과 제단보다 하나님이 더 크다고 말했다. ...

면제의 규례

 면제의 규례 신명기 15장 1-4절「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아사 쉐미타)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카라 쉐미타 야훼)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아사는 행하다, 낳다, 부여하다, 새기다. 쉐미타는 떨어트리다, 보내다, 쉬게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샤맡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면제, 중지(안식) 등의 의미가 있다.  면제는 안식과 연관이 있다. 모든 백성들은 안식을 하지 못하므로, 안식에 대한 규정을 통해서 안식하라는 것이다. 칠일째 안식이라는 말은 창세기 2장 1-2절에서도 등장하는데,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의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천지와 만물에서 만물은 챠바(군대)이다. 군대는 천사를 의미한다.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다 편성이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범죄한 천사에 대해서 그들이 세상에 인간들이 되어 하늘의 군대와 마찬가지로 땅에서 하나님의 군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것이 천국을 이루는 것이고 칠일에 이루어진 것으로 안식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안식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안식하는 것이다. 안식하는 자는 하나님께 빚진 자가 된다. 그래서 그 빚진 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에서 다른 사람에게 빚을 탕감해 주라는 것이다. 이 말은 그들도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로 번역된 카라 쉐미타 “일명 야훼는 여호와의 면제로 부른다” 이다...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야고보서 5장 1-3절『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아게는 돌아오라 라는 의미다. 탈라이포리아이스 (ταλαιπωρ ί αι ς ) 는 비참함이다. 둘째 사망에 들어가 심판을 받는 비참함이다. 부한 자들은 탐욕에 찌든 교역자를 의미한다.   살(몸)이라고 번역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았다는 의미다. 무엇이 그렇게 했는가 하면, 탐욕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5장 4-5절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   세상에서 탐욕스럽게 부자가 되는 사람은 일꾼에게 정당한 삯을 주지 않고 착취하여 부를 획득한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도 하나님 말씀으로 신도들을 양육하지도 않으면서, 각종 명목으로 돈을 헌금하게 하여 자신들의 이익에 치부했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5장 6절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톤 디카이온은 표면상으로 의인으로 번역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율법주의 바리새인들이 십자가에서 죽였듯이, 교회 안에서도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에 물든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는 의미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을 대항하지 않고, 오래 참으사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5장 7-8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 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신명기 14장 21절「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스스로 죽은 모든 것은 먹지 말 것이나 그것을 성중에 거류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파는 것은 가하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여호와의 성민은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이다. 베드로전서 2장 9절『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게노스)이요 왕(바실레이온)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에드노스 하기온)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오스 에이스 페리포이에신)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네가지로 말한다. 택하신 족속, 왕가의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했다. 동물을 죽여 그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므로 제사장이 죄인의 대리자로, 그리고 제사장은 하나님의 죄 용서를 주시는 은혜의 중보자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갔으며, 그 분이 또한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거룩한 백성은 스스로 죽은 모든 것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거룩한 백성은 희생제물을 먹고 구별된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 희생제물을 먹으므로, 그것을 먹은 자도 희생제물이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려서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죽은 자가 다름 아닌 신도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저주를 받고 죽었지만, 성민으로서 부활생명을 받아 다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따라서 스스로 죽은 것을 먹는 것은 육적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며, 영적으로 구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임을 말해준다.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