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의 지팡이에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민수기 17장 1-13절)

아론의 지팡이에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민수기 17장 1-13절)   1-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 중에서 각 조상의 가문(마태)을 따라 지팡이(마태)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지어 모세를 거슬렀다. 고라와 그의 무리들은 이번 계기를 통해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자 하였고 높아지고자 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다며, 하나님의 뜻을 말하며 자신들을 정당화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 당 지음과 모세와 아론을 거스름은 모두 다 하나님의 뜻과는 달랐다. 하나님은 주관적인 욕망이 토대가 된 그들의 반란을 벌하셨고, 고라의 일로 인해 백성 중에 찾아온 염병으로 죽은 자만 만 사천칠백 명에 이르렀다. 실로 헤아리기 힘든 거대한 생명이 몰살이었다.   “각 조상의 가문(마태)을 따라 지팡이(마태)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히브리어 성경을 다시 번역해 보면,   ְ וְקַ֣ח מֵֽאִתָּ֡ם מַטֶּ֣ה מַטֶּה֩ לְבֵ֨ית אָ֜ב מֵאֵ֤ת כָּל־נְשִֽׂיאֵהֶם֙ לְבֵ֣ית אֲבֹתָ֔ם שְׁנֵ֥ים עָשָׂ֖ר מַטֹּ֑ות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모든 지도자에게서 각각 지팡이를 하나씩 취하여 그들로부터 그 지팡이 하나를 취하고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지팡이(마태)는 막대기 지팡이, 통치 등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가리킨다. 지팡이라는 단어의 마태가 가문이라고 번역된 것과 지팡이로 번역된 것에 혼역을 하므로...

(2) 죄에 대한 관점

  (2) 죄에 대한 관점 하이델베르그 교리 제 7문 에 의하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답은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불순종하여 타락함으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본성이 부패되어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교리는 죄를 인간의 부패한 본성으로 바라본다.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유전되고 이런 본성으로 태어나므로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어떤 행동 이전에 타락하게 만드는 요인을 죄로 규정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간음죄라고 했다. 이것은 탐심의 한 유형으로 성경에서는 탐심을 우상이라고 까지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탐심이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다음 세대에 전해진 죄의 유전설로 연결해서 교리 속의 탐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의 선재설을 근거로 보면, 탐심은 유전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진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 나라의 죄악으로 인해, 그 죄와 탐심이 심어진 것이다. 대를 이어서 유전된 것은 죄의 몸이 된다. 로마서 6장 6절에서 이것을 끊기 위해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함을 표현하고 있다. 교리에 의한 죄의 유전설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의식의 결여로 나타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하이델베르그 교리 제 9문 에 의하면,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지킬 수도 없는 율법을 규정하신 것은 부당한 처사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 답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인간이 악마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무분별하게 불순종함으로 자신은 물론 후손들까지 그 능력을 잃게 된 것이다.” 죄를 불순종으로 말하므로, 죄의 속성으로 부패된 마음이 불순종으로 발전하고, 결국 율법을 어기어 죄를 짓게 된다는 논리이다. 웨스트민스트 대요리 문답91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 답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그의 계시된 의지에 순종...

고라의 반역 (민수기 16장 31-50절)

 고라의 반역 (민수기 16장 31-50절)   31-35.그가 이 모든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이 섰던 땅바닥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 그 주위에 있는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 이르되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하였고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오십 명을 불살랐더라   이 장면은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이 불을 내려 심판하는 장면과 같은 것이다. 이를 불세례라고 한다. 오늘날 모든 신도들도 이와 같이 불세례를 맞는다. 그리고 불세례를 받은 자들이 회개하여 성령세례를 통해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불세례에 대해서 언급했다. 누가복음 12장 49-50절『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불세례는 육적인 죄의 몸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옛사람의 죽음이다.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오십 명을 불살랐더라” 이백오십 명은 다른 불을 분향한 자들이다. 다른 불은 성령의 불이 아니라, 자기들의 힘으로 만든 불을 의미한다. 자기의 의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백오십에서 이(2)는 나누어진 의미를 갖는다. 오는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 자를 상징하는 자들이다. 율법주의에 빠진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의로 이루려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죽어야 하며, 불세례를 받아야 하는 자들임을 나타낸다.   36-40.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명령하여 붙는 불 가운데에서 향로를 가져다가 그 불을 다른 곳에 쏟으라 그 향로는 거룩함이니라 사람...

3. 성경에 대한 교리의 모순이 나타난다 (1) 이중 전가 이론

  3. 성경에 대한 교리의 모순이 나타난다 (1) 이중 전가 이론 교리에 의하면 죄의 전가설(이중 전가)이 있는데, 죄인의 죄가 예수에게 전가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예수님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된다는 칭의이론이다. 죄의 전이설과 혼란이 있을 수 있는데, 아담으로부터 원죄가 다음 세대에 전이된다는 이론과는 다른 개념이다. 성경의 귀절은 고린도전서 5장 21절을 바탕으로 한다.『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신도가 본질적으로 죄를 전혀 안 짓는 완벽한 상태가 되어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루터의 표현대로 “우리는 의인이자 동시에 죄인이라는 것이다. 본질은 여전히 연약하지만, 그리스도의 완벽한 의의 옷이 신도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에, 법정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신도를 향해 "무죄, 그리고 의롭다"라고 선언해 주신다는 것이다. 이를 칭의라고 한다. 교리에 의한 칭의 이론은 첫째 아담 안에서 우리가 행하지 않은 죄로 인해 정죄를 받았던 것처럼,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 행하지 않은,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완벽한 의 덕분에 구원을 얻게 된 것이라고 한다. 칭의 이론에서 죄와 의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중 전가이론이다. 웨스트민스트 대요리 문답 70. “의롭다하심(칭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답은 다음과 같다. 『의롭다하심이란 죄인들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행위인데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자기 목전에 그들을 의로운 자들로 여기시고 받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행한 어떤 일로 인한 것도 아니나. 오로지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완전한 대속을 보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저희에게 전가시키고 오직 믿음으로만 받게 되는 것이다.』 교리는 하나님의 의가 예수님의 순종과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발생하며, 의가 전가되며 믿음으로 ...

고라의 반역 (민수기 16장 12-30절)

  고라의 반역 (민수기 16장 12-30절)   12-14.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셨는데, 광야에서 힘든 과정을 지내게 하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불평불만하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며 그래서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게 된다. 육적 눈으로 보면 가나안은 이방 민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싸워서 빼앗아야 하는 그런 땅이다. 그런데 저절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싸워서 차지할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한 것은 언약관계로서 가나안을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백성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언약의 씨가 있는 백성이라는 말씀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땅을 갈아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듯이, 언약의 백성으로서,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백성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반역하는 자들은 영적인 눈이 감겨져 버렸다. 오늘날도 천국을 죽어서 가는 낙원 정도로 생각하는 신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살아있을 때 이루는 것이다. 환란 가운데 복음의 씨를 던져, 씨를 맺게 하는 것이 바로 천국이라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는 농부와 같이 언약의 씨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언약의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7)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의 끝이다

  (7)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의 끝이다 창세기 1장을 읽다보면,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태초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아득한 과거, 선사시대 이전의 그 무엇을 생각한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 공부를 하다가 태초라고 번역된 베레쉬트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로 인해서 큰 혼란을 겪은 일이 있었다. 베레쉬트가 태초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 창세기 1장 1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태초라고 번역된 베레쉬트(בְּרֵאשִׁ֖ית)는 접두사(בְּ)가 붙어 있는 명사형으로서 영어의 in the beginning이 아니라 lead, head 라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베레쉬트는 그리스도이시다. 베(בְּ)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이고, 레쉬트는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 질서적인 순서를 의미한다. 히브리어 문법은 동사+주어+목적어로 이루져 있는데, 이 문장은 베레쉬트를 말하고자 하므로, 베레쉬트와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에트 하에레츠” 사이의 목적격 관계 대명사가 생략된 것이다. ​ 베레쉬트가 어떤 분인가 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Bereshit (whom)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이를 번역하면, 성전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그 하나님이 천국과 이 땅을 창조하셨다 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동등한 분이라는 것이다. 번역을 하면 그리스도 그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와 육체를 만드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육체가 되어 그리스도로 나타내셨다는 표현이다. ​ 요한복음 1장 1절에서『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 엔 아르케( Ἐν ἀρχῇ )는 태초가 아니라, 히브리어 베레쉬트와 같은 개념으로 성전의 머리되시는 분이다. 성전의 머리되시는 분은 호 로고스이다 라는 것이다. 베레쉬트는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 따라서 베레쉬트는 창세기의 주제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나타낸다. 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