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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부와 성자와 성도의 관계를 통한 성경 해석이 부재하다 (1) 삼위일체

  5. 성부와 성자와 성도의 관계를 통한 성경 해석이 부재하다 (1) 삼위일체 교리에 의하면 삼위일체는 한 분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면서도 본질적으로 하나이심을 나타내는 기독교 핵심 교리라고 말하지만 다양한 해석이 있다. 삼신론, 양태론, 양자론 등이다. 그 중 양태론은 하나님이 시대에 따라 성부 성자 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한 인격의 한 하나님이라는 이론이다. 구약의 시대에는 성부로, 신약의 시대에는 성자로, 신약 이후에는 성령으로 활동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교회 신도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삼위일체에 대해서 성경에서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다만 성경의 어떤 구절을 삼위일체와 연관되는 것으로 학자들은 말하기도 한다. 마태복음 28장 19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라고 말하므로, 이게 삼위일체의 모습이라든가, 고린도후서13장 14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하므로 성도에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에서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며, 성부와 성자의 협력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심을 나타내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들 성경 구절은 일체를 명확히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에서 우리는 일체의 의미를 담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의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은혜의 사다리, 하나님의 역할, 하나님의 의, 거룩 등이다. 삼위일체는 삼위가 어떤 의미로 일체를 나타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고, 또 일체가 한분의 하나님으로부터 나타난 것이라는 설명에는 도움이 되지만, 단순히 삼위가 한분의 하나님이라고 하므로, 삼위를 하나님과 동격으로 만드는 이론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 문제의 대표적인 것이 삼신론이다. 삼신론은 세 위격의 세 하나님이라는 이론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서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서   민수기 21장 21-30절「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리이다 하나 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의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그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 이스라엘이 이같이 그 모든 성읍을 빼앗고 그 아모리인의 모든 성읍   헤스본과 그 모든 촌락에 거주하였으니 헤스본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도성이라   시혼이 그 전   모압   왕을 치고 그의 모든 땅을 아르논까지 그의   손에서 빼앗았더라 그러므로 시인이 읊어 이르되 너희는   헤스본으로 올지어다   시혼의 성을 세워 견고히 할지어다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삼키며   아르논 높은 곳의 주인을 멸하였도다 모압아 네가 화를 당하였도다 그모스의 백성아 네가 멸망하였도다 그가 그의 아들들을 도망하게 하였고 그의 딸들을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포로가 되게 하였도다 우리가 그들을 쏘아서   헤스본을   디본까지 멸하였고   메드바에 가까운 노바까지 황폐하게 하였도다 하였더라」   “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 아모리 족속은 에돔과 모압 족속과는 달리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었다. ...

(9) 양과 염소의 비유

  (9) 양과 염소의 비유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 라는 삶의 실천에서 찾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이웃에게 어떻게 사랑을 실천했느냐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32-33절에서“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라고 말한다.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심판대 앞에 모을 것이며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삶의 모습대로 구분하여 심판할 것이라고 신도들은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 성경은 사랑의 실천을 권면하며, 이것이 두 종류의 구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의인과 악인,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 영생복락을 누릴 자와 지옥형벌에 처할 자로 구분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신도들은 받아드린다. 오른편에는 양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면회를 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웃의 아픔을 알고 찾아가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며, 이런 사람이 양의 편에 설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의인들이 주님께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주님께 물었더니, 주님은 소외된 이웃,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였던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의인들이 다시 묻는다. 주님, 내가 어느 때에 그렇게 했습니까,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말을 통해서 오늘날 신도들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주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주님께서 십자가에 대신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 주셨는데, 우리도 마찬가지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민수기 21장 11-20절「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을 떠나 오봇에 진을 쳤고 오봇을 떠나 모압 앞쪽 해 돋는 쪽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세렛 골짜기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아모리인의 영토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강 건너편에 진을 쳤으니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곳이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하였더라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이르렀고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렀더라」   오봇(히브리어 오보트)은 물병을 뜻하는 오브의 복수형으로“물 담는 가죽부대”를 뜻한다, 여기에 진을 쳤다는 것은 광야를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첫 진지로서 시작을 의미한다. 물은 하나님 말씀으로 물을 담은 가죽 부대는 하나님 말씀에 충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예아바림은 모압 동남편의 변방 불모지였고 모압과 에돔이 만나는 장소로서, 교차로의 폐허라 지칭한 대로 사람에 생존할 수 없었던 곳이다. 하나님 말씀에 충만한 자라도, 물없는 곳(말씀이 없는 곳)을 지날 때가 있는 것이다.   해 돋는편 광야란 요단 동쪽에 위치한 광야라는 뜻이다. 세렛 골짜기에서, 세렛은 긴 시내를 형성하는 지역으로 모압의 남동쪽을 지나 사해의 남동쪽으로 물줄기를 이룬다. 이스라엘은 이 세렛 시내를 건넘으로 비로소 광야 38년간의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8) 달란트의 비유

  (8) 달란트의 비유 달란트 비유는 주인이 각기 다른 달란트를 가진 세 종에게 맡긴 것과 종이 행동한 결과에 대한 주인의 칭찬과 비난에 대한 비유인데, 이 비유는 신도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상황에 있음을 나타내어 준다. 그래서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신도들은 하나님의 일과 봉사에 실제적으로 근면해야 할 필요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선을 위해 애쓸 것을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권고받고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달란트 비유는 마태복음 25장 14-18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있다.『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의미한다. 타국에 간다는 말은 이 세상에서 있다가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율법을 이루시고, 회개하는 자의 죄를 다 가져가신 것이다. 예수님이 타국에 가실 때 종들에게 맏겨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이다. 이 복음을 어떻게 전했느냐 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복음전하는 것을 장사로 표현했다.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를 주셨다”라고 말하는데, 재능대로는 헬라어로 두나미스(권능, 능력)라고 하는데, 인간의 재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병고치고, 각종 이적을 일으키는 것)을 따라 부활생명이 없는 것을 부활생명이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금 다섯 달란트에서 헬라어 성경에는 금이라는 표현이 없다. 달란트는 헬라어 달란톤(히브리어 키카르: 떡덩어리)에서 발전했다. 다섯 달란트는 둥근 떡이 다섯개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