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민수기 12장 1-3절「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이쉬)   모세는 온유함(아나브)이 지면의 모든 사람(아담)보다 더하더라(메오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하는데 대해서 반대했으나 그는 구스 연인과 결혼을 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비방하다 라는 말이 없다.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그들이 반대하다가 그가 그 여인과 결혼하므로, 그들이 모세에 대한 불만을 하나님을 향하여 돌린 것이다. 왜 모세를 통하여만 말씀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말씀하시지 않는가 라는 것이다.     아나브는 비천한, 온순한, 마음이 억압된 등의 의미를 갖는다. 메오드는 급속하게, 열렬하게, 매우 등으로 사용된다.  “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   이 말을 다시 번역하면,  “ 이 남자 모세는 억압된 마음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심각하더라 ” 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세상적으로는 여자가 필요한 남자라는 것이다.   모세는 이방여인인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의 딸 십보라와 결혼했다가 십보라가 죽자 다시 이방여인인 구스 여자와 결혼을 한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이방여인과 결혼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그가 율법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만 왜 말씀하시는가 불만스러운 말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을 하나님이 들은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역을 하느라,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남자라는 위치에서 아내를 챙기지 못한 탓으로 아내였던 십보라가 죽고, 이방 여인인 구스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모세의 입장에서...

(1) 하나님 나라에서의 이야기로 시작

  1. 성경의 전체적인 그림으로 구원을 나타내는 것이 부족하다. (1) 하나님 나라에서의 이야기로 시작 성경학자 루이스 뻘콥(번역 신윤복)이 지은 “기독교 신학개론”의 인간론(제1장 제1절)중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각 개인의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 세가지 이론이 있는데, 창조설, 선재설, 유전설이라고 말한다. 첫째, 창조설은 육체가 생길 때, 하나님이 영을 창조하셔서 육체에 불어 넣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영혼을 직접 창조하셨으며, 그리고 그 시간에 직접적인 창조행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영혼은 처음에는 순결하게 창조되지만 전인간성이 지니고 있는 죄의 구조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출생 이전에도 죄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학설은 하나님을 적어도 죄에 대한 간접적인 책임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순결한 영혼을 죄의 구조 속에 넣어서 마침내는 그 영혼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둘째, 선재설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을 육체에 가두는 것이다. 어떤 사변학자들은 사람의 영혼이 전세에 존재하였다는 점과 그리고 이전에 발생한 이 영혼들이 현재의 영혼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날 이 견해는 사람이 다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가장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학설은 거의 환영받지 못한다. 셋째, 유전설이다. 유전설은 부모로부터 육체를 받고 지식과 지혜가 자라면서 영혼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은 출생될 때, 육체와 함께 번식되며, 그러므로 그것은 부모에 의하여 자녀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육체와 영혼을 다 같이 죄있는 마리아에게서 받았다고 하면, 이 때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무죄성을 변호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이론적으로 가장 합당한 것이 두번째인데, 오늘날 대부분은 영의 창조설을 주장한다. 영과 육이 결합해서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영이 육체 와 결합...

나는 제대로 된 성경을 읽고 있는가?

  신도들은 성경은 왜 읽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구원에 대한 것을 찾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는 관점이 참 중요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세상이 완전한 창조였는데, 하나님이 아담에게 준 자유의지를 아담이 잘못 사용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와 교제를 하면서 영원히 지낼려고 했는데, 아담과 하와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으므로 그게 깨졌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세상을 멸하실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들이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고, 나아가 악한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 나가자라는 목표 아래 선한 행동을 해 나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선한 사람들이 노력하여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신도들은 깨달아야 성경을 바라보는 마음 자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도들이 어떻게 살것인가 라는 개선의 노력이 아니라, 세상에 살면서 자신이 죄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데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성경의 전체를 조망하고 성경 공부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구약성경을 배우고 공부할 때, 창세기의 주제인 베레쉬트가 태초에 로 번역된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마음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베레쉬트에 대해, 히브리어 사전을 통해서, 그리고 전체적인 문맥을 통해서 많은 연구를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베레쉬트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창세기 나아가 구약성경, 그리고 더 나아가 성경 전체의 주제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단어 하나가 전체적인 의미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