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하는 이스라엘의 군대 (민수기 10장 11-28절)

  행진하는 이스라엘의 군대 (민수기 10장 11-28절)    11-13.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따라 행진하기를 시작하였는데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 여기서 둘째(2)라는 단어가 집중된다. 둘이라는 숫자는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창세기 1장 6-8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둘째의 둘(2)은 분리를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이 나뉘는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분리는 다시 하나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창조 둘째 날은 궁창 위의 물과 아래 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궁창 위의 물은 복음, 궁창 아래 물은 율법을 상징한다. 나누어지는 것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로 설명된다. 이외에도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하갈과 사라,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생명나무, 사람의 딸들과 하나님의 아들들, 쓴물과 단물, 미리암과 마리아, 메추라기와 맛나 등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시내 광야와 바란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여정 중 핵심적인 장소로, 시내 광야는 언약 체결과 율법 수여의 장소(약 1년 머묾)이며, 바란 광야는 38년 방랑의 중심지였다. 시내산에서 출발한 백성들은 바란 광야로 이동하여 가데스 바네아에서 불순종한 후 40년의 광야 생활을 겪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바란광야로 머문다.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길은 같은 길이지만, 행진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요한계시록 22장 5-12절「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어둠이 아니라 빛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 빛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와서 그 빛으로 부활한 자에게 세상의 왕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둠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죽어서 왕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부활한 자) 왕노릇 하는 것이다. 종은 하나님께 대하여, 왕노릇은 세상에 대해서 한다는 것이다. 만일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이런 일이 없는 것이다. 말씀들은 믿음과 진리의 존재들이다. 그래서 아들(종)이 된 자들을 의미한다. 톤 프뉴마톤 톤 프로페톤은 그 선지자들의 영들(복수)이다. 프뉴마톤은 복수이므로 각각의 영들이다. 그러나 단수로 사용되었다면 성령을 의미하게 된다. 우리말의 번역은 단수로 영으로 표현되었으나 번역의 오류다. 타퀴( ταχύ )는 급하게 라는 의미다. 에르코마이( ἔρχομαι )는 현...

나팔을 불어 행진하게 하다

나팔을 불어 행진하게 하다   민수기 10장 1-10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너희가 그것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크게 내지 말며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나팔을 불 경우를 몇가지로 구분해 두었다.  첫째, 회중 소집 및 진영 이동은 나팔 두 개를 짧게 불면 진영이 이동하고, 하나만 불면 지휘관(족장)들이 소집되었다.   둘째, 전쟁 시 경보로서 대적을 치러 나갈 때 나팔을 크게 울려 불면, 하나님께서 백성을 기억하고 적에게서 구원해주신다는 것이다.   셋째, 절기와 희락의 날을 기념하는 것으로 나팔절(7월 1일)을 포함하여 매월 초하루, 정한 절기,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릴 때 나팔을 불어 하나님 앞에서의 기쁨과 예배를 기념했다.   그래서 나팔은 시내산 강림과 같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구하는 신호였다.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은을 돌로 치면, 원래의 형태는 사...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요한계시록 22 장 1-4 절「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생명수 강의 근원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했다 . 창세기 2 장 에서 강의 근원은 에덴이라고 말을 한다 . 에스겔 47 장 5 절에서 "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 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 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 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 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 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 을 건너게 하시니   물 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 을 건너게 하시니   물 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 을 건너게 하시니   물 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 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 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 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니와 큰 강을 이루었다 . 에덴도 성전의 개념이다 .   성전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   22 장은   하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