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신명기 17장 1절「흠(뭄)이나 악질(토에바)이 있는 소와 양은 아무것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뭄은 육체적으로 도덕적으로 더럽히는 것을 의미한다. 토에바는 구역질 나는 것, 우상숭배, 가증한 것 등의 의미다. 흠이나 악질있는 소와 양은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다시 하나님 제단에 바치는 것을 의미하며, 가증한 일이다.   베드로전서 1장 19절에서「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흠있고 점있는 어린양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가짜 그리스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복을 주는 분이고, 문제 해결을 해주고, 세상 삶을 기쁘게 해 주는 분으로만 생각한다면 가짜 그리스도인 것이다.   오늘날 신앙에 있어서, 이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예수의 피로 죄를 사함받지만, 이는 영속성이 아니라,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예수의 피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신도들, 희생과 노력으로 예수를 닮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도들, 예수의 부활을 죽었던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신도들, 복음을 믿지만 율법의 계명도 철저히 행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신도들이 가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들이다. 즉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인 것이다.   가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가짜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사실상 사탄의 자식들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유대지도들을 향하여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2장 13-14절「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선한 ...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 놀라지 않으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 놀라지 않으면 베드로전서 3장 5-6절『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휘포타쏘메나이) 자기를 단장하였나니(에코스모운)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휘페쿠센)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 놀라지 않으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분이시다. 교회는 교회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지칭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주인이시고, 성도는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부부관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창세기 18장 12절『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아돈)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아돈은 주권자, 통제자, 주인 등의 의미를 갖는다. 아도나이는 아돈의 복수형으로서 주(LORD)로 읽힌다. 부녀들과 사라가 등장한다. 거룩한 부녀들은 남편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들을 의미한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님이라 불렀던 것은 아브라함을 그리스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죽은 자같이 되는 100세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을 두고, 죽은 자 같은 그의 남편 가운데서 새생명(이삭)이 태어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라는 선을 행하고 놀라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이었으며, 아브라함이 이를 행할 때,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녀도 부활을 믿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휘포타쏘메나이 (ὑποτασσόμεναι )는 복종하게 되며 라는 의미다. 에코스모운 (ἐκόσμουν) 은 단장하다 라는 의미다. 단장한다는 말은 주인에게 복종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너희는 선을 행하고(아가도포이우사이 ἀγαθοποιοῦσαι ), 두려운(포부메나이 φοβούμεναι ) 일에 놀라지(프토에신 πτόησιν ) 않으면.』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

자기를 위하여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주상을 세우지 말라

 자기를 위하여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주상을 세우지 말라   신명기 16장 21절「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לֹֽא־תִטַּ֥ע לְךָ֛ אֲשֵׁרָ֖ה כָּל־עֵ֑ץ אֵ֗צֶל מִזְבַּ֛ח יְהוָ֥ה אֱלֹהֶ֖יךָ אֲשֶׁ֥ר תַּעֲשֶׂה־לָּֽךְ׃   다시 번역해보면, “네 자신을 위하여 세운 여호와 하나님 제단 곁에 나무로 만든 아세라를 네 자신을 위하여 세우지 말라”   여기에 “네 자신을 위하여”라는 말이 두번이나 등장한다. 한번은 여호와 하나님 제단과 연결되고, 또 다른 한번은 나무로 만든 아세라와 연결된다. 여호와 하나님 제단과 나무로 만든 아세라 제단이 자기를 위한 제단이라는 것이다.   아세라는 가나안의 민족에 등장하는 여신으로 대지의 풍요를 상징하던 나무와 바다의 여신으로 여겨졌다. 아세라의 상징은 나무였는데 주로 한번에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아세라의 신목으로 여겨졌고 이 신목 앞에 사당을 세우거나 혹은 통나무로 재단을 세워 이곳에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점을 쳤다고 한다. 자신들이 섬기는 주신의 배우자가 바로 아세라라고 여겼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아세라의 남편에 해당하는 신은 바뀌었다. 따라서 자기를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은 그들이 생각하는 아세라 남편 격인 바알이 되는 것이다.   제단을 세우는 것도 자기를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신앙도 자기를 위한 신앙은 기복신앙으로 흐르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역시 자기를 위한 것이 된다. 자기의 죄를 없애고, 자기의 복을 빌고 하는 제단이다. 오늘날 대부분 신도들의 신앙이 이런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과 교회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 수많은 교회는 기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돈 많이 벌 수 있도록 기도하고, 대학입시 철이 되면 교회에서 ...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전서 2장 11절『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들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는 세상이 마치 광야 같은 삶이라는 의미도 있으나, 이면적으로는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나그네로 사는 자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파로이쿠스( παροίκους) 는 외국인, 여행자(순례자) 등의 의미다. 사르키콘 (σαρκικ ῶ ν ) 은 육체가 아니라, 육신(자기의 의)을 의미한다. 에피뒤미온  (ἐ πιθυμι ῶ ν ) 은 열정이다. 종교심에 불타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괴롭혔던 율법주의적인 열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프쉬케스 (ψυχ ῆ ς) 는 육적 생명(soul)이다.   육신의 의는 영을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생명을 깨끗하게 해야하는데, 인간은 스스로 깨끗하게 할 수 없다. 옛것은 죽고, 새로 다시 태어나야만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새로 다시 태어나는 생명을 신령한 영의 몸이라고 한다. 이전의 죽기 전의 생명을 육의 몸이라고 표현된다. 왜 생명이 죽고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가? 그 속에는 옛사람(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라는 우상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의(우상)를 이루려고 하는 것을 그만두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그들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를 이루려고 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의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칼렌 (καλήν) 은 가치있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아나스트로펜 (ἀ ναστροφ ὴ ν ) 은 『위에서 변화된』것이다. 위에서 변화된 것을 가치있게 가지라는 말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신명기 16장 18-20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각 성에서 열두 지파에 따라, 재판장과 그를 지원할 행정 관리들을 둔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예배와 죄 사함을 담당하는 영적 지도자였고, 재판관(사사)은 하나님이 세우신 군사적·사법적 정의를 실행하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신명기 17장 8-9절에 따르면 어려운 법적 분쟁의 최종 판결은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의 재판관이 함께 처리하여, 제사장적 재판 기능도 존재했다.   「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지를 네게 가르치리니」   예수님은 제사장이면서 재판관 역할을 하신다.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죄인을 대신해서 어린양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살을 태웠다. 어린양의 죽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재판관은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세상에 재림하셔서 재판관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성경은 세가지를 제시한다. 굽게(나타)하지 말고, 외모(파님)로 하지 말고, 뇌물(쇼하드)을 받지 말라는 것이다. 나타는 구부리다, 기울다 라는 의미다. 파님은 얼굴이다. 쇼하드는 뇌물, 선물, 보상을...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베드로전서 2장 1-2절『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로기콘 (λογικ ὸ ν) 은 로고스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말씀에서 나온 젖(생명)이다. 에피포데사테( ἐ πιποθήσατε) 는 갈망하다라는 의미다. 소테리안 (σωτηρίαν) 은 구원으로 번역되었지만, 문맥상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것에 이른다는 의미다. 결국 하나님 나라 상속자가 되도록 순전하고 생명이신 하나님 말씀을 먹으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3-5절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돌은 성전을 건축할 때 사용하는 돌을 의미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돌로 지어졌다. 그런데, 그 돌은 생명이 없는 돌이다. 생명이 있는 돌이 산 돌이다. 생명이 있는 성전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도 안에도 성령이 임하시는 성전이 있다. 그리고 성도들 간의 공동체가 교회로서 성전이다. 교회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 간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성도들도 산 돌과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라는 것이다. 멘  (μ ὲ ) 은 참으로 라는 말이다. 크레스토스( χρηστ ὸ ς ) 는 은혜로우심이다. 프뉴마티카스 (πνευματικ ὰ ς) 는 영적인, 뒤시아스 (θυσίας) 는 제물이다. 성도는 자신을 영적 제물로 드리는 자가 된다. 거룩한 산 제물인 것이다. 그래서 제사장이 된다. 만인제사장이라는 말은 성도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목회자만 제사장이고, 신도들...

칠칠절을 지키되

 칠칠절을 지키되   신명기 16장 8-11절「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어떻게 애굽으로부터 나오게 되었는지를 기억하라는 말이다. 오늘날 애굽은 세상을 상징한다. 성도 역시 세상을 나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자들이다.   하나님의 누룩은 좋은 것이지만, 사람의 교훈이 들어가면 좋은 누룩이 아닌 것이다. 누룩을 제하라는 것은 사람의 생각을 하나님의 누룩에 섞지 말라는 것이다. 일곱째 날은 창조가 마치는 것과 안식으로 들어가는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 칠일 동안 누룩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말이 섞인 말씀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누룩을 버리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마귀의 자식이 되어있으므로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누룩을 제하면 안식이 오는 것이다. 즉 누룩을 제하면 하나님이 오시는 것이다. 안식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온전히 안식을 주시려면 칠일이 되어야 한다. 육이 끝나야 칠이 오는 것이다. 육은 세상을 상징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상징한다. 자기만의 하나님 나라가 된다. 참 누룩은 말씀과 성령으로 깨달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누룩은 사람의 생각이 첨가된 누룩을 의미하는 것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