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문의 비밀번호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문의 비밀번호 ​ ​ 오늘날 집을 보면, 대문이 있으며, 대문에는 비밀번호를 눌려야 문이 열리는 스마트 키가 대부분의 집에 있는데,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면 집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도 비밀번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조건이 열심히 노력하고 헌신하고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밀번호와 같은 상호간의 약속이 있다는 말입니다. 상호간의 약속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인데, 그게 비밀번호라는 것입니다.  ​ ​ 에베소서 5장 31-32절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 ​ 여기에서 비밀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라고 사도바울이 말했는데, 무슨 뜻일까요? ​ ​ 사람은 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부모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는 이유는 세상에 와서 모든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즉 부모를 떠난 이유는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 ​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인간들의 구원이 이루어지는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 단지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는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인간들의 존재는 원래 하나님 나라에서부터 온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하기 위해 세상을 만들고, 인간을 만들고 잘 살아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적 존재들을 세상이라는 물질 속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냥 흑암이라는 세상에 가두어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그 죄의 기억을 죄의 몸이라는 것으로 육체 속에 담아둔 것입니다. ​ ​ 창세기 3장 21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라...

처녀의 표적

 처녀의 표적   신명기 22장 13-21절「누구든지 아내를 맞이하여 그에게 들어간 후에 그를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그에게 누명을 씌워 이르되 내가 이 여자를 맞이하였더니 그와 동침할 때에 그가 처녀임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면 그 처녀의 부모가 그 처녀의 처녀인 표(베툴림)를 얻어가지고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처녀의 아버지가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내 딸을 이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더니 그가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말하기를 내가 네 딸에게서 처녀임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나 보라 내 딸의 처녀의 표적이 이것이라 하고 그 부모가 그 자리옷(심라)을 그 성읍 장로들 앞에 펼 것이요(파라스) 그 성읍 장로들은 그 사람을 잡아 때리고 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을 씌움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여자의 아버지에게 주고 그 여자는 그 남자가 평생에 버릴 수 없는 아내가 되게 하려니와 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의 표적(베툴림)이 없거든 그 처녀를 그의 아버지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할지니라」   표면적으로는 당시의 성적인 문란을 예방하고 이에 대한 처벌로서 율법에 규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생명이다.    처녀는 두 종류가 있다. 아무하고도 결혼을 하지 않은 자, 겉으로는결혼하지 않았지만, 실제적으로는 누군가 잠자리를 하여, 실제적으로는 처녀가 아닌 자이다.    22장 15절에서는 처녀인 표 라고 번역하였고, 22장 17절에서는 처녀의 표적(베툴림 엘레)이라고 번역했다. 베툴림은 처녀성, 집단의 표들을 의미한다. 엘레는 이것들, 저것들, 종류 등을 의미하며, 처녀가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것들이 되는 것이다.    처녀의 표...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요한일서 4장 13절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엔 아우토 (ἐν αὐτῷ) 는 그리스도 안에 라는 말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 안에 있게 된다. 성령을 주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 이시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호와 하나님이 성령을 성도에게 주시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주시는 분도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성부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즉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분(인자)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는 성부와 성자 성령의 관계로 나타난다. 그리고 성도 역시 이 땅에 있으므로, 성부와 성자(그리스도), 성령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가 성부(여호와 하나님)에게 있으며,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있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성부(여호와 하나님)가 성도에게 있는 것이다. 요한일서 4장 14-15절『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우리는 요한을 포함한 제자들의 무리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던 자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되며, 성부 하나님이 성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성도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이 땅에서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이다. 세상에 초림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자 곧 사람이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의 몸을 입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다. 신학은 이 땅에 초림으로 오신 분도 하나님, 성부 하나님도 하나님, 성...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신명기 22장 9-12절「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네 포도원에 두 종자(킬라임)를 섞어 뿌리지 말라” 킬라임은 분리, 이질적인 두 종류, 혼합된 씨들을 의미한다. 포도원에는 포도나무의 씨를 뿌리는 것이 옳지만, 포도 씨와 다른 씨를 혼합하지 말라는 것이다. 포도원 주인이 세를 주어 포도원을 경작하게 했는데, 세입자가 포도원에서 포도와 다른 씨를 혼합하여 뿌리면, 밭주인이 와서 볼 때 포도원을 망쳤으므로, 그 포도원을 도로 회수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도 포도원의 비유를 하셨다. 마가복음 12장 1-5절에서『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휘테오)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게오르고스)에게 세로 주고(에크디도미) 타국에 갔더니(아포데메오) 때가 이르매(토 카이로)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카르포스)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아티마조)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악한 농부의 이야기이지만,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한 사람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메시야를 보냈지만,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죽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을 비방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했으니,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축복이 넘어간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명기에서 말하는 포도원의 주인도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을 빌려서...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요한일서 4장 1절『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아가페토이 (Ἀγαπητοί )는『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아』라는 의미이고, 도키마제테 (δοκιμάζετε) 는 시험하다라는 의미다. 호 프뉴마는 성령이지만, 관사가 없는 프뉴마는 영을 의미한다. 요한일서 4장 2-3절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기노스케테 (γινώσκετε) 는 알다(히브리어:야다)는 의미이며, 성령을 안다는 것은 성령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음이 성령의 감동으로 역사함을 의미한다. 사르키( σαρκὶ 육신)는 성육신을 의미한다. 성육신은 임마누엘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육신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면 안되고 사람이신 그리스도라는 의미다. 거듭난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 하는 것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들어온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이 부분이 빠져 있는 사본들이 있다. 물론 빠져 있어도 문맥상 앞의 부분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일서 4장 4-6절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에크 (ἐκ )는 『~로부터 나왔다』는 의미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의미다. 세상에 속한 말은 기복적인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서 잘되고 물질적 축복을 얻게 하는 모든...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   신명기 22장 6-8절「길을 가다가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의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보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되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나무에 둥지를 튼 새가 있는데 그 새가 새끼를 품고 있으면 새끼와 어미를 동시에 취할 것이 아니라 어미는 놓아주고, 새끼는 취하도록 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배려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요구하고 계신다. 작은 동물에 대해서도 보살피려는 마음, 그것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의 생태계의 보존 차원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생태계를 보전하는 차원에서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거듭나는 자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다.    창세기 20장 1절「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에서 움직이는 물들(세레츠 함마임 יִשְׁרְצ֣וּ הַמַּ֔יִם )이다. 세레츠는 꿈틀거리는, 풍부하게 양육하는 의미다.  즉 양육하는 물들이다. 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영적 존재를 움직이게 하는 물들이다. 말씀으로 양육하는 사역자를 두고 하는 말이 된다. 이 말씀으로 양육한 존재가 바로 네피쉬하이 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먹고 사는 육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세레츠가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는 꿈틀거리는 기어다니는 존재가 된다. 레위기 11장 41절에서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길 짐승은 가증한 즉 먹지 못할지니”라고 말하고 있다. 땅에 기어다닌다는 의미는 땅과 하나되는 존재라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요한일서 3장 13-14절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세상은 사탄을 상징한다. 사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미워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자라는 것을 아는데, 그 근거가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형제는 영적인 형제를 의미하며, 사랑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형제들에게 심으므로, 그들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다. 다나토 (θανάτῳ )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다른 사람의 영을 살릴 수 없다. 요한일서 3장 15절『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영을 죽이는 자를 의미한다. 안드로포크토노스 (ἀνθρωποκτόνος )는 영적 살인을 의미한다. 영생(조엔 ζωὴν )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는 의미다. 요한일서 3장 16-17절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들의 영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형제들의 영을 살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여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자신의 영도 살아나고, 다른 형제도 영적으로 살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삶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프슈켄 (ψυχὴν) , 프슈카스 (ψυχὰς) 는 혼이다. 여기는 목숨으로 번역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