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요한일서 4장 1절『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아가페토이 (Ἀγαπητοί )는『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아』라는 의미이고, 도키마제테 (δοκιμάζετε) 는 시험하다라는 의미다. 호 프뉴마는 성령이지만, 관사가 없는 프뉴마는 영을 의미한다. 요한일서 4장 2-3절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기노스케테 (γινώσκετε) 는 알다(히브리어:야다)는 의미이며, 성령을 안다는 것은 성령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음이 성령의 감동으로 역사함을 의미한다. 사르키( σαρκὶ 육신)는 성육신을 의미한다. 성육신은 임마누엘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육신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면 안되고 사람이신 그리스도라는 의미다. 거듭난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 하는 것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들어온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이 부분이 빠져 있는 사본들이 있다. 물론 빠져 있어도 문맥상 앞의 부분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일서 4장 4-6절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에크 (ἐκ )는 『~로부터 나왔다』는 의미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의미다. 세상에 속한 말은 기복적인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서 잘되고 물질적 축복을 얻게 하는 모든...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   신명기 22장 6-8절「길을 가다가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의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보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되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나무에 둥지를 튼 새가 있는데 그 새가 새끼를 품고 있으면 새끼와 어미를 동시에 취할 것이 아니라 어미는 놓아주고, 새끼는 취하도록 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배려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요구하고 계신다. 작은 동물에 대해서도 보살피려는 마음, 그것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의 생태계의 보존 차원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생태계를 보전하는 차원에서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거듭나는 자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다.    창세기 20장 1절「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에서 움직이는 물들(세레츠 함마임 יִשְׁרְצ֣וּ הַמַּ֔יִם )이다. 세레츠는 꿈틀거리는, 풍부하게 양육하는 의미다.  즉 양육하는 물들이다. 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영적 존재를 움직이게 하는 물들이다. 말씀으로 양육하는 사역자를 두고 하는 말이 된다. 이 말씀으로 양육한 존재가 바로 네피쉬하이 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먹고 사는 육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세레츠가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는 꿈틀거리는 기어다니는 존재가 된다. 레위기 11장 41절에서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길 짐승은 가증한 즉 먹지 못할지니”라고 말하고 있다. 땅에 기어다닌다는 의미는 땅과 하나되는 존재라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요한일서 3장 13-14절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세상은 사탄을 상징한다. 사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미워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자라는 것을 아는데, 그 근거가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형제는 영적인 형제를 의미하며, 사랑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형제들에게 심으므로, 그들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다. 다나토 (θανάτῳ )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다른 사람의 영을 살릴 수 없다. 요한일서 3장 15절『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영을 죽이는 자를 의미한다. 안드로포크토노스 (ἀνθρωποκτόνος )는 영적 살인을 의미한다. 영생(조엔 ζωὴν )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는 의미다. 요한일서 3장 16-17절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들의 영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형제들의 영을 살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여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자신의 영도 살아나고, 다른 형제도 영적으로 살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삶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프슈켄 (ψυχὴν) , 프슈카스 (ψυχὰς) 는 혼이다. 여기는 목숨으로 번역되었...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문의 비밀번호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문의 비밀번호   오늘날 집을 보면 , 대문이 있으며 , 대문에는 비밀번호를 눌려야 문이 열리는 스마트 키가 대부분의 집에 있는데 ,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면 집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도 비밀번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조건이 열심히 노력하고 헌신하고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 비밀번호와 같은 상호간의 약속이 있다는 말입니다 . 상호간의 약속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인데 , 그게 비밀번호라는 것입니다 . 에베소서 5 장 31-32 절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여기에서 비밀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라고 사도바울이 말했는데 , 무슨 뜻일까요 ? 사람은 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 부모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 사람이 부모를 떠나는 이유는 세상에 와서 모든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 즉 부모를 떠난 이유는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인간들의 구원이 이루어지는가 ?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단지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는다 라고 생각하지만 ,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인간들의 존재는 원래 하나님 나라에서부터 온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하기 위해 세상을 만들고 , 인간을 만들고 잘 살아보라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적 존재들을 세상이라는 물질 속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 그냥 흑암이라는 세상에 가두어 둔 것이 아니라 ,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그 죄의 기억을 죄의 몸이라는 것으로 육체 속에 담아둔 것입니다 . 창세기 3 장 21 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신명기 22장 5절「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   당시 여자가 남장을,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일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질서는 영적으로 혼돈과 흑암을 나타낸다. 영적으로 사람이 흑암에 있는 것은 여전히 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성경에서 남자와 여자를 말할 때, 남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를 상징한다.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는 것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죄의 표현이고,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는 것은 죄의 몸에 대한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몸을 입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 역시 예수와 연합하여 죄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므로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창세기 2장 21-23절「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첫사람 아담은 마지막 아담의 표상이다. 아담이 잠든 것은 십자가에서 죽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첫사람이 죽으므로,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가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혼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첫사람과 남자 아담을 동일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첫사람은 그리스도이지만, 남자 아담은 범죄한 자의 모형인 것이다. 첫사람은 죽고, 남자와 여자가 첫사람을 통하여 죄의 몸으로 창조된 것...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요한일서 3장 1절『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포타멘)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에스멘)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포타멘 아가펜 (ποταπ ὴ ν  ἀ γάπην) 은 얼마나 큰 사랑이다. 에스멘 (ἐ σμέν ) 은 (그리스도 안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큰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게 하시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한일서 3장 2-3절  『사랑하는 자들아(아가페토이)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에스멘)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엪 아우토)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아가페토이 (Ἀ γαπητοί ) 는『사랑을 받는 자들아』라고 수정되어야 한다. 에스멘 (ἐ σμεν ) 은 존재하다 라는 의미다.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성도가 현재는 육체 때문에 알 수 없으나, 장래에 주님이 나타나시면, 주님의 부활과 같은 모습으로 부활한 것을 우리가 알게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와 같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엪 아우토 (ἐ π’ α ὐ τ ῷ ) 는 그의 안에서 라는 의미다. 육체가 살아있을 때는 여전히 연약한 육신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하나님이 이렇게 큰 사랑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요한이 말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3장 4-6절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에파네로데)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엔 아우토)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신명기 22장 1-4절「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또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줄지니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 소나 양을 잃어버린 주인이 안타깝게 자식과 같은 소나 양을 찾아다니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주인을 어떻게 해서라도 찾아주는 것이 맞겠지만 길잃은 짐승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 짐승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간과 수고의 대가를 치러야 하고, 그것을 찾아주어도 자신에게 큰 유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주인을 찾아주려 하기보다는 그냥 지나치거나 오히려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록 수고는 하게 되고, 오히려 자신이 희생하게 되더라도 이웃을 위해 기꺼이 그러한 수고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영적으로 보면,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소나 양은 주인을 잃은 그의 백성일 것이다. 소나 양이 왜 주인을 잃게 되었는가? 주인을 잃었다기 보다, 주인을 떠났기 때문이다. 소나 양은 항상 주인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 주인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주인을 떠났기 때문이다. 주인을 떠나게 되면, 위험해 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와 같은 존재들이 된다. 이사야 53장 6절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것은 하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