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신명기 23장 9-14절「네가 적군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영 밖으로 나가고 진영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해 질 때에 목욕하고 해 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네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련하고 그리로 나가되 네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볼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려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진영을 거룩하게 하는 법에 관한 내용으로 특히 전쟁에 나갔을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이 기술되어 있다.   “네가 적군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라) 일(다바르)을 스스로 삼갈지니”여기서 “라”는“망하게 하다, 쓸모없게 하다”라는 라아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나쁜, 사악한, 역경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다바르는 말, 행동, 일 등. 영적 전쟁을 하는데, 육적인 자아를 불러 이르키지 말라는 것이다. 육적인 것은 하나님께 악한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카레)으로 부정하거든” 카레를 몽설로 번역하였는데, 오류이다. 카레는 일이 생기다, 대들보를 놓다 등의 의미의 카라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우연히 일어난 불결함, 부적합 등의 의미를 갖는다. 전쟁 중에 대들보를 놓고 집을 짓는 행위는 부적절한 행위이다.   표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군대이다. 군대는 힘을 바탕으로 적과 싸우는데, 싸우기도 전에 힘을 소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악한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악한 일이라고 번역된“라 다바르”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무익한 일이 되는 것이다. 영적 싸움에서 하늘의 군대는 준비되었는데, 땅의 군대가 준비되지 않으므로, 새창조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영적으로 싸워야 할 군대가 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요한이서 1장 1절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   부녀로 번역된 영어 성경은 lady로 되어 있다. 그런데, 헬라어는 퀴리아( κυρί ᾳ 여자 주인)다. 큐리오스는 주님으로 번역되는데, 여성형으로 퀴리아로 되어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가정 교회가 많이 있었다. 그 가정교회에서 여자가 주도하고 있은 것으로 알 수 있다. 따라서 부녀가 아니라 여자 지도자(목사)라고 해야하며, 그의 자녀는 영적인 자녀로서 교회공동체의 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이서 1장 2-3절 『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영어 성경에서는 진리를 truth 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진리의 헬라어는 알레데이안이다. 알레데이안 앞에 영어의 정관사격인 텐이 붙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텐 알레데이안 (τ ὴ ν ἀ λήθειαν ) 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1장 1절에서 진리를 아는 모든 자에서 진리는 영어의 truth 이지만 1장 2절의 진리는 그리스도인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진리라고 번역한 것을 그리스도로 수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자가 되는 것이다. 진리의 반대 말은 거짓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반대는 속이는 자 사탄인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사탄이 지배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요한이서 1장 4-5절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 (신명기 23장 1-8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 (신명기 23장 1-8절)   신명기 23장 1-8절「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 대에 이르기까지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그들의 삼 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   레위 자손 고라와 르우벤 자손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의 추종자 250명이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다. 이유는 “모세와 아론, 왜 당신들만 이스라엘 위에 군림하느냐, 행세하느냐?”는 것이다. 곧 모세와 아론, 당신들만 하나님의 중보자요 제사장이요 이스라엘의 지도자냐? 지도자직과 제사장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 것 아니냐 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세우신 하나님의 질서와 법도를 부정하며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반역이었다.   민수기 16장 1-3절「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요한일서 5장 11-12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생명은 영을 살리는 생명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라고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영이 살아나고, 없는 자는 영이 죽어있다는 말이다. 요한일서 5장 13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름을 믿는(피스튜우신 에이스 토 오노마) 것으로 번역되었으나, 이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믿는 의미이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영생을 갖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피스튜우신은 3인칭 복수로서 그들의 믿음이다.『하나님 아들의 이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믿는 너희』가 아니라『하나님 아들의 이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믿는 그들』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본에는 ⧼καὶ ἵνα πιστεύητε εἰς τὸ ὄνομα τοῦ υἱοῦ τοῦ θεοῦ 그래서 하나님 아들의 이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이 있으나 넷슬 알란드 헬라어 사본에는 없는 부분이다. 피스튜에테는 2인칭 복수로서 너희가 믿는 믿음이다. 요한일서 5장 14-15절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헤파르레시아 (ἡ παρρησία )는 담대함이라기 보다, 신뢰 속에서 솔직히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토메다 (αἰτώμεθα) 는 여쭈어보다라는 의미다. 성도가 하나님께 솔직하게 여쭈어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 뜻대로 여쭈어보면 들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여쭙는 그 하나님의 뜻은 죄와 구원에 관한 것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요한일서 5장 1절『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 라는 말에서 그리스도라는 의미를 잘 이해해야만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으므로 당연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 라는 것을 모르면, 사실상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사도 요한이 말하는 예수님은 부활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기를 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되는 것이다. 물에서 옛사람이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성령세례를 받기를 원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께로 난 자라는 것이다.   낳으신 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낳으신 자는 거듭난 성도다. 그래서 성도가 성도를 영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영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율법의 십계명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의 의미는 모든 인간은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그런 상태, 영적으로 죽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희생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약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그 분과 연합하여 형제의 죽었던 영을 살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누가복음 10장 25-36절에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영생에 대해서 물었는데, 예수님이 율법에 어떻데 기록되었지 라고 되물으니 율법교사가 10장 2...

남자와 만나는 여자의 순결에 관한 말씀

 남자와 만나는 여자의 순결에 관한 말씀   신명기 22장 22-30절「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으면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처녀에게는 아무것도 행하지 말 것은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이 일은 사람이 일어나 그 이웃을 쳐죽인 것과 같은 것이라 남자가 처녀를 들에서 만난 까닭에 그 약혼한 처녀가 소리질러도 구원할 자가 없었음이니라 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동침하는 중에 그 두 사람이 발견되면 그 동침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사람이 그의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여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지 말지니라」   순결에 대한 내용이다. 그 내용은 크게 다섯가지로 나누어 지는데, 첫째 유부녀와 간통사건, 둘째 약혼한 처녀와 성내 간통사건, 셋째 약혼한 처녀의 들에서 강간사건, 넷째 정혼 안 한 처녀와의 동침사건, 다섯째, 근친상간에 대한 내용이다.    표면적으로는 성적으로 타락하게 되거나 문란한 성생활에 대해 강력히 경계하도록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사회가 타락해 가고, 멸망하게 될 때 그 안을 살펴보면 반드시 성적인 타락과 문란한 성관계가 함께 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취해야 할 많은 행동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신의 탐욕을 따라가다가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아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문의 비밀번호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문의 비밀번호 ​ ​ 오늘날 집을 보면, 대문이 있으며, 대문에는 비밀번호를 눌려야 문이 열리는 스마트 키가 대부분의 집에 있는데,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면 집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도 비밀번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조건이 열심히 노력하고 헌신하고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밀번호와 같은 상호간의 약속이 있다는 말입니다. 상호간의 약속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인데, 그게 비밀번호라는 것입니다.  ​ ​ 에베소서 5장 31-32절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 ​ 여기에서 비밀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라고 사도바울이 말했는데, 무슨 뜻일까요? ​ ​ 사람은 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부모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는 이유는 세상에 와서 모든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즉 부모를 떠난 이유는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 ​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인간들의 구원이 이루어지는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 단지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는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인간들의 존재는 원래 하나님 나라에서부터 온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하기 위해 세상을 만들고, 인간을 만들고 잘 살아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적 존재들을 세상이라는 물질 속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냥 흑암이라는 세상에 가두어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그 죄의 기억을 죄의 몸이라는 것으로 육체 속에 담아둔 것입니다. ​ ​ 창세기 3장 21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