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사무엘상 1장 1-2절『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사무엘상을 시작하는 본문의 시대적 배경은 사시시대 말기 영적으로 가장 캄캄한 암흑기였다. 이 때 하나님은 엘가나라는 레위인의 가정에서 태어날 아기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시키셨다.   사무엘상하는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의 출생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세워지는 왕정 정치시대로의 150년간의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성경이다. 사사이면서 선지자인 사무엘을 통해서 세워진 사울왕과 다윗왕을 통해 이스라엘은 새로운 왕정시대로 진입하였다.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의 변화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 시대적 정치적 변화속에서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어떻게 하나님앞에서 자리매김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사무엘의 부친으로 등장하는 엘가나는 역대상 6장 34-38절에 의하면 레위지파 그핫족속의 사람으로 에브라임 지역 라마다임소빔(약칭으로 라마)에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한나와, 브닌나였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지만 한나는 자식이 없었다. 여인에게 자식이 없다는 말은 고대 사회에서는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엘가나는 매년마다 회막이 세워진 실로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는 신실한 레위 사람이었지만 한 여인은 자식이 없고 한 여인은 자식이 있는 그의 가족 상황은 그에게 보이지 않는 긴장과 갈...

성도들에게 현재적 부활이 이루어지는 모습

  성도들에게 현재적 부활이 이루어지는 모습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코이메데소메다)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ἐ ν  ἀ τ ό μ ῳ ,  ἐ ν  ῥ ιπ ῇ   ὀ φθαλμο ῦ)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호 네크로이)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코이메데소메다 (κοιμηθησ ό μεθα) 는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호 네크로이 ( ο ἱ  νεκρο ὶ) 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들이다. 그런데, 이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홀연히 변화를 받아서 영적으로 일어난다는 말이다. 홀연히 (ἐ ν  ἀ τ ό μ ῳ ,  ἐ ν  ῥ ιπ ῇ   ὀ φθαλμο ῦ)    라고 번역했는데, (엔 아토모 엔 리페 옾달무)는  “ 눈 깜빡하는 순간에 ”   라는 말이다.   눈깜빡 하는 순간에 성도의 심령 속에 새성전이 들어서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옛성전은 죽고, 새성전이 들어서는 것이다. 육적 주체에서 영적 주체로 바뀌는 순간이다. 새성전이 심령 속에 들어서도 옛성전의 파괴된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다. 완전 파괴될때까지 육적자아와 씨워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일곱 족속과 싸운 것과 같은 이치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서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후 우라노이)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파렐류손타이) 물질(스토이케이아)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휴레데세타이)』 주의 날은 마지막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마음 속에 새성전이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 들어오는 날이 어떤 사람은 빨리 어떤 사람은 늦게 찾아온다.   ...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여주시다.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여주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계속 무덤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20장 17절에서는『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핲투)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핲투는 붙들어서 끌어안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는 예수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다. 그리스도께서 아직 아버지 집으로 아직 가지 않으므로 붙잡지 말라는 것이다. 당분간 마리아와 제자들과 세상에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를 만나서 대화를 했지만, 자신의 부활의 몸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요한복음 20장 19-20절에서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제자들이 마리아의 말을 듣고 부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놀란 것이다. 분명히 문을 닫았는데 예수님이 벽을 뚫고 제자들에게 들어오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체는 이 세상의 육체와는 다른 몸인 것이다. 요한복음 20장 24-25절에서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도마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가 자리에 없었다. 다른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말하였지만, 자명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돌 무덤에 묻힌 죽은 이가 눈 앞에 나타났다는 동료들의 말을 도마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간의 경험...

부활의 몸

  부활의 몸이란 ?   첫째 , 부활이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인가 , 아니면 영적으로 부활이 일어나는 것인가 ?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이라고 말씀을 한다 . 부활이라는 말에 대해서 , 육신의 입장에서 보면 , 육이 부활한다고 믿게 되지만 , 영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하늘의 생명인데 , 흙에 잠시 갇혀 있다가 다시 하늘의 생명이 부활한다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생명이므로 , 육이 죽고 , 하늘의 생명으로 부활한 것이다 . 그런데도 , 육이 부활했다고 주장한다면 , 육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 누가복음 20 장 35-36 절에서 "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 그리고 , 마태복음 22 장 30 절 "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 라고 말을 한다 . 천사는 영이다 . 그래서 부활은 죽었던 영이 생명의 영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   요한복음 20 장 24-25 절에서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도마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가 자리에 없었다 . 다른 제자들이『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말하였지만 , 자명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돌 무덤에 묻힌 죽은 이가 눈 앞에 나타났다는 동료들의 말을 도마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 요한복음 20 장 2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