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 까지 갇혔느니라

성경은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거룩한 십계명을 주시고, 시내산에서 모세의 얼굴이 영광의 빛으로 말미암아 밝아지고 그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므로 모든 사람들이 죄 아래에 가두어진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약속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게 하려 하심이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는데, 이 일을 한 것이 율법이라는 말이다. 십계명은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다. 하나님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게 되고 죄 아래에 가두어진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 골고다 언덕에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의 손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제물로 죽은 것이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제물로 죽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하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한 제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 즉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의 손에 의해서 예수님이 죽어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완전히 율법 아래에 있게 된 것이다.
죄가 없어신 에수님이 율법 아래에서 죽으셨다. 세상에서 이 보다 충격적인 것은 없다. 시내산에서 주어진 그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시지만 그것이 곧 구원은 아니라는 말이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 까지 갇혔느니라』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홍해 바다도 건너지 않은 상태이다. 그들은 세상을 가장 먼저 사랑하는 자들이다. 입으로는 예수를 부르짖는데, 홍해 바다가 갈라진 적도 없다. 철저히 세상 기준으로, 세상의 가치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원은 시작도 안된 것이다. 홍해 바다를 건너므로서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고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홍해를 건너는 것이며, 이 때 광야에서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새 생명이 태어날 때까지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다. 하나님은『내가 맹세한다. 열 정탐꾼의 말을 듣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죽으리라 라고 말한 사람들, 그것을 믿은 사람들은 광야에서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라고 하신 것이며 이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맹세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회개이다. 계시될 믿음의 때 까지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 있다. 하늘의 빛이 비춰져서 우리가 광야에 있는지 가나안에 있는지 깨달아야만 한다. 만약에 스스로 의인이 된 줄로 아는 자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라는 것이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 계시될 믿음의 때 까지 율법에 갇혀있는 것이다. 억지로 믿으려고 힘써야 소용이 없다. 성경은『힘써서 믿음을 가져라』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믿음이 안되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라는 말이다. 그럴 때 이 믿음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회개는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내 옛사람이 죽는 것을 회개라고 한다. 옛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이 믿음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몽학선생)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함이니라』이것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인 것이다. 이 믿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우리가 믿습니다』라고 외친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믿음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내(옛사람)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아브라함의 경우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갈데아 우르인 고향 친척 집을 떠났다가 25년이 지나서 이삭을 낳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서 비로소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25년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친척인 롯을 데리고 함께 떠났으며, 자식을 준다고 했는데,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5절에서는『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라고 했다. 우리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하나님으로 부터 와야한다.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하시는 믿음이 옛사람이 죽은 자에게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가『믿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욕망과 결별해지는 순종이 필요하다. 내가 심령이 가난해지고 애통해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보내야 하는 아픔과 고통이 뒤따르는 것과 같은 그런 심한 고통이 뒤따른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낳은 자식이지만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자식이 아닌 것이다. 이 순종울 통해서 아브라함은 이름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뀐다. 씨의 약속인 열국의 아비로 바뀐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 지는 것은 새 생명인 이삭을 얻은 후에 일어난 것이다. 사람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영접 기도 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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