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히브리서 4장 12-14절『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결산을 받으실』이라는 말은 로고스라는 말이다. 하나님 말씀이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갠다. 혼은 육으로 비롯된 생각이다. 혼이 죽어야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와 연합된다. 예수와 연합된 자는 승천하신 주님이 믿는 자를 새생명으로 부활시킬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큰 대제사장이시다. 히브리서 1장 3절에는 승천하신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다.『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그리고 히브리서 1장 6절에서는『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히브리서는 우편 보좌에 앉으셔서 다시 오실 주님을 그리고 있다. 히브리서 2장 9절에서도『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브리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어린양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다.
히브리서 3장 16-19절에서는 애굽을 나온 히브리 백성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브리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을 격동케 한 백성이다. 4장 1-2절에서는『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그래서 두려워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어서 히브리서 3-4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애굽에서 나온 자들은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지파별로 움직였다. 그들이 나의 군대라고 하셨다.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라고 했는데, 그들이 주님을 격동케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광야에서 옛사람이 죽고 새생명이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이 운동력이 있어서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버렸다는 말이다. 혼을 죽여버리고 영을 살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신다는 말이다. 에베소서1장 20절에서는 교회와 승천하신 주님을 표현하고 있다. 22절에서는『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예수님이 승천하셔서 만물 위의 교회를 나타낸다. 요단강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적과 싸우는 것이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이 땅에는 두가지 교회가 있다. 광야 교회와 가나안 교회다. 가나안교회는 혼이 죽고 영이 사는 제물되는 삶을 가리킨다. 요단강에서 옛사람이 죽고 여호수아(예수)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서 구원받은 한사람 한사람이 연합하여 승리하는 교회를 말한다.
오늘날『요단강 건너가』라는 찬송가에서 나오는 노래는 죽어서 들어가는 장례곡이 되어버렸다. 가나안도 들어가보지 못한 옛사람이 요단강을 죽어서 들어가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장송곡이 된『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고 노래하는 교회는 패배한 교회다. 살아서 들어가는 가나안이 아니라 죽어서 들어가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장례곡으로 노래하고 있다.『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교회가 된 것이다.
정상적인 교회는『각자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증거와 체험이 있는 자들의 연합』을 말한다. 그래서 부모로 받지 않은 생명,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생명이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회를 말한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서『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에베소서2장 5-6절에서는『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는 교회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라는 사람이 영향을 끼쳤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따로 모이지 않고 그들이 회당에 다녔다. 그 때 바울이 전도하러 회당에 갔는데, 그 회당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볼로가 유대인들과 함께 있는 회당에서 예수가 메시야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을 불러 내어서 두란노라는 서원에 불러내어서 모였는데 12명이 모인 것이다. 그 당시 두란노라는 에베소에 사는 철학자가 있었는데, 조선과 비교하면 율곡 이이 서원이라는 곳과 비슷한 곳이었다. 아볼로가 하나님 말씀은 잘 아는데, 교회의 의미를 몰랐던 것이다. 바울이 떠난 후에 아볼로가 두란노에서 역시 유대인들 가운데서『예수가 메시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편지를 하게 되었는데,『교회는 주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라고 편지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려 하늘에 앉히셨다』는 말이다. 우리가 하늘 우편 안에 앉아있다는 말이다. 2000여년 전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된 자는 부활 생명을 받는다. 교회는 승천하신 예수와 함께 앉히신 것이다. 분명한 것은『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고 옛사람이 장송곡처럼 노래하는 그런 요단강이 아니라 새생명으로 요단강에 건너가 마귀를 쫒아내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 에베소서 4장 8-10절에서 바울이 시편을 인용하고 있다.『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위로 올라가신 것은 승천하신 것을 말한다. 에베소서의 이 말씀은 히브리서와 연결된다.
예수님은 큰 대제사장이시다. 1년에 한번 대속죄일 날 지성소에 들어가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대제사장이시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예수는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1년에 42명이 바뀌는 대제사장이 7월10일에는 단 한 명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예수님은 죽으실 때는 어린양으로 죽었지만 부활하셔서 큰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셨다. 성소에서의 주님이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주님은 아무나 다 마당에서의 주님인 것이다. 승천하신 주님은 아무에게도 안 보여주신다.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된 자는 큰 대제사장이신 주님과 함께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있다. 혼의 역사를 부인하고 영을 따르는 자는 주님의 안식에 함께 들어간다. 주님은 이 땅에서의 교회를 가나안에 들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광야 교회는 현실이 어떤가? 혼과 영과 골수가 쪼개져 혼이 예수와 십자가에서 죽은 그런 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옛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의미조차 모르는 현실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나안 교회를 원하신다. 가나안의 교회는 승천하신 주님을 바라본다. 그래서 가나안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는 피로 용서만을 받으려는 광야의 교회다. 그래서 주님은 광야에서 맹세하신 것처럼『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를 기억해야만 한다. 히브리서 4장에서 처럼 이 땅에서 사단을 멸하는 가나안 교회가 되어야 한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