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힌 바 되고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골로새서 교회에서는 할례와 세례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이 교회는 구약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골로새서 2장 13절에서는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에서『하나님이 먼저 살리시고 그 다음에 죄를 사하시고』라고 되어있다. 죄를 사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이 먼저 있어야 함을 말한다. 거듭나야 죄 사하심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정 반대로 생각한다. 죄 사하심을 받고 그 다음에 살리심을 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을 율법 아래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교인들이 예수의 피로만 사하심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 말은 맞지만 죄의 사하심이 먼저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죄 용서가 먼저라고 생각하므로 너무 쉽게 죄 사하심을 생각하는 것이다. 먼저 예수와 함께 살리심을 받아야 한다. 살리심을 받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라고 되어있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죽고 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연합되도록 나를 맡기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구원은 죄만 사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다. 죄악의 원흉인 우리 옛사람이 처리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할례이다. 골로새서 2장 11절에서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할례는 육신의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곧 옛사람이 죽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6장 3-6절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곧 육적인 몸을 벗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육적인 몸은 죄악으로 둘러싸인 몸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며, 이것을 제거한 것이 그리스도의 할례인 세례라는 말이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었다. 할례는 옛사람이 죽었다는 말인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옛사람은 바로 마귀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옛사람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났던 욕망이 바로 인간의 육신 속에서 옛사람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죽는 것이다. 그 욕망이 있는 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옛사람은 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세례를 받을 때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하는 바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후에 골로새서 2장 13절에서『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라고 말한다. 장사한 후에 살리시고 죄를 사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이런 것들을 잘 가르치지 않는다.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된다는 하나의 의식으로 세례를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의 피로 죄만 사하심을 받으면 하나님 백성이 된다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옛사람이 죽지않고 영이 죽어있는데, 예수의 피로 씻는다고 거듭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례의 핵심은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살리심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특히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도 모든 것을 자기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판단의 자기가 바로 육적인 옛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성령을 구하고 있다. 예수와 연합되지 않으면서『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와 연합되지 않은 자들이 말하는 수많은 방언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은 못박힌 그리스도 뿐이다. 그리고『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부활의 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시작인 것이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열매를 원하는 꼴이다. 못박히는 것과 연합되는 것이 있으면 부활은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것이다. 죽임 당한 어린양이 모든 것이다. 그리고 죽임 당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만이 구원의 시작인 것이다. 이것을 벗어나면 모든 게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식의 구원에 불과하다.
할레는 언제 행했는가? 여호수아서 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다. 건너자마자 5장 2절에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할례를 명하셨다.『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이유는 5장 4-5절에서『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라고 하였다. 그들은 40년 동안 할례를 하지 않았다. 광야 길에서 나온 자들은 다 육적인 옛사람이라는 말이다. 육적인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구약성경에서 할례는 홍해바다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말한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구원의 확신이다. 홍해바다를 건너는 것이 구원의 확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대교회에서 말하는 구원은 예수의 피로 죄사하심을 받는 것이 구원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예수와 죽고 예수와 함께 살리심을 받지않으면 예수의 피는 적용되지 않는 것을 기르치지 않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한다. 그 이름을 믿는 것은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을 떨기나무의 불 길에서 만났을 때, 하나님이 애굽으로 가서 네 백성을 구하여 내라고 할 때, 여호와의 이름 『스스로 있는 자』를 믿고 바로 왕에게 가는 믿음인 것이다. 이것은 엣사람이 죽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 설명한다.『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거듭난 자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거듭나야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최초의 할례는 창세기 17장 1절에서 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완전하라』라고 하시고 7절에서는 언약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10절에서는 할례를 명하시는데,『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라고 하셨다. 할례가 영원한 언약이다.『포피를 베어라』는 뜻은 육적인 몸을 벗는 의식이었다. 이 때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던 때였으며, 100세가 되어서 이삭이 태어난 것이다.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옛사람을 벗어버려야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삭이 우리에게도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거듭나야만이 죄사하심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는 자기의 소유가 된 자를 예수의 피로 씻어주는 것이다. 회개는 바로 옛사람이 죽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옛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죄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하는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났던 원인을 제공한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탐욕의 옛사람이 죽는 것이 바로 회개인 것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마귀에서 예수님으로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내 자아와 예수 그리스도가 동시에 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내 자아는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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