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의 날
보복의 날 (the day of the vengeance)
예수께서 처음 나사렛의 고향 회당에 가셨을때 회당장으로부터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받았는데, 은혜의 해를 전파한다고 하시면서 신원의 날을 읽지 않으셨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4:17~19)
원래 이사야서에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61:2) 라고 쓰여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 (the year of Jubilee)’만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보복의 날(the day of the vengeance)”은 읽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보복의 날’은 재림하시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 원수갚는 의로우신 일이 계시록에 기록된 스토리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못박는 로마 병정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고 함께 사형당하는 강도를 구원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
스데반 집사도 돌맞아 죽는 때까지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기도했다. 우리에게도 생을 다할 때까지 죄인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구원할 사명 뿐이다.
그런데 계시록에 가면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계6:9,10)라고 기도한다.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복수를 간구한다. 천사도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계16:6) 요한에게 계시하신 주님의 모습과 행동도 무섭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19:15,16) 성경의 끝은 세상의 끝으로서 온 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천국과 지옥을 만드셨다. 천국은 이 땅에서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살은 사람들을 위해 만드셨고 그렇게 만든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된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예술가도 영화감독도 조폭도 생각해 내지 못할 두려운 지옥도 만드셨다. 그곳에 사람들을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고 거기에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게된다. (계20:10)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진다.(계19:20) 그리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진다. 끝으로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계21:8)
이 땅에서 주를 위해 고난받고 복음 전하며 하늘에 있는 본향 찾기를 나타내며 살았던 사람들을 위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천국을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그리고 마귀와 그를 선택한 영들을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어두움 가운데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지옥을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1:18) 마찬 가지로 지옥의 길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불행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공의이다. 이 세상에서 심판이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라는 책이 나올 정도이다. 천국과 지옥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찬양한다. 구원받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될 것이다.
오늘날 현대교회가 사랑만 외치다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회개하지 않은 채 믿는 신자들이 가득찼었고 이제 교회를 떠나고 있다. 회개하지 않은 채 믿던 이들은 주를 버릴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회개하지 않고 믿는 이들에겐 미련하여 보이는 것이다. 그들에겐 계시록도 두려운 것이고 싫은 것이다. 계시록엔 하나님의 진노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다.
예수께서 처음 나사렛의 고향 회당에 가셨을때 회당장으로부터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받았는데, 은혜의 해를 전파한다고 하시면서 신원의 날을 읽지 않으셨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4:17~19)
원래 이사야서에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61:2) 라고 쓰여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 (the year of Jubilee)’만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보복의 날(the day of the vengeance)”은 읽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보복의 날’은 재림하시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 원수갚는 의로우신 일이 계시록에 기록된 스토리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못박는 로마 병정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고 함께 사형당하는 강도를 구원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
스데반 집사도 돌맞아 죽는 때까지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기도했다. 우리에게도 생을 다할 때까지 죄인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구원할 사명 뿐이다.
그런데 계시록에 가면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계6:9,10)라고 기도한다.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복수를 간구한다. 천사도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계16:6) 요한에게 계시하신 주님의 모습과 행동도 무섭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19:15,16) 성경의 끝은 세상의 끝으로서 온 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천국과 지옥을 만드셨다. 천국은 이 땅에서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살은 사람들을 위해 만드셨고 그렇게 만든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된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예술가도 영화감독도 조폭도 생각해 내지 못할 두려운 지옥도 만드셨다. 그곳에 사람들을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고 거기에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게된다. (계20:10)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진다.(계19:20) 그리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진다. 끝으로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계21:8)
이 땅에서 주를 위해 고난받고 복음 전하며 하늘에 있는 본향 찾기를 나타내며 살았던 사람들을 위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천국을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그리고 마귀와 그를 선택한 영들을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어두움 가운데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지옥을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1:18) 마찬 가지로 지옥의 길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불행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공의이다. 이 세상에서 심판이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라는 책이 나올 정도이다. 천국과 지옥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찬양한다. 구원받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될 것이다.
오늘날 현대교회가 사랑만 외치다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회개하지 않은 채 믿는 신자들이 가득찼었고 이제 교회를 떠나고 있다. 회개하지 않은 채 믿던 이들은 주를 버릴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회개하지 않고 믿는 이들에겐 미련하여 보이는 것이다. 그들에겐 계시록도 두려운 것이고 싫은 것이다. 계시록엔 하나님의 진노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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