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한복음 8장 30-32절에서『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니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유대인들은『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왜 자유케되리라 말을 하느냐』라고 말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34-3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아들이 자유케 해야지만 자유가 된다는 말이다. 아들이 죄로부터 사단으로부터 자유케 해야만 우리가 자유케 된다는 말이다. 이들은 예수를 믿은 사람이다. 그런데『너희가 내 말 안에 거하면』이라는 조건이 있다. 이런 조건이 될 때 참 제자가 되고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이다.
조건은 두가지이다.『너희가 내 말 안에 거하고, 참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안다는 말이다. 이『안다』는 말은 아담이 하와를 안다(동침한다)는 말과 같다. 즉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주인이 되어 나를 자유케 한다.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주인이 나에서 진리가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죄로 부터 자유케 될 수 없다. 그저 죄를 자백해서 용서해 달라고 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죄의 종인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섞은 생각에 잡혀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내 죄가 용서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여전히 죄를 사랑하고 죄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죄를 자백하면 죄 용서를 받은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 믿음의 근거는 없다. 다만 자신이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죄사함은 세례의 결과다. 세례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물에 잠기면서 예수님의 죽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되는 것이 세례다. 이 믿음은 선물이다. 이 믿음은 계시되어야 한다. 요한복음 8장 37절에서 예수님이『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오늘날에도 예수님의 말씀이 교인들 속에 없는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려움이 올 때 예수님을 붙잡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을 버리는가? 대부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속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귀한테 속은 자는 자기 자신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예수께로 나왔지만 예수님은『이들이 죽이려 한다』고 했다. 예수가 주인이 아니면서 그런척 속이는 것이다.
마태복음 10장 32절에서 예수님은『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하는데, 교회 사람들은 로마서 10장 13절에서 말하는『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구절을 믿는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불의하기 때문이다. 죄인은 의로운 자리에 않을 수 없다. 회개없이는 의인의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은 선물이지만 회개는 우리가 해야 할 전제조건인 것이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인간은 자신 밖에 모르는 죄인이다. 자신 속에 있는 자기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은 부셔버릴 수 있지만 자기라는 우상은 죽어야만 된다.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38절에서『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이렇게 말했더니『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교회에 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이『너희들은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사람들은 아마『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는 주님을 믿으므로 여기에 왔습니다』라고 답을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이 41절에서 대답하였다.『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그랬더니 예수님이 44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45절에서『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셨다. 결국 이 이야기는 59절에서『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라고 끝을 낸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님에게로 나아간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를 하다가 보니 돌로 치려고 한 것이다. 왜나하면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그렇게 한 것이다. 이들은 회개하지 않고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이 믿는 믿음만을 가지고 나아간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믿음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아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다『예수믿는다』고 말은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 믿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려울 때만 예수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예수가 주인이 아니라 보조자일지도 모르겠다. 주인이 아니라 그냥 도와주시는 분 정도가 되는 것이다. 예수가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되지 않으면 안된다. 육신적 눈과 생각으로 바라보는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육신적 눈과 생각은 마귀로 부터 난 것이기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서 말하는 영접하는 자는 바로 거듭난 자를 말한다.『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이니라』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야만 하나님께로 부터 나게 된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자는 말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더불어 죽는 자만 거듭날 수 있는데, 오늘날에는 그냥 고백하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은 것이 미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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