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말씀이란 로고스가 아니라 웨마라는 말이다. 이 말씀이 육체 속의 깊은 심령으로 심어질 때 거듭난다는 말이다. 베드로는『그러므로』라고 하면서 이사야서를 인용하고 있다.『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인생에 있어서 성공과 영화는 언젠가는 시들게 되어있다는 말이다.『오직 주의 말씀(웨마)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베드로가 전한 복음이 세례요한이 전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인용한 이사야서를 보면 40장 6-8절에서 베드로가 말한『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세례요한이『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만 외친 것이 아니라 이 광야에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함께 외친 것이다. 이사야서 40장은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면서 주의 길을 예비한 말씀이다.
마태복음 5장 3-5절의 산상수훈은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이 구원에 대한 영적인 단계이다. 삶의 과정에서 죄를 회개하고 통회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이 말이 바로 4절에서 말하는『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애통이라는 말이 슬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죄를 애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서 죄의 결과를 아파할 뿐이지 죄의 원인을 아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은 회개가 아니다. 다윗은 죄의 원인을 아파했을 때 회개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죄의 결과만을 아파했던 것이다. 병의 결과로 나타난 것만 보고 치유할 것이 아니라 병이 나타난 원인을 치유해야 병이 완전히 낫듯이 죄의 원인을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 사람들이 죄의 결과 만을 두고 회개하려고 하는 이유는 마태복음 5장 3절의 말씀『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5절의 말씀『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땅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고 하고 그리고 나서 애통하고 회개하려고 하는 것이다. 천국에 대한 첫번째의 조건은『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이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친『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는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말한 것과 같은 말이다. 솔로몬은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던 모든 것을 얻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 축복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되는 것이다. 전도서1장 7절에서『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던지 채우려고만 하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채우려하는 것이라든가,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기를 채우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나지 못하는 신앙이다. 거듭나지 못한 자는 하나님 마저도 나를 위하여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세상 일이라든가 신앙에서도 다 같이 자기를 채우기 위해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전도서 1장 8-10절에서 채울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전도서 1장 2절에서 먼저 말하고 있는 것이다.『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죄를 죄인줄 알면서도 애통하지 못한 이유는 첫번째의『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에서 영이 가난하지 못한 이유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바로 영이 가난하지 못한 것이다. 전도서 1장 14절에서『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했는데, 바람을 잡으려는 말은 헛되이 영을 괴롭게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해 살지 못한다면 그 만큼 우리 스스로가 우리 속에 있는 영을 괴롭게 한다는 말이다. 전도서의 말씀은 요한1서 2장 15-17절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은 우리의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즈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늦을 수 있다. 십자가만 우리를 이 세상의 잠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다. 십자가에 나아갈 때 이 세상의 것이 내 영을 괴롭게 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솔로몬의 고백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은 잃어버린 영혼을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별처럼 빛나는 면류관을 씌어 주신다는 말씀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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