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때에 자기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디도서 1장 1-3절『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사람들은 입으로 전하는 전도의 복음보다 영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기를 더 좋아할 것 같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하신다. 주님이 다메섹에서 사도바울에게 나타나셨다.『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핍박하느냐?』『주여 누구십니까?』『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라고 직접 말했다. 그리고는 앞을 볼 수 없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셨다.『너에게 이를 사람이 있다. 그에게 들으라』그리고는 전혀 모르는 아나니아를 보내신 것이다.『그에게 들으라』라고 말한 것이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듣게 하신다. 사람이 얼마나 교만한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고 한다. 주님이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낸다. 사도행전 10장 4-5절에서『고넬료야 너의 구제와 너의 기도가 상달되었다.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고 그에게 들으라』사도행전에는 성령께서 지시하시고 음성을 들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말한다.『내가 보내는 그 사람에게 들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안 믿는다. 들리지도 않으면서 성령께 듣겠다는 말이다. 그게 교만이다.
주님은『너희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제자들이 나중에『누가 크냐』외치던 자들이었다. 그런데도 주님이 사람을 보내신 것이다.『내가 너희를 보내노니 너희를 영접하는 자가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그 주님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병들었을 때 길에 있을 때 내게 오지 않았다』『우리가 언제 안갔습니까?』『너희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주님은 주님이 보내신 자를 통하여 역사하신다.
이게 그 말씀이다. 이 영생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다. 자기의 말씀을 자기의 때에 전도로 나타내셨다고 한다. 이건 사람이 한다는 말이다. 그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령대로 나에게 맡기신 것이다. 주님은 사람을 사용하신다. 맡은 자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것을 안다. 이 전도의 시작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 마태복음 22장 14절에서 말한다.『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구원의 기준은 택하심이다. 부름받았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부름받는 것은 애굽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내 백성으로 나를 예배하게 하라』이게 부름받은 것이다. 히브리 백성이 노예인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불러내신 것이다. 바로왕이 그것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애굽은 장자가 죽는 심판을 받았다.

주님이 불러내셨다. 유다서 1장 5절에서『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출애굽이 구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출애굽은 주님이 세상의 짐을 끊어내시고 주님 만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은 광야에서도 주님을 바라보지 않았다. 마음 속에 애굽이 있었다. 차라리 애굽이 낫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세상으로 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세상을 찾는 것이다. 그것을 광야에서 알게된다.
돈과 세상을 좋아하는 것이 사람들 속에 있다. 광야가 회개할 기회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 거기서 주님이 택하신 자들을 일으키신다. 부르심과 택하심과의 사이가 회개라는 말이다. 주님은 노예들 중에서 회개하는 자들을 택하시는 것이다. 부름 받는 사람은 많다. 왜냐하면 주님은『누구든지 부른다』고 했기 때문이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다 불렀다는 말이다. 그러나 택한 자는 적다. 택한 자는 주님이 그가 악한 자인지 선한 자인지를 고려하지 않으신다. 오직 예복을 준비한 자 만이 택함을 입는 것이다. 청함을 받아 잔치에 들어왔지만 주님은 예복을 입지 않은 자를 걸러내신다. 손과 발을 묶어서 어두움에 던져버리신다.
구원받는 믿음은 회개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를 주님이 택하신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롯의 처는『뒤돌아 보지 말고 머무르지 말고 앞만 보고가라』는 명령에, 이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순종이 불가능한 것임을 몰랐다는 것이다. 롯은 『나는 못합니다』 이것이 택하신 자의 믿음에 이르는 전제다. 롯의 고백이 롯을 회개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욥기에서 말하는 자기를 미워하고『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는 고백이다. 자기를 신뢰하는 것이 영접기도다. 자기가 하나님을 영접하면 구원이 이루어지는 줄로 생각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힘으로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베드로는 주님이 바다 위에서『오라』하므로 배를 나온 자다. 배를 나오는 순종 자체가 기적이다. 어떻게 인간이 물위에 서 있을 수 있는가? 베드로는 이성과 경험을 뛰어넘는 순종이 있었다.『만일 주라면 나를 명하여 오라고 하소서』우리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주님을 어떻게 따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베드로는 풍랑치는 배에서 주님을 대했다.『주여 만일 주라면 나를 명하여 오라고 하소서』그 주님이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경험, 이성을 뛰어넘고 배를 나왔다. 이 내용의 주제는 롯의 처와 같다는 말이다.『불가능하구나, 우리가 주님을 끝까지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구나』베드로가 얼마나 주님이 보고 싶었겠는가? 그런데 풍랑이 일어나는 순간, 육신이 풍랑을 보는 것이다. 믿음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베드로도 롯도 불가능을 알았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구원받을 확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내가 믿는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렇게 인간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가나안 땅 앞에서 나타난다. 가나안 땅에 정탐꾼으로 들어가서 아낙자손을 보는 순간 나타난다. 주님이 하신 약속은 어디론가 사라지고『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열 정탐꾼들은 말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다. 베드로가 육신의 눈으로 보는 풍랑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주님께 대해서 거짓말쟁이다. 사람들에게는 진실될지는 몰라도 주님에게는 거짓을 말한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는 믿음을 받을 수 없다.
『예수 믿습니다』라고 말해도 육적인 죽음의 회개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적인 동의에 불과하다. 다 마귀에게 속고 있다. 이 믿음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신 말씀, 즉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믿음이지 모든 부패한 사람에게는 이런 믿음이 생길 수 없다. 믿음은 주님이 주시지만, 회개는 사람이 해야만 한다. 그런데 회개는『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완전한 회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한다. 주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는 명령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에게 명하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회개 만이 죄인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믿음을 주시는 것이다. 이 믿음은 주님 안에서 영원한 믿음이다. 풍랑에 빠졌지만 주님이 일으켜신다. 주님이 일으키시는 만큼 믿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물 위에서 주권적으로 일으켜 세우신다. 주님이 일으켜 세울 때 인간이 주님께 도움이 될만한 것이 없다. 구원받는 믿음은 주님 만이 주시는 것이다.

믿음은 주님께로만 오는 것이다. 주님이 풍랑으로 부터 잡아서 일으켰기 때문에 그 만큼 믿음이 들어오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 속에서 스스로 생길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어떻게 믿음이 생기겠는가?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회개와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일이다. 불뱀에게 물려도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회개는 죄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일으키는 육적인 것이 죽는 것이다. 육의 마음이 예수와 함께 죽을 때, 주님이 인간의 모든 세상죄를 피로 사해주시는 것이다. 육의 마음은 세상의 탐욕을 원한다. 육의 마음은 죄의 근원이다. 그 속에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우상이 자리하고 있다. 육의 마음은 끈질기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멀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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