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장 20-21절『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니고데모가 주님께 왔을 때 말씀하셨다.『네가 위로부터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사단의 모조품이 더 많다. 성경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물어본 것이다. 『너희들 안에』라는 말은 with in you. 믿는 사람들이 함께 거할 때『그 안에 거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한 개인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있지만, 누가복음 17장 20-21절의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그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개인에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는 개인적인 구원과 관계되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1절에서『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외식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종교인에 불과한 자를 말한다. 무리 수만명이 모인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무리가 수만명이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하지 않고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바리새인의 누룩 외식을 조심하라』고 하신 것이다. 29장 29-32절에는『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아버지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도록 구해야 한다. 이 세상의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것이 먼저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무엇이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게 만드는가? 거듭난 자만이 가능한 말씀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이 세상을 먼저 생각한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는『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주님의 사람은 주님의 것을 먼저 구한다. 누가복음 12장 32절에서는『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수만명과 적은 제자 무리는 서로 다르다. 오늘날의 교회에 모이는 자들은 외식된 자들인지 제자들인지 모르지만, 먼저 무엇을 구하는 자들인지에 의해서 구별될 것이다. 33-34절에서『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예수님이 주인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것이 양자의 영이다. 예수님이 주가 아니면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면 불법이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에 있을 때 예수가 우리의 주가 된다.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에만 있으면 예수님이 우리의 주가 아니라는 말이다. 거듭나기 전에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만 마음을 두지만, 다시 태어나면 하나님 나라에만 관심을 갖는다. 거듭나기 전의 사람의 상태를 사도바울은 옛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에서『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골로새서 3장 9절에서도『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옛 사람과 새 사람의 기준은 다시 태어났는가에 달려있다. 다시는 again이다. 과거의 것은 죽어야만 다시가 된다. 과거의 것은 죄로 병들고,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죄로 오염되고 병든 것은 치유가 불가능하다. 죄에 오염된 옛 사람은 새 사람으로 전환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새 사람은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죄가 없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죄의 굴레에 있는 과거의 것은 죽고,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로마서 6장 3-6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잘못 가르치는 것은『세례가 죄를 씻는 것』으로 생각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성경 지식이 없는 자들이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예수의 피로 죄를 씻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고 그렇게 믿고 있다. 죄를 씻는 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죽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의 몸이 죽는 것을 말한다. 죄의 몸이 죽어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만일 죄를 씻으면 새로운 자가 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서도 스스로 생각하기를 또 내일 죄를 범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일 매일 죄를 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 죄를 씻으면 매일 매일 예수님이 날마다 죽어야 하는가?

예수님은 두번 죽을 수 없다. 히브리서 10장 10-12절에서『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그런데도 오늘날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것 같이, 날마다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례가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 죄를 씻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죄를 수만번 씻어도 죄의 몸은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죄를 씻는 자체가 죄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죄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세상죄를 모두 사하여 주실 것이다. 날마다 죄를 씻을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고백처럼『날마다 죽노라』를 생각하면서 내가 죽은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날마다 죄에 대해여 죽는 자는 세상보다 하나님의 것을 더 구한다. 세상의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요한1서 2장 16절에서『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사람들은 날마다 죄를 면제받는 쉬운 길을 택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이며, 찾는 자가 적은 길이다. 영원한 천국은 결국 자아(마귀)와의 전쟁이다. 전쟁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가나안에 들어가 싸워보지도 못하고 멸망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심판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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