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누가복음12장 1절『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무리 수만명이 모였지만 먼저 제자들에게 12장 전체를 말씀하신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제자가 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예수님을 믿는 것이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에 거해야만 제자가 된다는 말이다. 제자가 되는 길은 헌신된 성화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가 되어야 진리를 알게된다.『안다』는 말은 『경험한다』는 말이다. 아담이 하와를 서로 알아서(동침과 같은 단어) 하나되는 것처럼『진리와 하나』된다는 말이다.『하나가 된다』는 말은『십자가 예수님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 때 진리가 제자들을 죄로부터 자유케한다. 이것이 구원의 길이다.
이 자유 안에는 용서와 해방이 다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죄 용서 받는 믿음은 있는데, 죄로부터 해방은 안된다고 한다. 이것은 모순이다. 예수믿기 전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는데, 예수를 믿은 후의 죄는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을 통해 죄 사하심을 받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모두 사하심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죄도 함께 죽는 것이다. 미래의 죄를 걱정하는 자는 결국 미래의 자기가 살아 움직일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은 초자연적 믿음이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으로 이것을 판단하려는 자는 하늘이 주는 믿음을 받을 수 없다.
예수님은 자기의 설교를 들으러 온 수 많은 무리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예수님은 수많은 교인들에게 관심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되는 자들에게 관심이 있다.『바리새인의 외식을 주의하라』고 했다. 교회 안에서는 열정적으로 생활하지만, 교회 밖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행동하는 것이 바로 외식이다. 겉과 속이 다른 모순이다.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복음은 전하지 않는다.
누가복음 12장 4-5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권세있는 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회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이런 말을 하지 않고, 회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에게『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에 대한 놀라운 계획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죄를 용서한 다음에 능히 너희들을 천국에 보내는 권세가 있는 그 분을 믿고 사랑하라』고 한다. 잘못된 가르침이다. 먼저 그 분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사도행전 9장 31절에서『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오늘날도 성령의 위로를 구한다. 그런데 그 앞에 주를 경외함(두려워 함)을 빼먹는다. 그래서 성경 전체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께 대한 믿음이 구원이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가 두려워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위로가 임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반쪽짜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누가복음 12장 5절에서 예수님이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세상보다 더 두려운 분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바로 이 말씀을 생각해야만 한다. 이것이 회개하는 자의 마음 자세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염려를 벗어날 수 있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대개 좋지 않은, 나쁜 것들을 두려워한다. 이 세상 교회에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6절에서『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하시고, 12장 13절 부터는『탐심을 갖지말며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하셨다. 또한 12장 29-31절에서는『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그의 나라를 구하면『더 하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아시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2장 32절에서는『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이제는 적은 무리에게『두려워 말라』고 하셨다. 누가복음 12장 1절에서는 말하는 수많은 무리는 헬라어로 오클로스(영어:crowd)인데, 적은 무리는 포이무니언(영어:flock,양떼)이다. 양떼들이 모이는 교회가 진짜 교회라는 말이다. 서로 영적으로 연합되어 있는 하나가 되는 무리들을 말한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기도하셨다. 요한복음 17장 21-22절『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육적인 것이 죽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썩은 웅덩이는 스스로 깨끗해 질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썩어질 뿐이다. 그러나 썩은 웅덩이가 바다 같은 큰 물을 만나면 휩쓸려 들어가 웅덩이가 없어지는 것 처럼 하나가 된다. 고린도전서 15장 53절에서『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이것이 하나가 되는 것이요 이렇게 될 때 그 분이 우리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했다』고 한다. 사도행전 1장 2-3절에서『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하나님 나라의 일을 제자들에게만 가르쳤다. 썩은 웅덩이 같은 육적인 것이 죽어야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무에게나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다. 회개하여 거듭난 자에게만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회개는 죄를 반성하는 것을 넘어서『자아가 죽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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