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장 31절『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이 부분은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다 믿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두번째 문장『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는 사도행전에 많이 등장하는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명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믿고, 그 이름을 힙입어』생명을 얻게 된다.
요한복음 1장 12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이게 그 이름을 힘입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하기를『애굽에 돌아가서 내 백성을 구하라』 모세가 묻기를『그들이 누가 보냈냐고 하면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이름을 물어보는 것이다. 이름은 그 곳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된다. 1장 13절에서『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이니라』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거듭난 자들』이라는 말이다. 교회 처음 나와서 영접기도 한다고 되겠는가?
주님은 거듭난 자들에게 기도라는 놀라운 것을 주셨다. 기도하면 응답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거듭난 자가 기도하면 주님은 행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신앙생활에서 기도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다윗은 시편이라는 기도를 남겼다. 성경에서는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과의 직통 연결이다. 사람들은 안정된 생활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한다. 믿음은 영적인 문제이므로 육신은 믿음에 적응되지 않는다. 불안정한 삶이 지속된다면 영적으로 흔들리는 것이 육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된 것을 확실히 깨닫고 믿는 자들은 흔들림 없이 기도할 것이다. 이게 거듭난 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매일 매일의 맛나를 먹지 못하면 영적 힘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2절의 영접하는 자는 그 이름을 믿는 자다. 요한복음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내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고 말했다. 요한복음 5장 43절에서『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에서『이름으로 오는 그 분을 영접한다』는 것은 태초에 있었던 말씀의 하나님, 그 분의 이름이『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는 그 이름이다. 회개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거듭난 자의 믿음이다.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그 분을 영접하게 된다.
오늘날『예수믿으세요』라고 한다. 그러나 먼저 깨닫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은 『인간은 모두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라는 것을 알려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죽은 자는 영접할 수 없다. 영접하는 것은 지성소에서의 내용이다. 인간을 성소와 비교하자면 인간의 육체는 바깥 마당에 해당하며 인간의 혼은 성소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은 촛불을 켜고 진설병 떡을 먹는 것처럼 성소 안에서의 일이다. 그러나 주님은 지성소 안에 계신다. 지성소가 바로 인간의 영이다. 그래서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허물과 죄로 죽은 영이 살아나야만 하는 것이다. 영이 죽은 사람은 하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거듭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3장 19절에서『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부터 이를 것이요』먼저 회개하고, 두번째 돌이켜(거듭남), 세번째 죄사함을 받게된다. 이것이 구원의 원리다. 회개를 잘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회개해야만 하는가? 자신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곧 나의 육적인 것이 죽는 것이 회개다. 육적인 것이 죽지도 않으면서 거듭났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회개는 육적으로 죽은 자가 십자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될 때 예수님의 피가 적용되는 것이다. 유월절 날, 양을 잡은 다음에 피를 칠하는 원리다. 죽어야 할 양이 나를 대신하기 때문에 사실상『나』인 것이다. 양이 완전히 죽기 전에는 그 피를 적용할 수 없다. 죽어야만 되는 것이다. 양을 죽이는 자가 바로 나다. 죽어야 할 내가 양을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죽임당한 양과 죽어야 할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어린양의 피가 나에게 역사하는 것이다.
회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고, 믿음은 예수님의 피가 적용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살이 먼저 적용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죽음이시다. 성찬은 예수님 죽음의 몸을 나타내는 떡을 먼저 먹는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될 때 그 다음에 피를 나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것 처럼, 피를 나눈 자를 일으키실 것이다. 이게 거듭남(다시 태어남)이다. 사람에게 없던 생명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에게만 생기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모든 생명을 내어주시고 죽었다는 것이 계시될 때, 예수님의 전부를 얻기 위하여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전부를 드리려고 하는 그 때, 내 속에 마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귀가 불안에 떨게 하고, 하나님께 삶을 드리는 것이 가장 불안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 참 기쁜 일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 속에서 마귀가 막는 것이다. 귀신들린 사람으로 부터 귀신이 나간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귀신이 나간 것은 그 사람의 몸으로부터 나간 것이다. 그래서 병이 낫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죽은 영 속에 마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말로는 회개한다고 하면서도 정말 회개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자기가 주인이면서도 예수가 주인이라고 하고,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육적 자아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본다. 회개의 열매가 있는지를 바라보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깨닫고, 돌이켜야만 구원받는다. 회개없는 상태에서『예수님의 피의 공로 만을 믿으세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가짜 복음에 불과하다.

예수를 믿을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연합되어 모든 것을 드리는 삶이 되지 않는 한 구원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늘날『드리는 것은 성화되는 사람 만이 하는 것이고, 부족하지만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 피의 공로를 적용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예수의 피 공로로 죄만 씻으면 구원받는 줄로 오해하고 있다. 죄를 씻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 구원이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에서 세례를 받는 것이 죄 사함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세례는 죽는 것이다. 로마서 6장 2-3절에서『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은 회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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