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받은 자는


갈라디아서 3장 26-27절『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은 사람이『예수를 믿는다』라는 말과 다르다.『예수를 믿는다』라는 말은『예수의 어떤 사실을 믿는다』라는 말이다. 즉『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었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말로 받아드린다. 그러나『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믿음』에 대해서 3장 25절에서 바울이 설명하고 있다.『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즉『믿음이 오는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를 믿는다』라는 말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서『내가 믿기로 한 나의 믿음』을 말한다. 다른 곳으로 부터 온 믿음이 아니다. 내가 믿기로 한 믿음은 초등교사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믿음이 주님으로 부터 와야 한다. 인간이 빛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빛은 태양으로 부터 와야한다. 마찬가지로 믿음도 와야한다. 오지않은데,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3장 23-24절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갇혀있는 자는『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을 초등교사인 율법이 가르쳐 준다.
세례는 물 속에 들어가서 육적인 것이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물속에서 죽은 자가 예수와 함께 부활 생명으로 살 수 있게 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예수와 함께 죽는 의미가 깨달아지는 것이 바로 예수로 부터 오는 믿음이다. 단순히『나는 예수와 함께 죽었다』라고 말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드려야만 하고, 그 결실이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이다.『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생각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결국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속에 주님이 없기 때문이다. 요한1서 2장 15-16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부터 온 것이라』오늘날은 아무런 열매도 없는데,『예수믿는다』는 말 한마디로『구원받았다』고 사람이 선언하는 실정이다. 사람이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언하신다. 아브람도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로마서 4장 19-22절에서『의로 여겨짐을 받은 것』은 100세가 되어서였다.
오늘날 구원의 주체는『나』로 바뀌고 있다. 내가 성령을 의지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사람들에게 오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에게만 역사하신다. 회개는 예수와 더불어 자아가 죽고, 세상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는 자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요한복음 12장 39-40절에서『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믿음을 주지 않는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믿음이 온 후로는』 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4장 12절에서 예수님이 이사야서를 인용하고 계신다.『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이사야서에서 주님이 이사야에게 불에 달구운 젓가락을 입에 대고 정결케 한 다음,『이사야야 내가 너에게 나의 말을 주겠다 전해라 그런데 사람들이 듣지 않으리라』라고 하셨다. 주님이 이사야에게 말한 요지는 『백성은 악하여 회개하지 않으므로 깨닫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바벨론에 끌려 가게 하겠다』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노라』라고 격려의 말들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따라가지 말고 성경의 말씀을 따라가야만 살 수 있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많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셨다. 택하심을 받음 자는 하나님으로 부터 예수의 믿음을 받는 자다. 그들은 회개하여 예수와 함께 죽고, 거듭난 자를 말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4장 12절에서 언급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네가지 밭의 비유를 하셨다. 그 중 한가지 밭만 구원받는다고 하셨다. 그 밭이 바로 회개한 밭이고 좋은 밭이다. 회개하는 자는 밭을 가는 것이다.『밭을 간다』는 것은『자기』라는 굳으진 흙을 깨는 것이다. 나쁜 밭은 모두 말씀의 씨가 자라지 못하는 밭이다.『자기』라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 말하는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믿음의 씨가 회개하는 자에게 뿌려져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이『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셨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자신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좋은 밭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열매를 보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나는 죄인이구나』라는 고백은 대부분 하고 있지만,『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지옥가는구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모순이다. 죄인은 지옥 갈 수 밖에 없는데, 예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단순하게『지옥가는 것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인이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는게 문제다. 예수님의 죽으신 것만 의지하고 자신은 죄에 대해서 죽지 않는 것이다.『죄를 짓고 있다』는 것은『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심판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죄를 회개하려고 한다.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됨을 회개해야만 한다. 교회에서 죄를 회개하고 나면『이제 천국 갈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안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의『날마다 죽노라』라는 고백을 기억해야만 한다.

로마서 4장 2-3절에서『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이 귀절을 가지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자들이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마서 4장 19-22절에서는『의로 여김을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아브람이 의로 여김을 받은 것은 죽은 자 같이 되어 이삭을 얻은 100세가 되어서이다. 아브람이 스스로 얻을 수 없는 생명이 생긴 것이다. 이 생명이 거듭남이고 세례고 의롭다 하심이다. 이 때 하나님이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명심해야만 살 수 있다. 회개하지 않고, 육이 죽은 후에 심판받지 말고, 이 세상에서 살아있을 때 회개하여 육체 대신 육적 마음이 예수와 더불어 죽어야만 새 생명으로 살 수 있다. 육적 마음이 마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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