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승천하셨을 때 일어난 일


에베소서 2장 5-7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이 말은『세례』를 표현한다. 모든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어있다.『영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서는 살아있다. 그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구원이다. 이것이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나오는 내용이다.『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구원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믿기로 하여『하나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성립이 안된다. 왜냐하면 허물과 죄로 죽어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예수와 함께 살아나서 하나님을 영접해야지, 죽어있는데 영접을 말한다고 그게 되겠는가? 구원의 핵심은 인간이 허물로 하나님께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와 함께 살리신다. 허물로 하나님께 죽어있는 것을 깨닫고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 회개요, 이렇게 죽으므로 다시 예수와 함께 태어나는 것이다.『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선물은 예수와 함께 죽을 때 받는 것이다. 이 믿음은 거듭남 자에게만 생기는 믿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다.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권세가 에베소서 2장 6절의 말씀이다.『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믿는 인간의 존재는 이 땅에 있는데,『하늘에 앉히셨다』고 한다.『승천하신 주님과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는 그 권세가 에베소서 2장 6절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대적했던 사단이 하나님 나라로 부터 쫒겨났다. 사단은 하와보다 지혜가 더 높아서, 죄가 없는 하와를 죄짓게 했다. 인간을 죄 짓게하는 일은 사단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단과 그 추종자들이 빼앗긴 것은 능력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자녀의 권세였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는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많이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임했는데, 이게 사실 더 놀라운 일이 아닌가? 왕의 아들의 권세를 얻은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셨다. 40일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수백명의 제자를 제외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셨다. 그리고 승천은 아주 소수에게만 보여주셨다. 왜 그랬을까? 천국은 혼인잔치를 준비한 왕의 아들의 마음이라고 했다. 초청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혼인잔치에 오게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결박하여 바깥 어둠에 던져버린다는 내용이 나온다. 주님은 자기 아들 잔치의 기쁨 중에서도 의를 잊지 않으신다. 그리고 『부르심은 받은 자는 많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라고 하셨다. 그런데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말한다. 그러나『회개하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신다』회개를 빼고 말하면 잘못이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부자가 죽어서 지옥에 갔고, 거지는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지옥에서 그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나의 형제가 다섯이 있는데, 저 거지를 다시 살려 보내서 내 형제들에게 지옥에 오지 않도록 부활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간청한다. 그런데『다시 거지 나사로가 살아나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가 있다. 권함(회개)을 듣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도, 그것과 인간의 회개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율법 앞에 설 때 비로소 회개한다. 왜냐하면 율법 앞에 설 때 심판 받을 자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보다, 율법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만 구원에 다가갈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이 오기 전에는 모든 자는 율법 앞에 서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자신이 율법 앞에 서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달은 자는 회개할 수 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자신이 스스로 믿는다고 하지만 율법의 굴레로 부터 빠져 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죄인은 법이 그를 둘러싸게 된다. 법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죄인됨』을 두려워해야만 살 수 있다. 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죄인됨(악)은 용서가 안되는 것이다. 악은 죽어야만 된다. 죄는 법조문에 규정되어 있지만 악은 법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 법조문을 통해 죄는 규정되지만,『죄를 지은 자신이 악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법정에 선 죄인이 죄를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정작 마음 속에서『자신이 악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따라서 죄를 회개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악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회개하고 죄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구약과 신약의 대비를 통해서 보여준다. 출애굽은 예수를 믿는 것과 같다. 광야는 회개할 기회다. 요단강에서는 모세가 없다. 모세가 새 이름을 지어준 여호수아(예수)와 함께 건너가는 것이다. 광야를 나온 후 1년 만에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냈는데, 주님이『내가 약속한 것을 탐지하고 오라』고 하셨다. 그들이 40일 동안 보고 돌아왔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맞다. 그러나 열 정탐꾼은『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다』라고 자기 생각들을 말했다. 하나님에게는 거짓말이 된다. 사람에게는 진실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에게는 거짓이다.
그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승천에 해당한다. 민수기가 끝나갈 무렵 모압 땅까지 왔는데, 모압의 왕 발락이 나타난다. 그 왕이 두려워 떠는 것이다. 그래서 발람이라는 거짓 선지자를 불러서 저주하게 했지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거짓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민수기 23장 21-22절』에서 진실을 말하게 하셨다.『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자에게 죄사함을 확정하시는 내용이다. 이것이 요한1서 3장 9절의 말씀이다.『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민수기 23장에서『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라는 말씀은 신약에서 승천을 의미한다. 부르는 소리(히브리어:요마 투로와)는 바로 나팔소리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자 말자 외쳐서 여리고성을 부숴버린다. 『외쳐라』가 투로와다. 양각 나팔 소리를 들을 때『외쳐라』고 하셨다. 그들이 외칠 때 여리고성이 무너진다. 승천의 권세를 예표하는 것이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주님은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지 않고, 나팔을 부는 권세를 주신 것이다. 시편 24편 7절에서도『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승천하시는 주님을 보여주신다. 가나안 땅 앞에서 열 정탐꾼이 왕을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떼와 같다』고 했다. 예수님의 승천을 생각하며 오늘날 세상에 서 있는 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나 생각대로 하나님은 대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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