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누가복음 12장 49-50절『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하나님 말씀이 임한 다음에 외쳤는데, 죄사함을 향하여 가는 회개의 물세례를 외쳤다. 그리고『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라고 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무조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만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크고 작은 죄에 대해서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으며, 피흘리심이 없는 죄인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되는 길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해서 죄 사하심을 얻는 것이다. 그 피흘림은 죄인이 흘리는 피가 아니라 의인이 흘려야 대속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리시는 것이다. 피의 대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연합되는 자도 같이 죽는 것을 믿어야만 한다. 그러면 예수와 연합된 자의 죄를 피흘림으로 대속하시는 것이다. 아무나 대속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연합되는 자에게만 피가 적용된다. 왜냐하면 그 피는 원래 죄인이 흘려야 하는 피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예수와 연합되지 않으면, 심판 때는 죄인이 피를 흘려야 할 것이다.
로마시대는 갈릴리를 중심으로 최전방이 형성되었다. 로마의 최강 10군단이 카이로로 부터 갈릴리까지 주둔하고 있었다.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가혹한 세금을 내어야만 했다. 그들이 겪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벽과 같은 뿌리가 있음을 많은 유대인들이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의 죄로 인한 것을 깨닫고 세레요한에게로 회개와  죄사함을 받기위해 갔던 것이다. 오늘날 현실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어려움의 원인들은 다양할 것이나, 회개하지 않고,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단절된 뿌리가 있음을 발견해야만 한다.『하나님없이도 얼마든지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그런 삶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 대한 『악』은 사형에 해당한다. 모든 기준이 하나님이 되어야만 한다. 로마서 1장 18-31절에서는『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설명한다.『우상숭배와 동성연애,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32절에서는『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특히『수군수군하는 것』을 성경은『숨어서 쏘는 불화살』이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의 법정은 세상 법정 보다 더 엄격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거룩하게 살도록 지으셨다. 여기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이 죄며, 법정 최고형인『사형』이라고 했다. 사형감이 된 인간은 결국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가 과연 있겠는가? 사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예수와 연합하여 위와 같은 육적 마음이 죽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죄들은 죽을 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셨는지 이해하게 되고, 이것이 주님보시기에 회개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나는 죽었다』고 고백하게 된다. 이게 거듭남이요, 구원이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성도에게 계시를 주시고 역사하게 만드신다. 성령세례는 성도가 복음을 전하고 승리하는 삶을 위하여 힘을 주시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말하기를『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부활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으셨다. 로마서 10장9절에서『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으므로 부활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구원에 도움이 될 것인데,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랐던 자에게만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을 본 자들도 남에게 그 부활의 증거를 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세례를 주셨다.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라』고 하셨다. 성령세례는 다른 사람의 영적 생명을 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거듭난 자에게만 주시는 것인데,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성령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성령이 아니라 악령을 받는 것이다. 주님은 여기서『불세례』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세례요한은 불세례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지 않으므로 『불세례』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한번 사용되었다.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불만 붙었으면 다른 것은 바랄게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삼년 동안 하신 것은 불을 땅에 던지러 온 것이다. 그리고 50절에서『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에 대해서 들었을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좋아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보기에『저 사람들, 술 취했구만』라고 했다. 술 취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령세례를 받아서『새 술에 취했다』고 말한다. 새 술은 바로 『천국이 임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복음이 전파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이 구원이 전달되기 위해서 성령세례를 구한다.
제자들은『지금 아침이 아니냐 여기 술 마신 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삼년 동안『성령세례를 준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내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온 이유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하셨다.『나의 받을 세례가 있으니』라고 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옵소서 그리고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도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을 따르려고 하니까 죽게된 것이다. 우리도 내 소원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한다면 기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불세례다. 불세례는『죽을 것 같은 것을 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회개하고 거듭나서 죄사하심을 받았지만 성령세례가 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듭난 자가 구해야 하는 것은 불세례다. 그 이유는 누가복음 12장 51-53절에서 말한다.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힘을 얻기 위함이다. 힘을 받으면 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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