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마가복음 16장 16-18절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다 예수믿고 세례받아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귀신을 쫒아내고 방언하고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아니하는 자들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말씀을 붙잡는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빌립보 간수처럼『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그리고 사도행전 8장 13절에서『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마술장이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았다. 마가복음 16장과 비슷한 말씀이다. 그런데 그는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았다. 그랬더니 시몬이 베드로에게 돈을 드려서 자기도 다른 사람을 안수하면 동일한 일이 일어나기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8장 21-23절에서 베드로가『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왜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게 되었는가?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 베드로가 시몬에게 악독이 가득하다고 했다.『악독이 가득하다』라는 말은『충만하다』라는 표현이다.『네 속에는 악함 밖에 없다』는 말이다. 8장 24절에서 시몬이 반응한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시몬이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다. 베드로가『회개 기도하라』고 했는데, 시몬은 베드로에게 기도해 달라고 했다. 회개는 자기 자신 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구원에 대해서 성경 말씀보다는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다. 그게 악함이 충만한 것이다. 예를 들어『죄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고 했는데, 『죄를 씻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믿고 세례 받는다고 반드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회개없는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8장 31-32절『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이 잡혀왔을 때, 죽지 않도록 살려주시는 내용이 8장에 등장한다. 율법에 의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데, 살려준다. 그 다음에 19절에서 자기를 미워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한다.『너의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25절에서『너는 누구냐』라고 또 물어본다. 그리고 30절에서 설교를 듣고 난 후『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들이 믿더라』사람들이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아니다. 이렇게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예수의 말씀을 믿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주님의 말 안에 거해야 구원받는다』는 말이다. 말씀을 믿는 것과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말씀을 믿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어서 객관적인 사실을 믿는 것이고,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은 내가 주체됨을 내려놓고, 주의 말씀이 주체가 되어 주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육적인 자아에게는 이런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회개하고 육적 자아를 내려놓아야 주의 말씀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의 출애굽과 같은 내용이다.
출애굽시 애굽 사람들이 유월절의 심판을 받은 것을 보았고 홍해바다가 갈라져 많은 애굽의 병사들이 수장 당하는 기적을 보고, 살아나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1년 동안 맛나를 먹고 유월절을 지켰다.  그런데 1년 후에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드려 보낸 것이다. 가나안이 약속의 땅인지 확인하고 오라는 주의 말씀이다. 광야에서 태어난 자를 제외하고, 출애굽시의 인구 70여만명 중 2명(여호수아와 갈렙)을 외에는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말이다. 육의 눈으로 보니까 그 땅은 아낙자손들이 사는 거민을 삼키는 곳이라는 것이다. 들어가면 죽는다고 통곡하며 외쳤다. 네피림을 보는 순간 주님의 말씀 밖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주인이 주님에서 자기로 바뀌는 순간이다. 마술장이 시몬과 같은 내용이다. 성경은『저희가 믿지 않으므로 멸망하였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다. 그러나 말씀 속에 거하지 않았다. 그들은 광야에서 맛나를 먹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통해서 놀라운 영적 체험을 했지만, 주님은 그들을 믿지 않으므로 멸망시켜버렸다. 그들이 믿는 믿음과 주님이 바라보는 그들의 믿음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가나안은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나타낸다. 가나안은 믿는 자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육적 자아를 내려놓아야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들어갈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의 유혹이 아낙자손처럼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복음적 신앙생활을 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육의 마음으로는 받아드릴 수 없게 된다. 오직 자기를 부인하는 자만이 주의 말씀 속에 거할 수 있는 것이다. 주의 말씀에 거하지 않으면 자기가 믿는 믿음은 허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주인이 자기에서 주님으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다. 나의『나된 것』을 포기하는 것이 회개라는 말이다. 회개하는 자 만이 세상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고, 죄에 대해서는 죄의 뿌리가 죽는 것이다. 죄를 짓는 것을 버려야만 한다. 예수님은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는데, 인간들은 어떻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한다. 이것이 육의 생각이다. 회개는 죄를 짓는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스스로 믿는다고 말한다. 육적 인간은 주님의 말씀 속에 거하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서 지은 기억나는 많은 죄를 반성하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날마다 회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세상을 사랑하고 다시 죄짓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런 회개가 아니라 사도바울의 고백처럼,『나는 날마다 죽노라』라는 회개가 있어야만 한다.

옛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옛사람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체험하고 기적을 체험해도 죽어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옛사람은 육적인 마음으로 비롯된 자아를 말한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이다. 복음은 자기의 정체성이『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존재구나, 광야에서 죽어야 할 자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의 십자가 속으로 연합하여 들어가는 것이다. 요단강에서 율법의 사람인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이다. 이것이 세례다. 자기가 예수를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주인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예수가 주인이 될 때, 세상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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