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에베소서 2장 8절『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이 말씀은 회개한 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교회에 처음 나와 회개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자에게 적용하면 곤란하다.
사도바울이 죽기 얼마 전에 사도행전에서 유대인들에게『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믿음』을 전했다. 이것이 구원의 조건이다. 그래서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도『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강조된 것은 회개하라는 것이다. 즉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간수에게 고문를 당하고도 감옥에서 예배했다. 예배는 능력을 나타낸다. 예배는 창조의 회복이다. 그런데 그 때 옥문이 열렸는데, 도망하기 않았다. 빌립보 간수는 잠을 깨서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당연히 사람들이 도망한 것으로 여기고, 자살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바울이『네 몸을 헤치지 말라』라고 했다. 간수는 심히 떨며 엎드려 절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다. 그 때 바울이 말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빌립보간수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회개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이 말을 전한 것이다.
단순히『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이 말을 전한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회개가 빠져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잘못된 것이다. 신구약 전체의 말씀 중 회개가 빠지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에베소 교회에 말한 믿음은『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믿음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님이 부르심을 얻어서 믿는 믿음과 하나님이 택하셔서 믿는 믿음이다. 부르심을 얻어서 믿는 믿음은 육이 믿는 믿음이지만 택하신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이라는 말이다. 이 두 믿음이 만나기 위해서는 자아가 죽는 회개가 있어야만 한다. 내가 믿기로 하여 교회에 나갔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회개가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면 믿음의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자 만 하나님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30절『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믿삽나이다』라고 제자들이 믿는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이 31절에서『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라고 했다. 이 말씀은 『너희가 나를 믿는다고?』라는 것으로『믿는 것이 아니야』라는 말이다. 그래서 32절에서『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어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니라』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오늘밤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3년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과 놀라운 경험을 체험했지만 거듭나지 않았다. 즉 다시 태어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육의 마음이 죽지않고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었다. 이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믿음은 귀신들도 믿고 떨었다. 이 믿음이 구원받는다면 귀신들도 믿었으므로 구원받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런 믿음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죽으러 왔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믿음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예수님은 제사장들로 부터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라고 했다.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그리 마옵소서』라고도 했다. 유일하게 죽음을 이해했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마리아라는 여인이었다. 예수님은『복음이 전파되는 것에 이 여자를 기념하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예수를 따랐지만, 이 여인은 십자가에서 죽을 예수를 따랐던 것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예수를 따를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지만 십자가의 예수를 따를 수 있는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을 수 있는가? 그런데 죽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인이 자기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죄를 회개하면서도 스스로 죄의 뿌리를 포기하지 않은채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날마다 죄를 용서받으려고 하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세상을 사랑하여 탐심의 욕구를 불태우고 있으며, 율법에 대해서 죽으라고 하는데도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어, 법 조문을 가지고 스스로 또는 타인을 징계하는 현실 속에서 예수님이『너희들이 나를 믿는다고?』말씀하실지도 모른다. 육의 마음으로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육의 마음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만 영의 마음으로 할 수 있다. 로마서 8장 3-4절에서『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심이라』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만 영을 따르는 자다.
하나님은 왜 죽음의 언약 속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는가? 바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한 후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죄는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누구든지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넘어선 온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시다. 예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속으로 들어가는 길 외에는 없다. 회개하고 예수 속으로 들어가야만 대속이 적용된다.『예수가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자기 십자가의 길은 바로 자기 부인이다. 왜냐하면『자기』라는 정체가 바로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았던『하나님없이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자기』라는 정체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다.『자기』라는 정체는 하나님을 대항하는『악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것을 고백했지만 예수님은『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것을 믿느냐』라고 말했다. 니고데모는 십자가의 예수를 받아드리지 못했다. 그래서 떠나가 버렸다. 오늘날도 많은 경우 이와 같은 믿음을 말할지 모른다. 전도나 선교는 바로 예수의 십자가를 전하는 증인들이다.『증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르투스(영어: martyr)는 순교라는 의미를 가진다. 초대교회 당시 증인이 되는 길은 순교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순교자를 통해서『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그리스도이구나』라고 믿을지는 모르지만 이런 믿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던 사실을 약 2000년 뒤에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죽은 예수를 믿고 연합될 때, 연합된다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요, 일치되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 믿는 자에게 부어져야만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자기라는 정체성』이 죽는 회개가 있어야만 한다. 거룩하신 영이 주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되기 전까지는 이런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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