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장 10절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에서『통일된다』는 헬라어는 네 단어의 합성어다.『gether, together, in, one』하늘에 있는 곳과 땅에 있는 곳이 하나가 되어 함께 모여있는 곳이다. 이게 구약시대 가나안이요 신약에서의 교회다. 교회는 하나가 되는 곳이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곳이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릴 것이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 교회는 참 성도가 모이는 곳이다. 하나님이『두 세명이 모이는 그 곳에 함께 하신다』고 했다.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 성도가 함께 하는 그 곳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이다. 그래서 능력이 나오는 것이다. 참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속량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들어가는 곳이 가나안이요 교회다. 거듭난 자만이 교회의 성도라고 할 수 있다.『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느니라』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거듭나게 해 주시는 것이다.  
앞 절1장 8절에서는『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했다. 속량(구속)이 죄 사하심이다. 구속이 있어야 죄 사하심을 받는다. 피값을 지불하고 사단의 지배로 부터 예수의 지배로 들어오는 것을 구속이라고 한다. 예수의 지배로 들어오면 예수님이 회개한 자의 죄를 씻어주는 것이다. 예수의 지배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회개해야만 한다. 예수의 지배는 예수님이 회개한 자의 주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속량은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가 나의 주인이 될 때, 그 분은 그리스도가 되신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는데, 베드로는『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했다. 헬라어 원문에는『주』라는 말이 없다.『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되어 있다. 베드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많은 기적을 보고 체험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했는데, 정작 삼년 뒤에 알게 된 것은『베드로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였다』는 말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주』라고 칭하면서 주인이『나』라는 사실을 보게된다. 그래서 예수님이『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신 것이다.『자기』라는 존재는 마귀의 지배를 받는 마귀의 종이기 때문이다.『자기』라는 존재는 죄를 짓는 존재요, 율법적인 존재이며, 세상을 사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주인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이『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하셨다. 그랬더니 열두 명이 다『아니라』고 했다. 베드로는『이 사람들은 다 당신을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습니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믿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회개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회개는『자기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의 십자가에서 자기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자기 부인 없이 믿는다』고 하므로 베드로와 같은 입장이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철저히 자기가 주인이었던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죄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으려고 하지만 여전히 죄를 따르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나지 않은 것이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사람이 어떻게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한다면『거듭난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예수님도『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된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만 가능하다.
『율법에 대해서』라 함은 모든 행위에 대해서, 성경이든 세상 법이든 그것을 근거로『자기와 남을 판단하며, 탓하며 정죄하는 행위』를 말한다. 율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믿음이 하늘로 부터 오게되면 복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복음은 자기 부인을 통해서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 라 함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데, 여전히 세상 풍조를 따르고 세상을 사랑한다면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다. 요한1서 2장 15절『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그러므로 회개는『죄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죽지 않은『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다.
주님이 핏값으로 회개하는 자를 건져내신다. 그래서 죄를 씻어주신다. 이 과정이 애굽으로부터 건져내셔서 광야에서 옛사람은 죽고 연합된 새 사람만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게 구원의 과정이다. 한 순간『믿습니다』라고 한다고 구원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원은 죄 사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죄 사함은 구원의 결과다. 자기를 부인해야만 주인이 예수로 바뀌는 것이다. 자기라는 말은 다른 표현으로 자아를 말한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세례는『자아』라는 존재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의 뿌리인 자아가 죽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나를 위해 사는 것』은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를 위해 쌓은 것은 모래성과 같은 것이다. 예수가 주인이 되는 삶 만이 구원이다. 예수를 위해 살지 않으면 결국 나를 위해 사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재물 외, 자기를 위한 탐욕의 재물은 식탁에 오르지 못하게 해야만 한다. 탐욕의 재물은 주님이 받으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상은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오늘날 최대의 우상은 재물(맘몬)이라는 우상이다. 마귀가 예수를 재물을 이용하여 죽인다. 가롯유다는『돈을 좋아하는 자』라고 표현했다. 은 삼십 냥에 예수를 팔아버린다. 사단은 돈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에게『거듭나는 은혜』를 베푸신다. 교회에서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능력이 없는 교회가 된다.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없으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교회마다 분쟁이 일어난다. 분쟁의 바탕에는『자기』라는 존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주인이 아니다. 예수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머리되는 예수님과 몸이 되는 예수님이 분리될 수 있는가?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는 입으로는 주의 몸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서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를 채우려고 한다. 회개를 부르짖는 교회가 많지 않다. 교리를 앞세워 회개를 잠깐 언급할 뿐이다. 그래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리더쉽을 생각한다. 주님의 교회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가 되는 곳이다. 자기를 위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나간다면 주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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