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
로마서 6장 6-7절『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세례에 대한 말씀이다. 6장 2절에서『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죄를 죽일 수 없다. 죄에 대하여 우리가 죽어야 구원이 이루어진다.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은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길 뿐이다.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에 구약시대에서는 장차 메시야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러 오시는 것이 계시되었다. 구약시대 약속을 믿은 사람들은 미래에 있을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 믿음과 연합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사는 신약의 사람들은 과거에 십자가에 죽은 예수와 연합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연합이다.
구원의 길은 쉽지 않다. 좁은 길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런데 16장에서는『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고백했다. 우리는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부활을 매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죽음을 대신해 죽었다는 것보다 놀라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그와 함께 세례를 통해 죄에 대하여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절『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그의 죽으심과 합하는 것이 회개다.
회개는 육적으로 비롯된 자아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적 자아가 바로 죄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회개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가 넘친다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십자가가 선포될 때 함께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 뿐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정상적인 일일 것이다. 원래 죽을 수 없는 분이시다. 그 분이 승천하신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분이 오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분은 원래 그 곳에 계셨던 분이다. 죽임 당한 어린양을 노래하는 자는 회개하는 자다. 회개하는 자들에게 놀라운 소식은 십자가의 소식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연합되는 자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 바울의『날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날마다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이것이 율법으로 보이며, 믿음을 가지고 성령을 추구한다. 이것이 미혹이다. 십자가의 감격보다 성령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 이게 미혹의 시작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십자가는 자기의 죄를 대신해 죽는 방편에 불과하다. 자기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방편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며, 자신의 믿음을 확정하고 싶은 마음으로 성령도 추구한다.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죽은 자는 허물과 죄로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죄로부터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대신하여 죽은 분은 예수 그리스도다. 인간이 스스로 허물과 죄를 속하기 위하여 죽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대속의 죽음이 인간들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말로만 믿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과 연합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6장 5절에서 말하는 것 처럼,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은『예수와 함께 죽었다가 예수와 함께 다시 산 사람』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오늘날 말로만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싶다. 그 이유는 세례의 의미를『죄를 씻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죄를 씻는 것 자체가 죽지 않는 이유다. 죄를 씻는 대상이 죽어야 하는데,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세례는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말한 것처럼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교회 처음 나온 사람에게 죄인임을 고백하게 하고,『예수가 십자가에서 당신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했다면 뭔가 하나가 빠진 것이다.『당신도 예수와 함께 죽어, 예수와 연합되어야 한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이다. 죄의 뿌리인『육적 자아가 죽어야 한다』고 말해 주어야 정답이 된다.『죽은 자』만 죄로부터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입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하는 자 중에 현실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육적 자아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죄를 고민하는 사람은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알려 주어야만 한다.
요한1서 2장 15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죄책감이 없다.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귀가 가만히 둔다. 세상은 바로 주인이 마귀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 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누가 주인이겠는가?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박힌 자 이게 출애굽을 한 자다. 그 때 부터는 죄가 나를 둘러싸고 공격한다. 그 죄로부터 십자가로 인도되어야만 한다. 애통하는 마음이 되어야만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내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회개하고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자를 이끄신다는 말이다. 회개하고 애통하지 않은 자는 십자가로 오지 않는 자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세번 부인하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고 하셨다. 제자들이 『왜 우리가 지금은 갈 수 없고 나중에는 됩니까』라고 되물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길 뿐이다.
연합은『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기 위해서는『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는 동질성을 말하는데, 유일하게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다. 육적으로 비롯된 자아가 죽는 것이다. 회개하고 예수와 더불어 십자가에서 죽을 때 새생명을 얻게 된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4장 19-24절『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는 것이 구원이다. 이 약속을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가 75세였는데, 25년간 순종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기의 생각이 주인이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죽은 것이 되었을 때가 100세였다. 죽은 자만이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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