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라디아서 3장 26절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핵심이다. 왜냐하면 구원은『그리스도 안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이『방주 안』과 같은 것이다. 그 안에서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은 사람들이『예수를 믿겠습니다』라고 결단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가 구원이다. 3장 27절에서 말하는 바『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이 믿음 만이 구원받는다. 회개는 죄를 깨닫고,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자아가 죽는 것이 회개다. 왜냐하면 합하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기 때문이다.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의 몸이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6장 3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는 것을 말한다.
가롯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를 팔았지만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잘못된 것을 깨달았지만 예수께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제사장을 찾아가서 돈을 돌려주고 자살하고 말았다. 회개는 예수께로 돌아와 십자가와 연합되는 것이다. 그럴 때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말한다.『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아담이 에덴동산을 쫒겨난 다음에 입은『가죽옷』을 가리킨다. 가죽옷은 그 어린양이 죽어야만 만들어지는 옷이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자들이다. 이 믿음은 내가 믿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을 자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십자가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연합해 주신다. 그래서 이 믿음을 선물이라고 한다.
회개는 선물이 아니라 자아가 죽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주님이 라오다게아 교회에『너희가 미지근하므로 내가 토하여 내치리라』라고 하셨다. 주님이 말씀하시므로 깨닫게 된다. 주님은『내게서 불로 단련한 금을 사라, 내게서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내게서 안약을 사서 발라보게 하라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라고 하셨다.『회개하라』는 말씀이다.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자는 열심을 내어 회개하는 자일 뿐이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말로만 회개가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5절에서『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믿음이 선물로 오는 것을 말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데, 이 믿음은 회개하는 자에게 선물로 오는 것이다. 초등교사는 3장 24절에서 설명하고 있다.『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율법을 통해서『율법적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구나』라고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율법이 알게한다는 말이다. 결국 세례의 믿음이 의롭다 함을 얻는다.
사도바울이『율법으로는 어려서부터 흠이 없는 자』라고 생각했다. 주님이 불쌍히 여기셔서『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셨다.『율법이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줄』로 생각하는 자들도 많이 있다. 사람들이 열심히 믿으려고 하며, 그것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울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즉시 눈이 멀어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된다. 삼일 동안 먹지도 못했는데, 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겠는가?『저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맞구나, 저분이 왜 죽었을까?』그는『왜 죽었는가』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율법적 사울이 자신을 죽였던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사울은 율법이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것으로 표현하게 된다. 오늘날 교회에서 율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성경에 비추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게 율법이 초등교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이 초등교사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에 비추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자아가 죽지 않은 상태가 된다.『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전적으로 죽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주체는 자기지만,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은 주체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율법적 생각에 갇혀있는 것이다. 성경지식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만 하지만, 그게『율법적인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모든 성경 지식은『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율법적 사고를 버리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게 사울이 삼일 동안 한 회개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이 회개를 이루어야만 한다.
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율법적인 것은 죄를 발견하게 해 주어도, 죄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죄는 그 뿌리가 죽어야만 한다. 그 뿌리 안에는 탐욕과 우상이 도사리고 있다. 그 뿌리가 잘려나가야만 한다. 그래서 죽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뿌리가 죽지 않는데, 죄를 씻는다고 죄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죄를 씻으면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죄의 뿌리가 죽지 않으면 죄를 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나』라는 존재는 죄의 뿌리를 죽일 수 없다. 회개하고 십자가로 돌아오는 자를 하나님이 로마서 8장 3-4절에서와 같이 긍휼히 여겨서, 예수와 연합하여 그 일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세례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다. 연합되는 것은『예수님의 죽음』이『회개하는 자의 죄』가 되는 것이다. 값을 치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자의 죄가 되시고, 회개하는 자는 예수의 생명을 얻는 것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회개해야만 복음이 믿어지는 것이다. 자아가 죽는 회개도 없으면서, 믿는다고 말한다면 가짜 믿음이다. 사도행전 20장 21절에서 사도바울은 죽기 전에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한 내용이다.『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하나님께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회개할 때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 회개와 믿음 사이에 있는 것을 예수님이『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내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다.『내게로 올 자』는 부활하신 예수가 아니라,『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에게로 올 자』를 말한다.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면 예수의 죽음과 연합될 수 없다는 말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신다. 회개는 자아를 부인하는 자다. 십자가에 연합되어 자아가 죽어야만 부활과 연합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너희들은 내가 가는 길을 올 수 없지만 후에는 그러하리라』라고 하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지만 회개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갔다. 주님은『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베드로와 같이 예수를 부인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주인이 예수가 아니라 자기이기 때문이다. 성경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 쌓은 믿음으로는 불가능하다. 오직 예수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는 것이다. 베드로는『믿음을 더해 주십시요』라고 말했지만 주님은『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된다』고 하셨다. 중요한 것은『십자가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회개는 『마음의 밭을 갈고 기경하는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마음을 굳게하는 돌을 제거하고, 가시나무의 떨기를 제거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