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갈라디아서 3장 22절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성경은 먼저 죄로부터 해방되게 하는 책이 아니라, 죄 아래에 가두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 때문이다. 약속이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는데, 하나님은 두 번에 걸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첫번째 약속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횃불 약속을 말한다. 짐승을 쪼개어 그 사이로 하나님의 불이 지나갔다. 아브라함에게는『지나가라』는 말씀이 없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의 언약은 (히브리어:베리트)『쪼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언약을 지키지 않는 자는『이렇게 죽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언약을 지키겠다』고 하신 것이다. 아브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 두번째 언약은 할례의 언약이다.『내가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셨다. 할례는『아브라함에게 행하라』고 하신 언약이다. 하나님의 언약에 아브라함을 초대한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은 일방적인 언약이다. 많은 사람들이왕의 혼인 잔치에 초대되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서 길에 나가 아무나 잔치에 데려왔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있었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두번째 언약과 같은 쌍방간에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구원의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에서는『일방적인 언약이 완전한 구원으로 인도한다』고 가르치는 실정이다.『믿는다고 하는 자』가 죽음의 언약에 참여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 죽음에 참여하는 것을 믿고 있다. 오늘날에는 두가지 종류의 믿음이 있음을 발견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사실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하고 눈물 흘리지만 대부분『자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하는 것이 거듭남이다.
거듭남이 없이 예수님이 내 대신 피흘려 죽었기 때문에, 내 모든 죄가 씻어졌다고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어야만 예수님의 피가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지 않으면서 피의 효능을 바라보는 것이 많은 경우의 현실이다.
바울이 말하는 구속이 죄사함이다. 구속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단으로부터 죄인들을 사셔서 주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구속이 되어야 죄사함이 있다. 구속이 되지도 않았는데, 매일 죄 용서만 빌고 있다면 그게 가능하겠는가?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자만 피값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구속함을 받았다』고 하면 주인이 누가되는가? 내가 주인인 것이다. 내가 주인인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지도 않고, 자기 십자가도 지지 않는다. 나의 모든 생각과 지식과 경험이 나를 사로 잡는다. 그래서 구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사단의 지배하에 있다.
그래서 주님이 이런 상태를 보여주시는 것이 바로 성경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죄 아래 갇혀있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 이유는『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이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위해서다. 모든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그리스도가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고, 하나님이 다시 부활시켜주시리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다. 이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새생명을 주리라고 하신 씨의 약속이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이 믿음이 오기 전에는 모두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다. 율법에 매인바 되는 것은 율법을 통해서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율법 아래 매인바 된 것이다. 계시될 믿음의 때 까지 갇혀있다. 성경을 모르는 자들도 세상의 법이나 윤리, 도덕을 통해서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모든 노력들이 율법 아래 매인바 된 것이다. 율법은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해준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그래서 율법에 대해서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그게 십자가다. 일방적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로 들어와야만 구원받는 것이다. 십자가로 들어오는 자만『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가 적용된다. 아브라함이 75세 때 하나님 음성을 듣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지만, 10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이 이런 믿음을 인정해 주신 것이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4장 19-22절에서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야『의롭다』함을 받았다고 말한다.
율법이 죄인들을 가두지만, 회개하는 죄인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한다. 이 믿음이 아브라함이 100세때 얻은 믿음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예수믿으세요, 믿으면 구원받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믿음은 아브라함이 100세때 얻은 믿음이 아니다. 뭔가 내용이 빠져있다.『회개하고 예수의 십자가로 들어오세요,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면 구원받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두 가지 믿음의 차이는 믿음의 주체가 누구냐에 달려있다. 주체가 나인가 예수인가? 나를 부인하고 예수 속으로 들어가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많은 교회에서 거짓 복음이 만연하다. 왜냐하면 구원을 너무 쉽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은 좁은 길이다. 자기를 부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거짓 복음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우리는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기 때문에 지금 믿어야만 한다』가르친다.『행위가 아님』을 강조하다 보니,『자기를 부인하는 행위』를 놓치는 것이다.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내적인 자기 부인의 행위를 이루어야만 믿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이 믿음을 얻게 되면 외적인 행위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 야고보서 2장 14-17절에서 말하는『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행함은 열매로 나타나는 행함이다. 행위의 열매가 없는 믿음은 내적 자기부인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해준다.

내적인 자기부인이 바로 회개다. 회개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예수의 십자가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것이 율법이다. 율법이『예수 속으로 들어가는 자』도 십자가에 걸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율법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이게 믿음이 온 후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에서『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믿음』과『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가 충족되어야만 한다. 앞의 믿음은 외적행위가 아닌 오직『마음으로 믿는 믿음』이지만, 뒤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오직『내적 자기부인의 행위』가 따라야만 가능하다. 그래서『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는 자들을 경계해야만 한다. 그들은 거짓을 말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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