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갈라디아서 3장 22절『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죄 아래 가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함이라 했다. 다시 말해서 약속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주님이 믿는 자들에게 약속을 주시는데, 믿는 자들의 믿음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인가? 우리말의 번역은『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고 되어 있지만, NIV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 (faith in Jesus Christ), KJV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faith of Jesus Christ) 으로 되어 있다. 우리 말은『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어가 나다. 그러나 주어가 예수님이 되어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어야만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연합되어,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어야만 약속이 주어진다. 내가 믿는다고 약속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믿음』과 연합되어야만 약속이 주어진다. 그래서 예수님 덕분에 약속이 주어지는 것이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은 것이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또 있다.『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에서 우리 말 성경은『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NIV나 KJV는『그리스도 안에서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야만 그리스도의 믿음이 된다. 내가 믿는 믿음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내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와 연합되어 예수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예수가 주인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중세 때 1500 여년 동안 성경을 읽거나 번역하면 처형했다. 적 그리스도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 회개한 적도 없고 변한 적도 없었다. 그들이 바로 율법이었다. 자기들이 정한 율법으로 사람들을 죽였다. 그들은 면죄부를 팔았다. 면죄부를 사면 구원받는다는 식이다. 그런데 오늘날 누구나 이것이 가짜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루터는 그게 아닌 것을 알게되었다.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통해서 면죄부가 잘못된 것이라고 성경 귀절로 반박했다. 루터는 22세때 처음으로 성경을 읽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잘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을 읽다가 깨닫게 되었다. 노아의 홍수 때 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면죄부에 의지하다가 구원받지 못하고 심판받았을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가르치면, 예수 속으로 들어가는 믿음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면죄부와 예수 믿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살아있는 나의 믿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말하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죽은 자는 예수와 함께 죽은 자다. 예수와 함께 죽으면, 하나님이『너는 의롭다』하시는 것이다.『죽는 것』에 대해서 에베소서 2장에서 말하는 허물과 죄로 죽는 것이 아니라, 로마서 6장 2절에서 말하는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을 말한다. 내가 지은 죄로 죽으면 구원받지 못하지만, 죄에 대하여 죽어야 되는 것이다. 죄로 죽는 것은 영이 죽는 것이지만,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은 육체로 비롯된 혼의 죽음이다. 자기부인이라는 말씀이다. 자기부인이 바로 회개라는 말이다. 죄에 대하여 죽는 자가 구원받는다.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들의 죄에 대하여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스스로 죄에 대하여 죽을 수 없다. 불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속으로 들어오면 예수와 함께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교회에 부르심 받아 나왔지만 자기부인의 회개 없이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담 이후로 모든 사람들이 허물과 죄로 죽어있다. 죽어있는 것은 영이 죽었다는 말씀이다. 이 사람들에게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죽은 영에게『예수믿으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 먼저 영이 살기 위해서는 혼이 죽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중세 때 종교재판관들은 고문 방법들을 개발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잔악한 고문을 자행했다. 왜 그들은 이런 짓을 했는가? 그들이 생각하기에『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성경의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에 의해서 빼앗긴다』는 말이다. 천국은 강제로 취하는 자들에 의해서 빼앗기고 있다. 이게 바로 중세 때 종교재판이고, 오늘날 회개없는 영접기도다. 중세 때 신앙이란 사람이 고백만 하면 구원받는 식이다. 그래서 강제로라도 죄를 고백하도록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고문해서, 이 사람들의 죄를 고백하도록 하여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중세 때 당시는 고문을 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구원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날은 회개없는 사랑의 하나님을 주입하고 있다. 교회 나온 사람이 회개도 모른채『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고, 영접하면 구원받는 식이다. 그러나 자기부인의 회개없이는 불가능한 말이다. 회개없이 우리가 고백하면 구원받는 식은 가짜다. 예수님이『그날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라고 하셨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었다. 이 말씀의 뜻을 모르면 마귀에게 속은 것이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다. 과거 중세 때 사단의 전략은 강제로 죄를 고백하게 하는 전략에서, 오늘날은 회개없는 사랑의 영접기도로 바뀌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만이 구원받는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연합된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어야만 한다. 연합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자기를 부인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이유가 바로 이것을 위해 죽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빛이 비춰지지 않는 한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 구약시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백성들에게『가까이 오면 죽는다』고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다.『돌파하여 가까이 오면 죽는다』고『돌파』라는 말을 사용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그들은 돌파하여 내게로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충돌하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내 죄를 위하여 흠 없는 제물이 준비될 때까지 하나님께 갈 수 없다. 흠 없는 제물을 찾을 때 까지 하나님께 갈 수 없다. 자기부인의 회개없으면 흠 없는 제물을 찾을 수 없다. 회개없이 우리 모든 죄를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가면 모두 죽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었기 때문이다. 죄 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께 나갈 수 없다. 흠없는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만 한다. 죽은 예수와 연합되지 않으면, 그 제물이 나와 동일시 되지 못하는 것이다.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길은 자기부인의 회개다.
갈라디아서 3장 21-22절에서『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함이다.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 아래 갇힌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서 회개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만 그 죄의 감옥으로 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이다. 19절에서『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회개하여『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연합되지 않으면, 23절에서 말하는 것 처럼, 다 율법 아래 갇힌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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