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암에 앉은 백성
마태복음 4장 16절『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예수님이 사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사야 예언을 인용하셨다. 그리고 세례요한이 잡히자 17절에서 전파하기 시작했다.『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흑암에 있는 죄인들이 거하는 이 땅이 사망의 땅이요, 그늘에 앉은 자들이다. 그들에게 비친 빛은 이 세상의 빛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을 말한다. 4장 16절에서 흑암에 앉은 백성이라고 말했다.
복음의 시작은 사람들이 더러움을 씻는 것이 아니라, 어둠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어두움보다 죄사함을 강조한다. 죄인이 죄사함을 받는다고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둠에 있으면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죽어있는 것이다. 아담은 범죄한 후 두려워하여 어둠에 숨었다. 내가 주인인 사람은 어둠 속에 숨어있는 자들이다. 자기 생각, 자기 행동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더러움에 있으므로 더러움을 씻으려고만 한다. 더러움을 씻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어둠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 먼저다. 구원의 시작은 내가 어둠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는 죽은 자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어둠가운데 있으면 여전히 영이 죽고, 혼(자기)이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수풀 속으로부터 나오기를 바라신다.『아담아 어디있느냐? 너 지금 어둠 속에 숨어있잖아』라고 말씀하신다. 예배도 어둠일 수 있다. 예배없는 교회는 없지만, 교회 안에서 죄만 씻으려고 한다면 그 예배는 어둠 속에 있는 것이다. 어둠을 해결하기 전에 더러움을 해결받을 수 없다. 구원의 시작은 인간이 죽어있음을 발견해야만 한다. 죽음은 어둠의 존재라는 말이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개역한글),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개역개정) 영어 성경에는 As for you, you were dead in your transgressions and sins(NIV), And you hath he quickened, who were dead in trespasses and sins(KJV) 구한말 성경에서는『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었었느니라』라고 되어있다. 우리말 성경에는『살리셨도다』라는 말이 작은 인쇄체로 되어 있는데, 헬라어 원본에는 이 말이 없다. 세상 사람들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회개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다 (영)이 죽어있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교회에서 성경보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들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죽은 열매를 맺는다.
2장 2절은 죽은 상태를 말한다.『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탄이다. 허물과 죄로 죽어 있어서 사탄을 따르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얕은 바닷가에서 배의 엔진이 꺼져있는지 알 수 있다. 파도에 따라 배가 똑같이 움직이면 엔진이 꺼져있는 배다. 세상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자들은 죽어있는 자라는 것이다. 파도가 움직여도 파도를 거슬러 가는 배는 엔진이 켜져 있어 움직이는 배다. 2장 3절에서 설명하고 있다.『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건 교회 안에 앉아 있던 진노의 자식들이라는 말이다.『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자기를 속이는 자들이다. 교회 안에서 예배와 기도를 하고 있지만,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 뜻대로 안되면 못견디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여기에서 마음은 잘못 번역된 것으로,『생각』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으며, 이 생각은 육으로 비롯된 생각이므로 혼의 생각이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인류역사상 가장 넘어뜨리기 어려웠던 인간은 죄없는 하와였다. 어둠에 있지 않은데도 사탄에 넘어졌다. 그런데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은 사탄의 종들이다. 교회 안에서도 어둠에 있는 자들은 사탄의 종들이다. 좋은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듣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어둠에 있는 자다. 어둠에 있는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어둠 속에 있으므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둠 속에 있는 자는 성경의 지식은 많은데, 성경이 자기에게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고 있다. 어둠 속에 있는 자는 입으로는 예수믿는다고 말해도 내 육체와 생각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다.
요한복음 8장 30절에서『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30절 앞에 말씀은 정말 믿기 힘든데 믿은 것이다. 그런데 31절에서『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은 어떤 사실을 믿은 유대인들이다. 어떤 사실을 믿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것과는 다르다.『내가 부활을 믿습니다』라고 말하고 생각한다고 부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자만 부활이 일어난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것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연합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종이 되어 살아간다면 진리에 거하지 않는 자들이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고, 빛이 비추어져서 어둠 속에 있는 것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사울왕은 주님의 기름부음이 떠나 가 버렸다. 그 증거로 사무엘이 다시는 만나주지 않았다. 주님이 사울왕을 어둠 속으로 버린 것이다. 그래도 상당기간 사울은 왕으로 계속 활동했다. 18년 동안 하나님 없이 전쟁도 다 이겼다. 오늘날도 이렇게 교회 안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세상적으로 잘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교회 안에 있다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보다 더 불행한 것은 없을 것이다. 다윗도 부하의 아내를 빼앗고 부하를 죽이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살인, 간음, 거짓말을 행했지만 어둠에 있으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죄사함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죄를 고백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죽는 것이 바로 회개다. 죄로부터 떠나는 것이 바로 회개다. 자기를 부인해야만 이렇게 될 수 있다. 죄를 버리지도, 죄로부터 떠나지도 않으면서 수천번의 죄를 고백한다고 죄가 사라지겠는가?
진리가 자유케하는 것 만이 구원이다. 내가 진리를 공부한다고 자유케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있으면 진리 속에 있는 것이다. 나로부터 진리로 주어가 바뀌어야만 된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면서 예배하는 생활을 했지만 진리 안에 거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영적 감각을 잃어버려 자신이 악한 존재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빛을 비춰주셨다.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의 빛을 비추어서 깨닫게 해 주셨다. 오늘도 말씀의 빛에서 깨닫지 못한다면 영이 죽어있는 자다. 작은 탐심이 죄의 시작이다. 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어도 작은 탐심 앞에 무너지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 채우고 예배로 올바른 감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작은 탐심 하나가 죄의 종으로 몰아간다. 다윗이 가진 작은 탐심 하나가 엄청난 죄로 몰아간 것이다. 그래도 다윗은 자기가 죽어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게 어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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