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왕됨


누가복음 19장 13-14절『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이 말씀은 예수님의 선언이시다. 주님이 승천하셨을 때의 말씀이다. 종을 불러 열 은화를 주셨다. 열이라는 것은 세상의 완전 수를 말한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열은 세상에서의 완전 수를 나타낸다. 라반이 야곱을 이십년 간 속이고, 그래서 야곱이 야반에게 내 임금을 열번이나 속였나이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은 20년간 항상 속였다는 말이다.
주님이『내가 오기까지 장사하라』고 하셨다. 이 장사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나누어주는 일이다. 누구에게 나누어 주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미워했다. 이게 지금의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다.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왕 됨을 원치 않는 것이다.『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여기에서 헬라어 원문에는『그들 위에 우리의 왕됨을 …』라고 되어있는데, 『그들 위에』라는 말이 빠져있다.
죄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주인(Lord)이라는 말씀이다. 19장 16-17절에서『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라고 하니, 주님이 칭찬하셨다. 그런데 20절이 문제다.『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이 사람은 주님을 잘 모르는 사람인 듯 하다.『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라고 생각한다. 다 자기의 것인냥 생각한다. 주님은 이런 관계로 사는 사람을 악한 자라고 말씀했다. 회개해야만 한다. 22절에서『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27절에서 주님은『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라고 하셨다.『저 원수들을』은 헬라어 원문에는『저들 나의 원수들을』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주님은 저들이 악한 종에서 원수로 강하게 표현하셨다.
중요한 것은 누가 주인인가가 중요하다. 회개는 누가 주인인가의 말씀이다. 더러움의 문제가 아니다. 하와는 뱀(사탄)의 유도 질문에 답하므로서 넘어가고 말았다. 우리는 뱀의 질문에 답하지 않아야만 한다. 뱀의 질문에 답하는 순간, 하나님과의 대화는 끊어진다. 하나님 말씀을 혼미케되어서 기억하지 못한다. 교회에서 왜곡되어 퍼져나가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다 뱀의 종 노릇하는 자들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예수님과 삼년간 다녔던 베드로도 사탄의 생각에 넘어진 것을 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씀에『그리마옵소서』라고 했다. 예수님은『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명령하셨다.
세상의 악함은 주님이 저들의 왕 됨을 원치 않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내가 주인이라는 말이다. 내가 주인이므로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 하지 말라,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다. 내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은 세상을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자들이다. 하와는 선악과를 앞에 두고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았다. 그 순간 하와가 자기의 주인되었다. 세상의 문제 앞에 서는 모든 사람들은 세상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과 대화해야만 살 수 있다. 성경은『몸과 혼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 로마서 3장에서 회개하지 않은 자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악한 사람들은 함부로 말을 뱉어서 입술에는 독이 있으므로 성경의 올바른 말을 마비시킨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거하는 곳은 직장이든 학교든 가정이든 그곳이 성소가 된다. 히브리 산파가 바로왕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조나단 에드워드가『예수가 주가 되지 않으면서 그의 공로만을 믿을 수는 없다』고 고백했다. 그리스도가 주가 되는 자 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가 주가 아니면서, 이름만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로마서 1-3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말씀이다. 로마서 3장 19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이 말씀의 뜻을 깨닫는 자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회개하지도 않은 자에게『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전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은 요한1서에서 두번 나온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라고 했다. 하나님은 자기 소유의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지, 아무나 사랑하시지 않으신다.
요한1서와 요한복음은 차이가 있다. 요한1서는 피의 사역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자백이라는 말이 등장한다.『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노아의 때처럼, 롯의 때 처럼 온 세상이 그러한 때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이 그러한 때인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바로 지금이 그런 때라고 말들을 한다.
로마서 3장 9절에서는『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모든 사람은 죄 아래 갇혀있다. 그 대비되는 것은 예수의 종이다. 예수의 종이 되면, 죄의 종으로 부터 벗어난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의 말씀하신다.『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예수가 주인이 되지 않으면 죄가 주인이다. 예수가 주인이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마가복음 13장 12절에서는 심지어『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온 세상이 어둠 속에 있는데,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마치 문둥병에 걸려 감각이 마비된 사람처럼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 안에도 죄의 종들이 가득차게 된다. 자기가 주인이다. 자기가 싫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자들에게 참된 복음을 전하면 핍박이 따른다. 그래서 주님을 주인처럼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눈에 과도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이다.
의가 없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다. 주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생각으로 행동으로 주님의 왕됨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피 공로 만을 받아드리려고 하고 있다. 주님은 이런 자를 진노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복음이다.『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사는 자』라야 구원받는다. 말씀에 따라 사는 자는『회개하고 자기부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이 나의 왕되시는 것이다. 주님이 왕이라면 그 분을 위해서 살아야만 한다. 그 분이 말씀하신 것에 순종한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만 이렇게 순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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