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사도행전 26장 18-21절『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들이 어둠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그 전에는 나올 수 없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하나님이 옮겨주시는 것이다. 누구를 ? 26장 20절에서『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그래서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하신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일이란 그 열매를 말한다.
주님은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으로 빛을 비춰주셔서 회개하는 자를 긍휼이 여겨주시고 도와주신다. 회개하는 자는 주의 얼굴을 구하는 자다. 주님이 20년 동안 라반의 집에 있었던 야곱에게『너의 조상에게 약속한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날 밤 도망을 갔다. 육신이 반응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모습이 아니다. 얍복강까지 오지만 그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육신의 경험은 그를 얍복강에 묶어둔다. 에서를 이긴 적이 한번도 없었던 야곱이었다.
주님이『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아무리 외워도 작동되지 않는다. 작동되기 위해서는 변해야만 한다. 변하지 않으면 성경의 좋은 귀절을 아무리 외워도 말씀이 적용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기까지 왔는데, 육체가 반응하여 강을 건너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야곱을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셨다. 그래서 야곱은 그 사자와 씨름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환경과 씨름하지만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한다.
회개하는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의 길은 선명하게 다르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환경의 어려움이 있어도 피하게 해 주신다. 다윗의 경우와 같이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서 기도했다. 그게 시편이다. 그는 상황에 반응하지 않고 주께만 반응했다. 주님은 그 수렁에서 다윗을 만드셨다. 주님은 자기를 향하는 자를 만드신다. 그날 처음으로 야곱이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주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것이다.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환도뼈를 치신 하나님의 뜻은『야곱아 너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의 힘은 타락한 본성이다. 다시는 하나님의 것보다 타락한 본성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게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그는『내가 의지하는 것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지 못했구나』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 부숴짐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다 (브니엘). 브니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얼굴을 바라보는 자에게는『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가 적용된다. 이게 교회다. 이 말씀을 베드로는 『너희가 각 각 회개하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죄 사함을 얻으리니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말했다. 성령을 각자에게 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 승천하신 후 오순절 날 믿는 무리에게 연합하여 함께 있을 때, 성령을 주셨다.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사 그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 생기를 불으넣으셔서 사람이 되게 하신 것 처럼,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신다. 그들이 흙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었을 때 오순절 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하나가 되는 의미』를 모른채 성령 만을 구한다. 성령 만을 추구하는 자들, 영성 만을 구하는 자들이 바로 회개하지 않은 증거다. 회개하는 자들은 십자가에서 죽은 주께만 반응한다.
회개하는 자는 자기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상황에 반응하지 않고, 자기 능력을 믿지 않는다. 주님이 바울에게도 살 소망이 끊어지게 하셨다. 바울은 마음의 사형선고를 받은 줄로 생각했다. 욥도 그렇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식이 죽어서 슬프고,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고통의 병까지 다가왔다. 괴로움, 슬픔, 아픔이 욥에게 다가온 것이다. 주님이 욥에게 주신 것은 주님 만을 바라보게 하신 것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주님이 주시는 것이다. 다시는 자기를 의뢰하지 말아야만 한다.  십자가를 본받지 않고, 죽으심을 본받지 않으면 육신의 자아가 올라온다.
주님의 십자가와 연합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개해야만 한다. 회개의 시작은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십자가의 그리스도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함께 십자가에 들어가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죽은 예수와 연합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와 연합하려고 노력한다. 죽은 예수와 연합된 자에게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한다. 기업은 구약의 용어로서 하나님 나라를 얻는 것이다.
회개하여 두 세명이 모인 곳이 거듭난 자의 모임이다. 그곳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 만이 주인이다. 왜냐하면 회개하는 자는 주인이 바뀌기 때문이다. 사탄의 권세에서 예수님의 권세로 바뀌는 것이다. 야곱의 경우처럼 자기가 주인이었다가 만군의 여호와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스라엘이다. 회개하는 자는 백세나 되어 생명을 얻은 아브라함과 같은 것이다. 자신 속에 더 이상 신뢰할만한 것이 없게 된 때가 회개하는 때다. 회개하는 자는 자기 판단, 자기 의견을 관철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한다.
회개하는 자는 내 뜻대로 되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주님의 뜻만 이루어지게 하기를 기도한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님이 주시는 잔을 마셔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떡만 먹으려고 한다. 주님은『내가 주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라고 하신다. 잔은 죽음을 나타낸다.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되어야만 잔을 마실 수 있다.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야만 한다. 이게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이다. 그러면 주님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반드시 함께 하신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회개하지 않고, 믿는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다 이스마엘이다. 말로는 회개하였다고 하면서 예수의 잔을 마시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은 예수의 십자가와 연합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인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주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 주님은 회개하여 예수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 자에게만 함께 하신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실 것이다. 이게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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