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오기 전에
갈라디아서 3장 23절『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믿음이 온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이 율법에 갇혀있으며, 믿음이 오기 전이란 뜻이다. 율법에 갇혀있는 자는 법의 형식을 중요시한다.『내가 율법에 비추어서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예를 들어서『내가 십계명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죄인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지키라고 준 것이 율법이다.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여 법을 주시므로, 그 법을 지키려고 애쓰다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돌아오게 하시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죄인들은 그 율법을 잘 지키면 의인이 되는 줄로 생각했다. 의인이 되는 길은 법의 조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을 통해서 죄를 깨달아라는 말씀이다. 법을 바라보는 자는 먼저 자신을 바라보고 회개할 때 법을 어기지 않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죄의 결과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기 전에 자신을 깨닫는 것이 회개의 시작이다. 회개의 시작은 선한 양심이 샘물처럼 솟는 것이다. 선한 양심은 어디서 왔는가?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하늘로부터 오는 선한 양심은 옛 것이 죽어야만 한다. 세례는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나타낸다. 자기부인의 의미도 모른채 세례로 예수의 피로 모든 죄가 씻어졌다고 말한다. 이게 거짓복음이다. 예수와 함께 죽기 전에는 예수의 피로 씻어지지 않는다. 유월절 규례는 예수님의 피를 적용하기 전에 예수님의 죽으심, 즉 죽은 어린양의 고기가 적용된다.
어린양의 고기는『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고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출12:10), 그 희생의 고기가 제 삼일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찌니 (레7:17), 성찬은 잔을 마시기 전에 함께 떡을 나누는 것이다.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것은 어린양을 죽이는 것이다. 그 다음에 그 피가 적용된다.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다. 어린양이 완전히 죽기 전에는 피를 바르지 못한다. 예수님의 죽으신 삼일의 기간에 우리도 죽는 것이다. 그래야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된다. 죄의 노예를 사는 것이다. 죄의 노예인 것을 깨닫고, 자기도 십자가에서 죽는 자만 예수님이 사시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 대하여 회개요, 주님은 우리를 사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들은 죄를 미워하고 죄를 짓지 않게 된다. 우리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느끼시는 것은 바로 그의 아들을 통한 극한 고통이셨다. 그만큼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분노하고 계신다. 죄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다. 로마서 6장 2절에서『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면서도 죄와 타협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느껴지고 깨닫는 자만이 하늘로부터 믿음이 오게된다. 이것은『내가 예수믿겠다』고 결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그러나 성경이 모든 자를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이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이 문장의 주어는『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이다.『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오늘날은『나의 믿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나를 부인하면, 예수의 믿음이 약속으로 주어진다. 나는 죄인이므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나를 부인하고 예수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노아는 120년간 의의 설교자, 의의 전파자였다. 의 때문에 노아외 7명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에게 진노하셨다. 스스로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자가 된다. 그 방주에 선택되지 못한 자들은 방주에 들어간 짐승보다 못한 것이다. 노아의 당시에 120년간 하나님의 의의 심판을 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은『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창조주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있었을 것이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500년간 노아 외에도 많은 자식을 낳았을 것이다. 노아의 형제들이 낳은 자식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노아가 120년간이라는 기간 동안 모든 사람들은 심판받아야 할 그런 존재라는 것을 말할 때 얼마나 많이 비웃었겠는가?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주님이 재림하시는 마지막 때는 노아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신다.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들이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회개하여 방주로 들어가야만 한다. 오늘날의 방주는 예수의 십자가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못박혀야만『예수의 믿음』이 주어진다. 이 믿음이 오기 전에는 모두가 갇혀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 예수의 믿음이 주어진다고 말할 때 다양한 반응이 있을 것이다.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갈라디아서 3장 21절에서 말하는 믿음이 오기 전이라는 말이고, 율법에 갇혀있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야 할 죄인들이라는 말씀이다. 옛사람이 죽지 않은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다.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옛사람이 죽어야만 한다고 소리치는 자는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한다. 이 믿음은 옛사람의 믿음일 뿐이다. 그러나 믿음이 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계시되는 믿음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돌판을 받고 내려올 당시에도, 모든 백성이 아론에게 졸라서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신이라 자칭하면서 춤추고 노래했다. 하나님이 맛나를 주시고 먹여 살리심에도 『우리가 무엇을 먹으랴』하면서 이렇게 황금송아지를 만든 것이다. 오늘날도 재물의 신은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꽉 차있을 지도 모른다.
자기가 예수를 믿고 자기가 예수를 선택했고, 자기가 예수를 영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원은 주님이 회개하는 죄인을 선택하고 영접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를 주님이 피값을 지불하셔서 사탄으로 부터 사는 것(구속)이다. 지금 우리는 누가 주인인가? 사탄인가 아니면 주님인가?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 속에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시지 않을 것이다. 죄인의 부패한 마음은 죽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부패한 마음을 가진 자가 회개한다 하더라도 받아주지 않으신다. 그 부패한 마음은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라는 부패한 마음을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라는 부패한 마음은 육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아버리는 것이다.
제물의 남은 고기를 3일에는 불태워 버렸듯이 십자가에 죽은 나의 시체도 완전히 태워서 이 세상에서의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태워지고 없어져야만 부활의 권능으로 새 창조의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일으키시는 것이다. 이게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교회에 나오자 말자 예수 영접하고 성도가 되었다고 선포한다. 옛사람이 죽지 않고는 새 창조는 있을 수 없다. 옛 것을 그대로 붙잡고 있다면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의 의미조차 모르는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