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으니
로마서 3장 21-24절『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율법 외』라는 말은 율법 밖이란 뜻이다. 율법 안에서는 오직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자만 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도 율법으로는 의를 얻을 수 없다. 율법을 통해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 밖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그 의는『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 KJV)이다. 이 믿음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말하는『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와 같은 믿음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믿음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서 모든 인간들은 뱀에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니고데모는『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는 당신과 같은 기적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너는 민수기에서 말하는 뱀에 물린 자야 놋뱀을 바라보아야지만 살 수 있어』라는 것이다. 자신이 뱀에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이 말씀의 뜻을 알 수 없다. 『뱀에게 물린 자』라는 뜻은 사단에게 지배당한 자라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회개의 시작이다. 그래서 이 독을 제거하는 것이 사는 길이다. 장대에 높이 들린 인자가 바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바라보는 자는『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었구나, 아니 내가 저 십자가에 달려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와 함께 달려 죽었음을 믿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평생 율법을 공부하고 지키려고 애썼던 바리새인의 율법학자였다. 그는 율법 밖에 있는, 한 의를 모르는 것이다. 우리도 신구약을 읽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저 예수님과 나는 서로 다른 존재일 뿐이다. 모든 것이 내 생각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에 만족하고 있게 된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며 사는 그런 존재가 된다. 니고데모나 부자청년이나 마찬가지로 회개하지 않으므로 예수님을 다 떠나갔다.
부자청년도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것을 알았다. 예수님께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율법을 잘 지켰다고 말했다. 그런데 예수님은『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너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다 나누어주라 그리하면 하늘로부터 보화가 있으리니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화에 대한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만 귀에 들어왔다. 예수님은『그리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으로 부터 영생 만을 얻고자 한 것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로부터 영생을 얻고 이 땅에서도 안정을 얻고 싶은 것이지, 예수와 함께 죽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자기부인의 길은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으면, 예수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예수 안에 없는 자는 예수가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을 수 없다.
불뱀에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내가 생각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고 마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내가 어둠의 자식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십자가에 죽은 예수께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깨닫는 자 만이 회개의 구원을 얻는 것이다.
회개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회개를 통해서 깨닫지 못하는 자는 매일 죄를 고백하고, 예배를 드리고, 성경 지식을 쌓아도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지 않으면 스스로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니고데모나 성실하게 살아서 흠잡을 데 없는 부자청년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들처럼 십자가에 못박힐 때 다 도망가버릴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하시는 성경말씀에 반응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지 않으면, 어떤 사람은 행복이 신이 되며, 성공이 신이 되며, 재물이 신이 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예수님은 도구에 불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님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방법일 뿐이다. 예수가 천국 가는 열쇠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영생을 얻는 자는 예수님이『나는 너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서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는 자만 천국을 갈 수 있다. 사람들이 예수를 잘 알아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잘 알아서 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잘 아는 길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돌이키는 것은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을 대체하는 방법으로 더 열심히 성경공부하고 더 열심히 예배드리고 하는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내가 잘 믿으면 천국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이 받아 주셔야 천국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된다. 이 속량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있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위해서는 죽은 예수와 연합되어야만 한다. 구원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해야만 되는 것이다.
방주 안에 들어가야 구원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방주를 오해한다. 방주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줄로 생각한다. 방주의 문이 항상 열려있는 것이 아니다. 등불을 켜도 방주에 못 들어갈 수 있다. 등불이 꺼졌을 때 방주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방주의 문이 항상 열려있어서 노아가 들어오라고 한 것이 아니라 120년간 회개를 외치고, 마지막에 방주의 공사가 완성되어 문이 열린 것이다.
회개한 자가 아니면 예수님은 모르신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지 않으면 예수님은 모르신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지 않고 열심히 믿을 수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예언하며, 능력을 행할 수 있다. 남들이 보면 믿음이 대단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은『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할 것이다. 열처녀 중 미련한 다섯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다가 마지막에 인내가 부족하고 자세가 부족해서 못 들어간 것이 아니라, 출발이 잘못된 것이다. 다른 통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내(율법) 밖에 다른 의(예수의 십자가)가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롯의 처도 소돔에서 온갖 더러운 음란 죄를 다 이기고 살았는데, 마지막에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을 소홀히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출발이 잘못된 것이다. 롯의 처는 소돔의 환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복이 준비되지 않은 자는 롯의 처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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