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하였으니
로마서 7장 4절『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7장 1-3절은 율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율법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주관한다는 것이다. 2절에는 율법을 남편으로 묘사했다. 그래서 율법에 매여있다고 한다. 남편이 살아있는데,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는 것이다.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았는데, 성령을 추구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말씀이다. 율법은 죽지 않는다. 죽는 길은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해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께로 갈 수 있다고 4절은 설명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율법에 대해서 설명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오직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고 말한다. 이 말씀의 논증은 남편이 율법인 자는 예수를 영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대부분 예수를 영접했다고 한다. 대부분 영적 간음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 2장 20-37절은 영적 간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말하고 있다. 하나님 외에 이방신을 사랑하고 따른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율법을 따르는 자들은 결국 마귀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이방신들이다.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만 부활하신 예수에게로 갈 수 있다.
거듭남은 남편이 평생 율법이었다가, 내가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므로 남편이 나를 놓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남편이 바뀌는 것이다. 새 남편이 부활하신 예수다. 이게 거듭남이다. 많은 사람들은 율법 아래 있으면서 다 영접해서 자기 안에 예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있는 영은 미혹의 영일 것이다.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내가 율법 아래 있는지, 아니면 부활하신 예수 안에 있는지?
7장 6절에서『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겨야 구원이 된다. 로마서 6장 1-2절에서『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6장은 세례를 말하면서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한다. 7장에서는 세례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한다.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죽는 것, 율법에 대하여 죽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다.
7장 15절에서『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이 사람은 선을 행고자 한다. 그런데 미워하는 것을 행한다는 것이다. 16-17절에서『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율법은 절대 놓아주지 않는 남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율법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단계가 있다가『율법이 선한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는 단계가 온다. 율법으로 인해서 빠져나올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내가 율법에 대해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생각한다. 노력하면 할수록 율법에 매여있게 된다.『내가 할 수 없구나』라고 생각할 때까지 율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으로 인해서 그것을 깨닫고,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신 이에게로 간다는 것이 선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한 자가 아니면 부활하신 예수께 간 적이 없는 것이다. 나의 노력, 나의 의, 나의 선한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만 한다. 모든 것이 율법적이기 때문이다.『나는 도무지 나의 의로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구나, 죽어야 할 존재구나』라고 회개해야만, 율법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 18-19절에서『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나는 선을 원하는데, 행하는 것은 악이라는 것이다. 선악과의 양쪽을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우리 속에서는 악인데, 종교생활을 하면서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죄에 대해서 죽지 않은 자는 우리 속에 악이 있는데, 종교생활을 하다가 보니 악을 감추고 선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결국 회개하지 않으면 악이라는 말씀이다.
로마서 3장 12절에서『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세상에서는 스스로 선을 행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회개하여 주인이 바뀌는 일, 거듭나기 전에는 모두가 이런 상태라는 것이다. 회개는 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 단순히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문제가 아니다. 죄의 뿌리를 없애는 길이다. 죄의 뿌리를 그대로 두고, 죄를 수없이 고백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죄의 뿌리를 그대로 두고 죄를 수없이 많이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도 그 입에는 독사의 독이 여전히 가득하다. 자신이 전적인 타락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자기부인의 길로 들어갈 수 없다. 전적 타락의 존재를 깨닫기 전에는 내 남편이 율법이라는 것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전적 타락한 존재는 남편인 율법이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회개하고 자기부인해야만 한다. 자기부인은 율법으로부터 놓임을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회개를 통한 자기부인은 예수의 십자가로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율법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는 길이기 때문이다.
3장 19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회개하여 자기부인의 길로 들어가지 않은 자는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고 말한다. 남편이 율법이기 때문이다. 율법에 대해서 죽을 때까지 그 굴레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자기부인의 길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가 나의 남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의 남편이 되지 못하면 음부로 갈 수 밖에 없다.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은 자는 간음이고 음녀다. 죽지 않은 자는 옛사람이다. 옛사람의 남편은 율법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은 다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자기부인의회개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자기 의에 불과한 것이다. 주님은 말할 것이다.『너의 남편은 율법인데, 너의 남편을 부활하신 예수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할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기 전에는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 회개하고 자기부인의 삶을 살기 전에는 구원받지 못한다. 회개한다고 하면서 자기를 위해서 산다면 위선이다.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에게 속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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