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3장 4-5절『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는『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자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은 자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도 사탄도 세상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이다. 이 세상에 사탄이 움직이지 않는 곳이 없다. 인간의 육체와 혼에도 사탄은 역사한다. 오직 사탄과 싸워서 이기는 자만 흰옷을 입을 수 있다.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자는 예수와 함께 못박힌 자들 뿐이다.
계시록 15장2-3절에서『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두 종류의 사람 만이 존재한다. 오직『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긴 자들』만 주님과 함께 다닌다.
21장 7-8절에서『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2장 11절에서 서머나 교회에 하시는 말씀이『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에서『이기는 자』를 강조한다. 세상의 모든 죄가 없어지던지, 그대로 있던지 두 종류의 인간 만이 존재한다. 모든 죄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예수 안에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이기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자기』라는 자아는 사탄의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옛사람을 이기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다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완전한 연합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십자가와 연합되지 않으면 육신에 머물고 있는 것이며, 성령 안에 있지 않은 것이다. 중간은 없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믿음이란 성령으로 인도를 받을 때 갈라디아서3장 25절에서처럼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었다가 예수와 함께 다시 사는 자만 이기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이기는 자에게 흰옷을 입혀주신다. 흰옷을 입혀주시는 자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자들이다. 순종하는 자가 흰옷을 입고 순결하게 된다.
세상과 벗이 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주님이 전부가 되던지 세상이 전부가 되던지 해야만 한다. 중간은 없다. 어느 쪽인가? 가나안 땅 앞에서 드러난다. 광야에서는 모른다. 오늘날도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 만이 세상과 벗하지 않게 된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믿음은『들어가면 죽는다』라는 것이다. 가나안 앞에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 만이 가나안에 들어간다. 옛사람은『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재물과 부가 하나님보다 더 좋은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옛사람은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력에 심취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 환경에 지배받지 않는다. 내 생각대로 살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으로 살던지 둘 중의 하나다.
골로새서 2장 13절에서『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모든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야만 된다.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예수의 피가 적용된다. 왜냐하면 예수와 함께 죽을 때 피의 값으로 사셔서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주인이 바뀌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명이다. 그 사명을 깨닫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들이다. 내가 천국 가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천국가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한다.
거듭난 자는 예수의 피로 모든 죄가 사해진다. 거듭나지 않으면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거듭나야만 하는 것이다.『나는 죽어있구나』를 깨닫지 못하면 거듭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자만 예수와 함께 죽게 된다.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이 거짓이고, 죽어야만 하는 자다. 내 안에 있는 자는 마귀이고, 참소자다. 그래서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참소하고 고소하는 말들이다. 남을 살리는 말보다 고소하고 참소하는 말들을 즐긴다. 우리의 입술의 열매, 생각의 열매를 통해서 내가 마귀에게 붙잡혀 있는지 거듭났는지를 스스로 판단해야만 한다.
우리는 마귀에게 속아서는 안된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것인 지, 마귀의 뜻을 세우는 것인지 깨닫지 않으면, 모두가 마귀에게 충성하는 것이 된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깨닫지 않으면 마귀를 쫒아가는 자가 될 것이다. 중간은 없다. 그러나 중간지대를 만든 자들이 있다. 마귀들은 세상도 사랑하게 하고 하나님도 사랑하게 한다. 가짜 복음이다. 옛사람이던지 새사람이던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옛사람이 새사람으로 가고 있다든지, 변하도록 노력하던지』라고 말하면 이는 마귀의 소리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옛사람이 성화되어 새사람으로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옛사람은 죽어야만 한다.
광야에서는 회개하는 것이다. 내가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죽은 자는 자기 밖에 모른다. 그래서『예수믿는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거짓이다. 회개하여 다시 태어나야만 예수를 믿는 믿음이 오는 것이다. 옛사람은 예수가 필요한데 예수를 버리는 자다.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는 좋지만 세번 부인한 베드로처럼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버리는 것이다. 회개하고 거듭나지 않으면 세번 부인한 베드로와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도 성령의 감동을 따라 믿는 예수, 말씀을 따라 믿는 예수이지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따르는 믿음을 가지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죽은 예수와 연합되지 않은 자는 상황의 어려움이 오면 예수를 버리게 된다. 그런데『이런 자가 바로 나구나』를 깨닫는 것이 바로 회개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회개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에게 빛을 비춰주시고, 죽음의 십자가로 갈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주신다.
『이런 자가 바로 나구나』를 깨닫지 못한다면,『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너희는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신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부인하지 않고, 단순히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으려는 자에게는 너희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자기라는 실체를 그대로 인정하는가 아니면 부인하는가의 차이는 자기 정체성의 인식이다. 어떻게 자기를 인식하는가에 따라 달린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여 싸울 것인가? 아니면 지극히 자기 감정에게 충실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가 될 것인가? 자기와 싸워 이겨야만 둘째 사망에서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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