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 난 자
갈라디아서 3장 29절『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그리스도의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이 있는 것이다. 이 새 생명은 세례로 인해서 일어난다. 2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구약에서의 세례는 홍해바다와 요단강 두 곳을 비유해서 설명한다. 홍해바다는 죄의 땅, 애굽으로 부터 벗어남을 의미하는 물세례다. 물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준 세례는 물 세례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세례를 죄를 씻는 물세례로 설명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새 생명을 얻기 위한 성령세례는 요단강에서 이루어진다. 요단강을 건널 때 옛사람은 모두 죽고 새 사람만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옛사람이 곧 혼적 자아라는 존재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요단강은 못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곳이다.『자기』라는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되어 죽어야만, 성령으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아담이 입은 가죽 옷처럼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만 된다.
요단강에서의 성령 세례만 구원이다. 애굽으로부터 광야로 나온 사람들도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이 애굽을 벗어나게 해 주었지만 그게 구원의 종착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구원의 기회를 얻었을 뿐이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애굽에 재앙을 내리고 마지막 재앙 때 어린양의 피를 칠하도록 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지나가도록 하셨다. 죄를 넘어가는 것이다. (pass over) 그래서 애굽에서의 죄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홍해바다를 건널 때 바로왕의 군대는 죽고, 애굽으로부터 빠져나와 광야로 나오게 된다.
광야에서는 매일 백성들에게 맛나를 주고,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셨다. 백성들은 매일 매일 기적을 체험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게 구원이 아니다. 구원의 기회일 뿐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이런 체험을 하면 구원받은 줄로 잘못 생각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는 죄를 넘어가시지 않으신다. 백성들은 애굽을 나온지 며칠 만에 길이 험하다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맛나도 맛이 없다고 원망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자들을 심판하셨다. 그리고 사십여일 만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는데, 다른 백성들은 올라오지 못하도록 했다.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광야에서 히브리 백성들은 먹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염려는 신을 만들게 된다. 오늘날도 세상을 염려하면 재물의 신을 만들게 된다. 그게 금송아지다.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죽게 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자비하시는 하나님으로 만났지만, 백성에게는 두려운 하나님으로 되신 것이다. 그들은 모세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듣기만 했지만 실제 그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셨다. 이게 바로 성경의 말씀이다. 시내산에서 모세에게만 자비하시며, 오래 참으시며, 자비하신 하나님으로 계시되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백성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죽었다. 하나님은 히브리 백성들 중 애굽으로 나온 옛사람이 다 죽을 때까지 죄를 넘어가지 않으셨다. 옛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일년이 지난 다음에 민수기에 의하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다. 그리고 12지파의 대표를 뽑아 가나안 땅으로 정탐꾼을 보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정탐꾼과 애굽에서 살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생각하고 통곡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살면 구원받지 못한다. 가나안에는 네피림(거인)들이 살았는데, 포도송이가 너무 커서 메고 돌아올 정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지만, 네피림(거인)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 보기에『우리는 메뚜기 같았다』고 두려워했다. 『자기』라는 관점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게 했다. 일년 동안 매일 맛나를 먹고, 구름기둥 불기둥을 보면서 살았지만, 이게 순종하는 삶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이 그날 두려워하는 정탐꾼 열명을 죽여버리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맹세하셨다.『너희(애굽에서 나온)가 정탐한 사십일을 나에게 거짓말했는데, 너희들은 사심년 동안 광야에서 다 죽는다』고 하셨다.
히브리서 3장 16절에서『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애굽에서 나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17-19절에서는『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애굽에서 나온 약 60여만 명이 믿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이 구원의 길이다. 사람의 말을 듣다가 멸망의 길로 갈 수 있다. 여론이나 군중의 말에 휩싸여 갈 때 진리의 말씀을 놓치게 된다. 히브리서 4장 1절에서『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그리고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에 남아 있는 자들도 이렇게 주의하라고 하셨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4장 2절에서『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예배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화합되기 전에는 구원받지 못한다. 그 믿음은 십자가의 죽음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연합되는 믿음 만이 구원받는 것이다. 이 믿음은 사람으로 부터 나오지 않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연합되는 자에게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 아래 갇혀 있는 상태다. 회개하고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기 전에는 율법에 갇혀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구원받지 못하는『여전히 죄인』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율법에 매인바 된 것이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광야의 인생이다. 이 율법은 사람들에게 감옥의 간수와 같다. 그러나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게 되면, 구원의 길을 안내해주는 초등교사와 같이 되어 십자가로 인도한다. 율법을 통해서『내가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에서『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좁은 길, 십자가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는 자만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살리신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살리시는 것이 새 창조(새 생명)요 거듭남이다. 오늘날 내 생각과 의지대로 산다면 모두 이삭과 같은 새 생명이 아니라 이스마엘과 같은 옛사람이다. 옛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고 죽는다.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는 자는 하나님께로 난 자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난 자다. 물에서 옛사람이 죽고, 성령으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나지 않으면 결국 혈통으로 육정으로 태어나,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매일 성막과 불기둥 구름기둥이 함께 할지라도 그게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기회일 뿐이다. 오늘날 교회 생활은 구원의 기회일 뿐 구원이 아니다. 구원은 예수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혈통으로 난,『자기』부인 만이 살 길이다. 회개하여『자기』 부인의 길로 들어가는 자 만이 거듭남을 얻게 된다. 내가 쌓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이 거듭난 믿음이다. 내가 쌓은 믿음은 베드로 처럼 예수를 부인하게 되는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어서 하나님이『내년에 약속의 자녀를 주겠다』고 했지만 마음으로 비웃은 그런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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