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인인 나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0장 1-5절『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니고데모는『예수님께 찾아와서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나이다』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라고 생각했다. 메시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은『사람이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땅의 일을 말해도 안 믿는데, 하늘의 것을 말한다고 믿겠는가?』라고 했다.
왜 이런 간극이 생기는 것인가? 니고데모는『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라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했지만, 예수님은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베드로는『이들은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요한복음 8장 31절에서『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진리(예수)가 마귀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33-34절에서 유대인들이『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죄를 예수의 피로 씻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의 종으로 부터 자유함을 입었는가』가 중요하다. 죄의 종으로부터 죽어야만 벗어난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죽은 자는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셨다.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죽으셨다. 그 죽은 예수가 누구인가? 예수 안에 있는 죄인들이다. 그래서 6장 7절의 죽은 자는 예수 안으로 들어간 자들이다.
자기가 믿는 것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선물은 다르다. 이 차이는 뱀에 물려있는 것을 깨닫는가 아닌가의 차이다. 뱀에 물려있다는 것은 뱀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뱀의 자식이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면서도 뱀에 물려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 죄를 고백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죽이는 자다. 날마다 속죄제물을 갖다 바쳐야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탐욕이라는 우상이 있는 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상을 가장 미워하시는 분이다. 회개는 탐욕이 죽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저버릴 수 밖에 없는 탐욕이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회개는 버리는 것이다. 말의 고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그런데 뱀의 독이 퍼져있지만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 분은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나는 그 분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옛뱀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주인인 사람은 뱀에게 물려있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는 탐욕이 죽지 않고 마음 속에 뿌리 내려져 있는 것이다. 이 탐욕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 이 탐욕이 죽지 않았다면, 날마다 죄를 고백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므로 불뱀을 보내서 물려 죽게 했다. 모세가『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본즉 살리라』라고 말했다. 내가 옛뱀에 물려서 뱀의 독이 퍼져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는가?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신뢰하는 탐욕이다. 탐욕은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남이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옛사람이 죽어야 새사람이 태어난다. 새사람은 하늘로부터 난 자를 말한다. 하늘로부터 난자는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사울은 조상 때부터 섬긴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왔다. 벤냐민 지파로서 율법에는 흠이 없는 자라고 스스로 믿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율법이 그를 죽이려 든다. 그래서 율법적인 사람은 예수의 생명이 있는 자를 죽이려 한다. 그런데 사울은 긍휼함을 입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빛이 비춰져서 깨닫지 못하면 긍휼을 입을 수 없다. 오늘도 하나님의 빛이 말씀을 통해 비춰지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한다면 마귀로 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죄로부터 고민하는 사람은 먼저 마마귀로 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마귀가 죄를 짓게 하기 때문이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결과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이다. 죄를 짓게 하는 원인은 옛뱀(사탄), 마귀가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그게 옛적에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탐욕이라는 것이다. 그게 모든 죄를 짓게 하는 원인이다.
고린도교회는 광야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라고 말했다.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를 말한다. 세상은 애굽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시는 세상을 만날 수 없는 자가 되었다. 매일 맛나를 먹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매일 성경 공부를 한다.『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았는가? 그들의 마음 속에 탐욕이라는 우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0장 9절에서는『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그래서 사도바울은 12절에서『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말했다. 14절에서『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십계명에서『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탐욕이 우상인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이 우상일 것이다.
이 우상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난 자들 만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가나안에 들어간다. 성경은 가나안이 그리스도의 충만이라고 했다. 광야에서 반석을 치니 물이 나왔다. 반석은『저희를 따르는 그리스도』라고 했다. 물은 성령을 의미한다. 광야에서 성령을 경험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으로 들어가야만 구원받는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옛사람에 머물러 있다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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