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만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로마서 6장 5절『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이것이 세례고 죽을 때까지 세상을 이기는 길이다. 세례는 회개한 자에게 일어난다. 그래서 회개의 완성은 주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인이 바뀌게 된다. 그래서 6장 6-7절에서 말한다.『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많은 교회에서는 이 말을 많이 듣지 않고, 로마서 5장 1절의 말씀을 많이 듣는다.『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그러므로』라고 말한 것 때문이다.『그러므로』는 4장의 말씀이다. 4장 19절에서『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었다』는 말은 『그가 이 세상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 말은 전적타락한 존재라는 뜻이다. 구원받을 가망이 없는 것이다.『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말이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 믿음을 주시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회개하므로 주어진 믿음이다.『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는 회개한 자에게 얻어지는 믿음이다. 믿음이 어떤 상황아래서 자기의 의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어 믿음을 얻는 것은 25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다. 25년이라는 기간은 『자기』라는 존재가 믿는 믿음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은『자기라는 주체』를 버리는 것이다. 자기라는 주체를 버리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서『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로마서 1-3장의 말씀을 잘 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은 전적인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잘 말하지 않는다. 사람의 입술은 열린 무덤이다. 독사의 독이 가득하다. 다 사망아래 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로마서 4장의 아브라함이 백세가 된 때라는 말이다. 아브람이 75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는 예수님을 만나서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와 같았다. 아브람은 자기가 믿음이 없는 줄도 모르고, 왜 하나님이 자식을 주시지 않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철저히 자기 기준이었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은 전쟁도 이기게 도와주시고 멜기세덱도 만나게 해 주셨다. 그렇지만 아브람은 변하지 않았다. 아브람은 스스로 영적체험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람은 이스마엘을 낳는다. 그런데 주님은 다시 한번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나타나셔서『내년에 자녀를 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람은 웃으며『내년에는 사라가 90세가 되고 내가 100세가 되거늘 어찌 자녀를 낳으리요』라고 응답했다. 그리고『이스마엘이나 살게하소서』라고 자기의 뜻대로 되게, 주님에게 요구하신다. 이게 믿음이 없는 자이며, 전적타락의 모습이다. 오늘날 모든 사람도『믿음이 있거나 없거나』둘 중의 하나가 된다. 중간은 없다. 90% 정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혀 믿음이 없는 것이다. 마귀가 속이는 것이다. 주님을 완전히 믿거나 나를 믿거나 중간은 없는 것이다.
자기가 조금의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귀의 자식이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 외에는 살 길이 없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될 수 없다. 이것을 깨닫지 않으면 평생 내가 쌓은 신앙에 머물면서 만족해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너의 독자 이삭을 받쳐라』고 말씀하셨다. 엄연히 이스마엘이라는 육체적 형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관심에도 두지 않으셨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는 것이 거듭남이다.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된다. 죽지 않은 자는 마귀의 자녀가 된다. 죄는 예수의 피로 씻을 수 있지만, 죄인은 죽어야만 한다. 우리가 지은 세상죄는 죄인의 결과다. 죄는 예수의 피로 씻어주지만, 죄인인 옛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래서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연합되어 함께 죽는 것이다. 죄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대속을 믿지만,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예수 안』이 되지 않는다.
에베소서 2장 3절에서『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이 말씀은 옛사람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아비는 마귀가 된다.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는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식으로 말하면 거짓복음이 되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예수를 다 버리게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사기 전에 제자들에게『너희들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셨지만 제자들은『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베드로는『주를 위해 죽을 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닭이 울기 전에 세번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자기의 말은 진실이고 예수님의 말은 틀렸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거듭나기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쟁이가 된다. 거짓으로 결국 다 버리고 도망가버렸다.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육으로부터 비롯된 자다. 아브람이 25년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옛사람, 삼년간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 오늘날도 교회에 부르심을 받고 왔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여전히 옛사람으로 교회에 앉아서 찬송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옛사람은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옛사람은 죽어야만 한다. 누구를 위해 사는 자인가? 예수를 위해 사는 자들인가 아니면 자기를 위해 사는 자들인가?
회개하는 자는 죄씻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나는 죽어야 할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고 긍휼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날마다 죽노라』가 되어야만 한다. 회개는 더러움을 씻는 것이 아니라, 죽고 다시 태어나 선한 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인 악을 버리는 것이다. 먼저 악한 마음이 죽어야 죄를 짓지 않게 된다. 악을 버리지 않는데, 죄만 씻으려고 한다. 옛사람이 죽지 않는 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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