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사도행전 8장 20-23절『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베드로가 마술장이 시몬에 대해서 한가지의 대화를 통해서 이렇게 판단했다. 이게 주님이 주시는 판단이다. 이 사람은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와서 복음을 전했을 때,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신자다. 그리고 13절에서 그는 전심으로 빌립을 따랐다고 한다. 교회의 모든 모임에 참석했지만 이게 구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적인 문제나 재물 앞에서 결국 그 사람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의 생각이 드러나는 것이다. 시몬은 성령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안수하면 똑같이 사람들이 성령을 받게 해 달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인본주의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시몬이 오늘날 이렇게 행동했으면 많은 교회에서『너는 초신자이므로 아직 모르는구나 안수해서 성령받는 것은 돈을 주고해서 되는 것이 아니야 그런 것은 회개해야 해』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인본주의다.
복음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판단 만을 전해야한다. 니고데모가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 당시 예수는 신흥 랍비 정도로 생각되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와서 물어보는 것이다.『당신이 하는 것을 보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입니다』라고 믿음을 고백했다. 그런데 예수님은『네가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했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신 중요한 말씀 만 기록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성경을 좀더 듣기 좋게 해석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거짓 사랑이다. 진리가 없는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해야만 한다. 진리가 있으면 사랑이 있고, 진짜 사랑이 있으면 진리로 말미암는 것이다. 의가 없는 사랑은 없다. 진짜 사랑이 있으면 진짜 의가 생기는 것이다.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주님은 진리만을 말씀하신다. 그게 사랑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진리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자존심을 고려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나는 제사장에게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그리 마옵소서 결단코 그 일이 당신에게 미쳐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게 인본주의다. 제삼일에 부활한다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육신을 따라 생각하고 육신을 따라 말하는 것이다. 우리도 주님의 어떤 좋은 말씀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회개하지 않으면 들을 능력이 없는 것이다.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듣지도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은『사탄아 물러나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게 하나님으로 부터 나오는 진리고 베드로에게 하시는 사랑이다.
인본주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베드로야 내가 놀랐는데, 내가 하는 말에 너도 놀랄지도 몰라, 내가 너에게 말할 수 밖에 없는데, 그동안 장모님과 아내를 내버려두고 나를 따른 것, 그 믿음은 정말 대단한 것인데, 지금 너는 사탄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너는 사탄에게 속은거야』이렇게 말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성경을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말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만 죄인이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죄인이 죄를 깨닫고 통회하고 돌아오는 교회가 되어야만 한다. 교회는 그런 곳이다.『교회 분위기가 괜찮고, 건물도 아름답고, 사람들도 좋고』라고 말하는 교회는 죄인이 십자가에서 죽는 그런 교회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교회는『날마다 죽노라』를 외치는 그런 곳이 되어야만 한다.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통회하면서 죄를 깨닫고,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만 한다.『사탄아 물러나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말하는 교회가 진리를 선포하는 교회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 이유를 말씀하신다.『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자기 뜻대로 관철시키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에서 멀어진 자일 것이다. 기분 나쁠 때나 손해본다고 생각할 때, 자기의 뜻이 솟아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빛이 비춰주시면, 구원받을 자와 받지 못하는 자는 분명히 드러난다. 그런데 오늘날은 대부분 자신이 구원받을 자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교회생활 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 외에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진리를 받아드리지 않는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여 보이는 것이다. 능력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꺼리겨지는 것이다. 오직 하나,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가 전심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회개의 삶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럴 때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선물을 얻게 된다. 이게 구원이다. 빌립보 간수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빌리보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고문하고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그들은 주님께 찬양했다. 한 밤에 옥문이 열렸다. 오늘날도 삶의 고통이 있지만 주께 찬양하고 예배한다면 주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인생의 옥문이 열릴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인생의 옥문이 열려도 회개한 사람은 환경에 따라 살지는 않을 것이다.
회개한 자는 그저 사명 따라 옥문이 열려도 나가지 않는 것이다. 회개한 자는 사명따라 살지, 환경따라 살지는 않는다. 이게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이다. 잠에서 깬 간수가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자결하려고 했다. 간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때 바울이『네 몸을 상치말라』고 말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다. 간수는 떨며 두려워했다. 마음과 몸이 함께 움직였다. 몸은 떨고, 마음은 두려움에 싸였다. 회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로마서 3장에서『회개하지 않은 자는 입에 거짓과 독이 있다』고 말한다. 저들의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천국가느냐 지옥가느냐, 빛이냐 어둠이냐, 중간은 없다. 그런데 오늘날은 자기부인의 삶은 없으면서, 많은 사람들은『내가 천국에 갈 수 있겠지』라고 안이하게 생각한다. 근거없는 믿음이고 거짓 믿음이다. 『그래도 예배드리고 교회생활 잘 하면 천국가겠지』라고 생각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갈수록 세상에 적응해서, 자기부인의 삶을 살지 못한다.
빌립보 간수는 즉시 구원받는다.『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빌리보 간수는 온 가족을 모이게 했다. 즉시 예수를 시인했다. 그러나 현대교회에서는 대부분 이런 것을 아무에게나 적용하려는 것이다. 자기부인도 없고 자기 십자가도 없는 그런 교회는 죽은 교회다. 떨고 두려워하는 것도 없으면 회개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부인의 회개는 말하지 않고, 커피사주면서 밥사주면서『예수믿으면 온 가족이 구원받습니다.』라고 사정하듯이 말한다면, 주님의 진주를 돼지 우리에 던지는 모양이다.
주님은『진주를 돼지 우리에 던지지 말라』는 것이다. 전혀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말하지도 않으면서 교회에 나오면 선물주고, 그들이 좋아할만한 찬송를 부르면서 그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애를 쓴다. 그들이 다시 교회에 나오지 않을까봐 그러는 것이다. 말세에 주님을 기롱하게 만든다. 주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데, 교회 처음 나오면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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