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의 진실과 거짓


요한복음 1장 12-14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로고스, 창세기에는 없는데, 요한이 해석을 하는 것이다. 로고스라는 말은 수학시간에 많이 나온다. 로그, 로직(논리)이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철학자들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역사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라고 말한다. 그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여기『거한다』는 단어가『장막을 친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때가 유대인의 절기 장막절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초막절에 태어나셨다. 이 증거는 누가복음 1장 5절에서 예수님이 헤롯왕때 아비야 반열의 한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는 세례요한의 아버지였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역대상 24장에 나오는 제사장의 반차가 있는데, 1년에 24명이다. 한달에 두명씩이었다. 사가랴가 속해 있는 반차는 여덟번째 반차였다. 사가랴가 성소에 들어가서 천사를 만나는데,『너에게 하나님이 자녀를 주신다.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말했다. 거기서 보름 동안 섬긴 다음에 나온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열달 뒤에 태어난다. 그 때가 오순절이었다.
예수님은 바로 6개월 뒤에 태어나셨다. 그 때가 초막절이었다. 누가복음 2장 1절에서『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세금을 거두기 위해 호적을 명하는데, 호적을 할 때는 가을 추수를 마친 다음에 했다. 그 때가 바로 초막절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때가 9-10월 사이의 초막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2장 8절에서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에『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이스라엘의 겨울은 우기다. 10월이 지나면 비가 오기 시작하여 양들이 밖에 있지 않았다. 목자들이 밤에 양들과 함께 잠을 잘 때는 초막절 기간이 마지막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12월 25일에 성탄절 행사를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대적했던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하는 니므롯이 12월 25일이었다. A.D. 300년 경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태양신을 섬기고, 기독교를 추가해서 더 믿은 것이다. 예수도 믿고 태양신도 믿는 이상한 신자가 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아래 종교는 혼합된 종교 형태였다. 그 때부터 1700여년 동안 12월 25일에 성탄절을 지켜오는 것이다. 성탄절에 선물을 나누어주는 풍습, 나무를 잘라서 예쁘게 장식하는 풍습은 예수님과 관계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아도 자기에게 유익한 진실을 따를 뿐이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는 참 진리를 따를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출생을 기념하라고 한 적이 없다. A.D. 300년 까지 성탄절을 지켰다고 하는 기록은 전혀 없다. 크리스챤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했을 뿐이다. 누가복음 1-2장, 요한복음 1장에서 초막절에 예수님이 태어난 증거가 있는데, 이스라엘에는 예수를 믿지 않는 랍비들도 예수가 초막절에 태어났다는 글들도 있다. 회개하는 사람들은 진리에 관심을 갖는다. 성경은 예수님이 초막절에 태어나셨다고 증거하는데, 대부분 교회들은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왜 초막절이 중요한가? 예수님의 재림이 초막절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의 무덤은 두 군데로 알려져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고 한다. 카톨릭에서 전통적으로 말하는 예수님의 무덤교회가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큰 돌이 있고 하는 그런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또 하나의 무덤인데, 이스라엘이 독립할 무렵 영국의 한 군인이 발견한 무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덤 근처에 물이 있고 정원이 있으며, 해골처럼 생긴 언덕이 있다. 그 곳은 과거에 사형장으로 무덤터라고 알려져 있다.
누가복음 2장 7절에서『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첫아들이라는 표현은 마태복음 1장에서도 나온다.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을 외아들이라고 하며, 마리아는 평생 죽을 때까지 예수님만 낳았다고 한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남자 동생 네 명의 이름이 나온다. 예수님과 그의 형제들과 제자들이 함께 있었다는 말들도 있다.『저자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야고보와 그의 형제 네 명을 알고 그의 누이 동생들도 알지 않느냐』라는 말씀이 있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인류에서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창세기에서『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부순다』고 말했다. 그 곳이 바로 십자가다. 여자의 후손은 단 한명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요셉과 마리아는 밤중에 도착했다. 예루살렘에서 30분 거리의 베들레헴에 사람들이 여관에 다 찬 것은 초막절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다. 감추어진 예수를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으므로 말 구유의 먹이 통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죽기 전에 말씀하셨다. 천국은 아들의 혼인잔치를 준비한 왕과 같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제 자기 아들을 왕으로 오게 하신다. 왕이 오면 신부되는 교회와 결혼식을 할 것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25장의 예화에서『사람들이 다 오기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구약성경 신명기에서 말하는 축복때문이었다. 밭을 샀으므로, 소를 다섯겨리를 샀기 때문에, 결혼해야 했기 때문에 오기를 싫어했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죽음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베드로를 통해서 인간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예수님은 보여주신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은 죄가 없는 완전하신 분이며, 너무 멋있는 분이라, 악인도 선한 사람도 예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을 때도 자기 손에 못박는 로마 군인을『저들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하면서 용서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랑 자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일으키고, 사람들이 왕으로 삼으려고 할 때 겸손하게  사라지셨으며, 하나님 말씀으로 감동을 주었다는 것이다. 많은 교회에서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예수가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싫은 예수라는 표현이다.
이사야서 53장 2-3절에서『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한다. 이 분이 인간들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오신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회개하여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성탄절의 결과 만을 가지고 축하하고 박수하고 할 뿐이지, 거듭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거듭나는 것은 옛것이 죽어야만 한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 날이 진짜 성탄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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