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
베드로전서 1장 4-5절『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그곳은 터키의 어느 산에 굴을 파고 사는 곳이었다. 크리스챤들이 로마 제국의 핍박을 피하여 토굴에서 살았다. 그들에게 베드로가 편지를 썼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행복이 없었다. 세상에서 그들의 육신은 토굴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자는 거듭난 자 뿐이다. 1장 3절에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거듭난 자에게는 산 소망이 있다. 거듭난 자는 하늘의 실체이고 소망이 된다. 거듭난 자는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세상에서 잘되기를 소원하지 않는다. 세상의 권력과 명예와 부를 위해 소원하지 않는다. 예수로 인하여 세상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거듭난 자는 이 땅에서 주는 물질적인 것 때문에 기뻐하지 않는다. 위로부터 난 자는 하늘의 신령한 것을 기뻐한다.
거듭난 자에게는 이 땅에 있는 물질적인 것이 썩어질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땅에서의 성공과 행복도 다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신다.
감사는 예배와 믿음의 완성이다. 시편 150편에서 감사는 마지막에 등장한다. 감사는 예언보다 더 앞선다. 다니엘은 소년이었다. 이스라엘의 죄로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는 하루에 세번 감사기도를 했다. 지금 고통스러운 일들이 함께 해도 감사할 수 있으면 새로운 삶이 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감사는 영적인 것이다. 주님의 어떤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여호사밧은 전쟁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큰 무리에게 대적할 능력이 없고 지혜도 없고『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기도했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도가 아니라, 오직 주만 바라본다는 기도를 한 것이다.
주님은 회개하여 주님을 찾는 자에게 반드시 함께 하신다. 전쟁에 지는 상황인데, 왜 이런 전쟁이 났는 것인지 그 분의 뜻을 구하는 것이지, 그 분의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실패에도 뜻이 있다. 우리가 누리는 성공과 행복에도 뜻이 있다. 그 뜻을 모른다면 불행해질 수 있다. 솔로몬은 성공의 예표였다. 그는 잠언을 썼다.『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다. 그는 왜 성공했는지 몰랐다. 하나님이 왜 성공하게 했는지 모른다면 솔로몬처럼 후회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성공은 지켜지지 않는다. 그는 축복을 얻은 만큼 불행해졌다.
욥은 너무 큰 고통이 왔다. 슬픔, 괴로움, 아픔이 다 왔다. 욥은 왜 이런 고통이 왔는지 고통 속에서 주님의 뜻이 드러났다. 그의 삶에서 부활이 일어났다. 그의 미래는 부활이었다. 만일 삶 속에서 주님의 뜻을 모른다면 회개해야만 한다. 주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모든 것은 회복이 되고 소망이 된다. 이렇게 감사는 영적인 것이며, 능력이 된다.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서 인신 매매단에 팔려버렸다. 그리고 팔려간 나라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도 갔다. 요셉은 이런 상황에서 주님의 뜻을 깨달았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된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는 주님의 뜻을 구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도, 절망 속에서도 감사하게 된다. 실패와 고통에 갇혀있다 하더라도 주님의 뜻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된다.
다윗도 고난이 많았다. 시편을 읽어보면 세상을 능력으로 변화시킨 내용이 아니라, 어려움의 환경 속에서 다윗이 변화받는 내용들이다. 다윗은 능력을 구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얼굴을 구했다. 베드로전서 1장 6절에서『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라고 말했다. 거듭난 자에게만 가능한 말이다.『거듭났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세상의 물질 풍요 속에서 주의 뜻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거듭난 자가 아니다. 거듭난 자에게 하나님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신다.
주의 뜻을 구하는 자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성공보다 실패가 더 감사로 다가올 것이다. 기뻤던 추억은 쇠해지지만, 주님의 뜻을 구하는 자는 실패 속에서도 감사하게 된다. 주님이 실패 속에서 우리를 깎고 치실 것이다. 그래서 천국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드신다. 인생의 목표는 성취가 아니라 변화다. 인간은 죄성이 있으므로 성공해서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다윗과 욥처럼 실패와 고통과 아픔 속에서 주를 바라볼 때 변화받는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변화 속에서 세상사랑하는 마음에서 빠져 나오라는 것이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천국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드신다. 그럴때 시험이 다가오는 것이다. 세상에서 벗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그 시험은 세상에서 천국에 적합한 사람으로 단련시킨다. 그래서 깎기는 것이다. 육신은 세상의 것을 잃어버리면 슬프하지만, 영은 잃어버린 것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승리하게 된다. 이게 정상적인 크리스챤의 생활이다. 더 얻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것을 아직 붙잡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세상을 붙잡지 말고, 하늘의 것을 붙잡아야만 참 크리스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서『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여기서 『믿음의 확실함』은『믿음의 연단』이라는 뜻이다.『너희 믿음의 연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는 말이다. 육신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으나, 감사한다면 알게된다.
모세는 사람을 죽이고 도망갔다. 그는 살인죄로 인하여 모든 지위를 잃게된다. 그리고 40년 동안 도피생활을 했다. 그의 잃어버린 40년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나타내게 하려 하심이었다. 주님은 가시떨기에서 불꽃으로 나타나셨다. 모세에게 신을 벗게 했다. 신을 벗는 것은『권리를 포기한다』는 뜻을 가진다. 예배는 육적인 사람을 영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예배는 육적인 것을 잃게 한다. 그러나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것을 얻는다면 미래의 모든 것을 얻게 된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구하는 자가 감사하는 자가 된다. 능력을 구하는 자는 환경이 변화되기를 바라지만 주님의 뜻을 구하는 자는 우리가 변화된다.
인간은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다만 주의 뜻을 구하는 자를 주님은 변화시킨다. 부수고 깎는다. 하나님이 하늘에 알맞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회개 뿐이다.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만이 변화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변화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그곳이 바로 천국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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