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을 나왔으나 광야에서 멸망한 이들


유다서 1장 5절『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구약성경은 신약의 그림자다. 애굽을 나올 때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어린양의 고기를 먹는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는 내용은 두절 밖에 안되는데, 어린양의 고기에 대해서는 열절이나 된다. 날로 먹어서는 안되고 물에 삶아먹어서도 안된다. 구워서 먹어야 되며, 나머지는 불로 태워 없애야 한다. 죽임당한 어린양은 이 세상에 남겨두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지도 않는다. 어린양의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나타낸다. 그래서 죽어야 어린양의 피를 칠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만 역사할 수 없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예수의 피로만 죄를 용서받는다고 말한다. 이 말은 완전하지 못하다. 예수님의 피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죽은 어린양(예수)의 고기를 먹어야만 한다.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만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피가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진노가 지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적용될 때는 광야에서 가나안에 들어갈 때다. 가나안은 그리스도의 예표다. 애굽은 세상을 예표하는 것이다. 구원은 애굽을 나온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애굽을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에스겔서 20장 38절에서『너희 가운데에서 반역하는 자와 내게 범죄하는 자를 모두 제하여 버릴지라 그들을 그 머물러 살던 땅에서는 나오게 하여도 이스라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는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그 머물러 살던 땅(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구원의 기회일 뿐이다. 반역하는 자와 범죄하는 자는 이스라엘 땅(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신약에서는 히브리서 3장 16-19절에서 인용된다.『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브리서 4장 1절에서『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고 말한다. 광야에서는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다.『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셨다. 확신이라는 말은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말한 것이다.『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애굽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것으로『나 또한 세상으로 부터 못박히는 것』이다. 바로왕이 군대를 보내어 죽이려고 했다. 그 때 출애굽이 일어난다. 이것이 네가지 밭의 비유와 같은 것이다. 길가밭(마귀 때문에 말씀을 들어도 소용없다), 돌짝밭(어려움이나 환란 때문에 넘어짐), 가시떨기 밭(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때문에 싹이 자라지 못함)

인간이 만든 신은 처음과 마지막이 다 돈이다. 애굽을 나온지 오십일(오순절)만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돌판을 받는다. 모세가 돌판을 받아서 내려오는 날, 아침에 맛나를 먹으면서도 염려하는 것이다. 『우리 무엇을 먹고 살지?』 그래서 그들이 만든 신이 애굽의 금송아지(만몬)였다.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신이 바로 만몬(666)이다. 오른손이나 이마나 표를 받지 못하면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한다. 세례요한이『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우리라』라고 말했다. 열매는 행함의 열매다. 구원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러나 회개는 행함이다. 말로만 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믿음은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 주님이 주시기 때문이다.
회개는 주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해야만 한다. 믿음은 채우는 것이지만 회개는 비우고 버리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말하는 회개는 열매없는 말로만 하는 회개일 뿐이다. 노아는 120년 동안 외친 것은『회개하라』는 의의 도였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의의 말씀이지, 사랑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의 도는 다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말이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요한1서에서 두번 등장한다.
회개하면 구원이 일어난다. 회개는 애굽을 나올 때가 아니라 광야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애굽에서는 죄를 넘어가셨다. 유월절(pass over)이다. 애굽에서 히브리 백성들이 지은 죄는 단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굽은 세상의 종이므로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주님은 세상(길가밭, 돌짝밭, 가시떨기 밭)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시지만, 광야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히브리서 4장 2절에서『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말씀이 믿음과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광야를 나오는데, 이것이 믿음은 아니다. 광야에서 주님과 연합되어야만 믿음과 결부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히브리서 3장 16절에서 맹세하신 대상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은 자들이다. 출애굽기는 성막이 완성되고 구름기등과 불기둥을 따라 이동하는 것을 나타낸다.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 사느냐, 내 마음대로 사느냐 하는 주인이 바뀌는 삶이다.

민수기에서는 애굽을 나와서 1년만에 유월절을 지키게 하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내용이 등장한다. 먼저 히브리 백성들이 정탐꾼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요청한다. 그때 주님이 허락하신다. 족장중의 대표를 뽑아서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민수기 13장 31절에서『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라고 말했다. 33절에서는『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가나안 땅이 그리스도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만 구속이 된다. 주님은 14장 11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들은 매일 맛나를 먹고, 성막이 만들어져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4장 30절에서『하나님이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히브리서에서 인용하였다. 고린도전서 10장 1-4절까지는 히브리인들이 홍해바다를 건너, 구름기둥과 불기등 아래 있었지만 5절에서는『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례는 홍해바다를 건너는 물세례다. 로마서 6장에서 말하는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는 세례(요단강을 건넘)와 다르다.

바울이 홍해바다를 건넌 물세례를 받은 것과 같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10장 4절에서는 반석(그리스도)이 그들을 따랐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당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애굽을 나오는 믿음은 구원받지 못할 수 있지만,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만이 구원받는 믿음이 된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믿음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자는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되어서, 영접하면 구원받는 식으로 말한다면 중간 과정이 빠져있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회개없는 믿음은 가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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