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로새서 1장 13-14절『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죄 용서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속량이 있어야만 한다. 속량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구원의 시작은 더러움을 씻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는 일이다. 그래서 어둠의 권세에서 묶여있다는 것을 깨닫는데서 시작된다.
바로왕 밑에서 히브리 백성들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부르짖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바로왕의 권세에 묶여있는 것이 흑암의 권세에 묶여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곳이 바로 가나안이다. 골로새서는 교회 서신인데, 회개라는 말 대신에 속량이라는 단어가 대신하고 있다. 속량은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이 사시는 것이다. 속량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14절에서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even the forgiveness of sins(kjv) 그러나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e forgiveness of sins.(niv)는『피』라는 말이 삭제되어 있다. 속량은 산다는 뜻이다. 그래서 주님이 피값을 지불하고 회개하는 자를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로 사신 후에 회개하는 자의 죄를 사해주신다. 예수님은 사시는 분이시다.
레위기 4장 35절에서『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어린 양의 기름을 떼낸 것 같이 떼내어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가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여기서『속죄한즉』이라는 단어가 바로 속량을 뜻한다. 4장 26절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많은 교회사람들은 『속죄한즉』을 죄사함으로 생각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속죄를 해야 죄사함을 얻는다는 말이다. 사도바울이 레위기의 이 말을 인용하여 골로새서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레위기의 속죄를 골로새서에서 속량, 구속, 대속이라는 말로 번역하였던 것이다.
먼저 더러움을 씻는 죄 사함이 일어나기 전에 속량이 있어야만 한다. 속량은 주인이 바뀌는 일이다. 회개는 하나님을 떠나 내 마음대로 살아서 더러워졌다는 것을 깨닫는데서 시작된다. 회개는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구원은 먼저 내 마음대로 살아온 죄를 회개해야만 한다. 이것이 구속(속량)이라는 것이다. 속량을 한즉 곧 죄사함을 얻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12-13절에서『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에서 먼저 살리시고, 그 다음에 죄를 사하신다. 살리심을 받기 위해서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어야만 한다.
세례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이것이 거듭남이다. 거듭난 자에게 죄 사함을 주신다는 뜻이다. 모든 문제는 죽지 않은데 있다. 예수의 피로 구원받기 전에 거듭나야만 되는데,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 뜻대로 하는 자는 마귀의 자식이다. 교회나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자기 뜻대로 행하고자 하는 자에게 마귀가 역사한다. 자기 뜻대로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자에게는 주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성찬에서 떡을 축사하고 잔을 마셔야 하는데, 떡을 먹지 않고 잔만 마시려고 하는데 있다. 떡은 예수님의 찟긴 살이라고 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 떡을 떼는 일이다. 떡을 땔 수 없는 자는 피의 잔을 마실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유월절 규례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2장 1-12절에서 유월절 규례가 나온다. 6절에서『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여기서『잡고』라는 말은 죽인다는 것이다. 어린양을 누가 죽였는가? 하나님이 어린양을 죽인 것이 아니라 죄인이 죽인 결과다. 예수님을 누가 죽였는가? 죄인인 우리가 죽인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는 것이다.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합세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권세에 넘기므로 예수를 죽인 것이다.
12장 7-10절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남기지 말며 남은 것은 태우라고 했다. 어린양의 고기는 이방인에게 먹게 하지 않았다. 남은 고기는 다 불로 태워버렸다. 피에 대한 말은 짧지만 죽은 고기에 대한 말은 설명이 길다.『불로 태워 먹어라』고 했다. 불로 태워먹어야 한다. 그런 자에게 죄사함을 얻게 하신다. 그래서 세례는 피로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6절에서『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이 문장을 보면 예수믿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인식하기가 쉽다. 그러나 예수를 주로 받아야만 된다. 예수가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회개한 자를 피값으로 사는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 고린도후서 4장 5절에서『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을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36절에서『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예수가 주가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삶에서 주인이 되지 않으면서, 예수의 피로 죄사함을 받으려는 것은 어리섞은 일이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만 예수와 함께 살게 하신다. 이게 세례다. 그럴 때 예수의 피로 씻어주신다. 예수가 우리의 주가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역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했다. 세례(침례)는 물 속에 잠겨 죽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는 노아의 홍수때 물에 빠져 죽은 자를 가리킨다. 베드로전서 3장 20-21절에서『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우리도 노아 때 살았더라면 노아가 외친 의의 도를 들을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도 방주에 못들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인정하고 죽는 것을 나타낸다. 세례는 노아시대 물 속에서 죽었던 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이 회개다. 우리가 로마시대 살았더라면 내가 살기 위해서 예수를 못박을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이게 인간의 죄이고 우리의 죄다.
이 세상에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이기고, 심지어는 예수까지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수와 함께 죽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핵심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예수와 함께 완전히 장사되는 것이다. 이것이 세례다. 로마서 6장 3-4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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