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에베소서 2장 8-10절『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하늘의 생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 생명이 정말 있는가? 정말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만 믿는다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자를 말한다. 거듭난 자에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그래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주님은 히브리서에서 『내가 영원히 너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거듭나지 않고 주님을 영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귀에 잡혀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거듭나는 것은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회개가 바로 옛사람이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내가 옛사람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 십자가로 들어가 죄악된 삶이 죽어버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먼저 자신이 전적타락한 악한 존재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믿습니다』라고 수백번 외쳐도 거듭남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구원은 어디에서 어디로 구원받았는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히브리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 된다. 애굽은 세상을 나타낸다. 세상을 나온다는 것은 세상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간다는 것은 자아가 처리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8-10절의 말씀은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그 고기를 먹고, 홍해바다가 갈라져 그 엄청난 기적 속에서 애굽과 단절되는 그런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가나안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이 말씀이 거듭난 자를 말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하나님)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옛사람)를 부인하는 자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가나안으로 들어간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 되는 것이다. 구원의 핵심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십자가로 들어가는 자(속량)가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속량이며, 기업이 된다. 그리스도의 기업이 바로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만 히브리 백성은 하나님께 범죄했다. 로마서 6장에서 세례가 나오는데, 3-4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세례는 우리(옛사람)가 죽는 것을 나타낸다. 베드로전서 3장 18-19절에서 처럼, 노아의 홍수 때 있었더라면, 우리도 물에 빠져 죽은 자라는 것이다.

6장은 옛사람이 죽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건너뛰어서 7장을 읽으면,『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라고 말한다. 이 말은 반드시 6장의 의미를 읽고 깨달은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런데 6장도 읽지 않고 느닺없이 7장을 읽으면, 결과만 가지고 믿게 되는 것이 된다. 이 말은 광야에서 태어난 새생명이 가나안으로 들어갔지만 블레셋의 종살이를 하게 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래도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기준은 가나안을 말한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구원이지, 갈라진 홍해바다를 건너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은 옛사람들이 모세와 함께 광야에서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생명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타낸다. 구약시대 구원의 확신은 전쟁에서 나타난다. 요단강 앞에서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광야에서 단 한번 아말렉이 쳐들어왔을 때, 여호수아의 칼날에 달려있은 것이 아니라 모세의 두팔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팔을 들고 기도하면 이기고, 팔을 내리면 지는 것이다. 그러나 요단강 앞에서는 하나님이『두려워말라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했다. 가나안 땅에서는 적은 두려운 상대였다. 히브리 백성의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 천국가는 믿음은 가나안 땅에서 증명되는 것이다.『두려워말라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된다.

구약시대 믿음은 가나안에서 적을 죽이는 믿음이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다. 악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남을 살리는 믿음이 된다. 열매로 알라는 것이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 우리가 주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도 살리지 못한다. 주님은 우리를 나무로 아는 것이 아니라, 열매로 아는 것이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지만 여전히 광야에서 해매는 삶은 옛사람에 불과하다.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교회다닌다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출애굽도 하지 않은 사람들과 출애굽했지만 광야에 머물고 있는 사람, 거듭나서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으로 나누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믿음의 생활에서 그 열매를 보면 다 알게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다. 교회에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곳이 있다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출애굽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어린양의 피를 칠하면 장자의 죽음이 지나가므로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피만 강조하고 있는 현실이다.

광야에서도 예배가 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보호해 주신다. 그러나 광야에서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내적 생명이 변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음을 알려주신다. 애굽을 나와 1년이 지나서 유월절을 지키게하고, 정탐꾼을 가나안으로 보낸 것이다. 그러나 열정탐꾼은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너희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맹세하셨다. 정탐꾼 열명은 그 날 죽었다.『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이 믿음은 거듭난 자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옛사람이 죽은 새사람의 믿음이다. 나는 옛사람인가 새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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