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의 의미


요한1서 1장 7-9절『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여기에서 1장 9절의 말씀만을 보면 구원은 너무 쉬워보인다.

자백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받아드리는 죄의 자백과 인간이 하는 자백이 서로 공감되는 자백을 말한다. 자백은『호모로게어』라는 단어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 그 고백이 하나님께 어떻게 공감하게 여기시게 되는지 의 말씀이다. 공감하게 되면 죄를 사하시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윗왕이 부하를 죽음으로 몰아내고, 부하인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았다. 엄청난 죄를 지었다. 하나님이 다윗의 죄에 대해서 대해서 어떻게 느끼시는지, 다윗 스스로는 죄를 어떻게 느끼는지 다른 것이다. 수많은 교회 사람들도 자기의 양심과 죄책감으로 죄를 고백한다. 그런데 그런 죄들이 용서받았다고 생각될지는 모르지만, 정말 가슴에 와 닿는 그런 마음이 드는 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고백만하면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말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플라시보에 속아서는 안된다.
플라시보는 가짜 약이다. 의사의 말에 속지만, 약의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구원은 플라시보와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죄를 고백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해진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런다. 다윗은 그의 죄에 대해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느끼시는지 깨닫게 해 주셨다. 이게『호모로게어』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죄를 고백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주셨다고 믿지만 주님의 거룩한 빛이 비춰주셔서 그 은혜로 죄를 깨닫게 되지 않으면『호모로게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도 아니면서 죄만 고백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부인의 회개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식으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의 죄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대가를 지불하셨다. 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다윗을 분노하게 만들었다.『그런 자는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단이 오기 전에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은 것에 대해서 수많은 죄의 고백을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서 그게 회개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신다. 『그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그 자가 바로 다윗의 마음 속에 있는 죽어야 할 탐욕의 옛사람인 것이다. 우리도 양심의 죄책감으로 죄를 고백하지만, 하나님의 선한 빛 아래서 깨닫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하나님이 나단을 보내시어, 말씀으로 인하여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죽어야 할 옛사람을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 주신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죄의 고백은 하나님이 공감하시는 것이 아닌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죄의 문제에 대해서 죄의 고백과 용서만을 바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통해서 죽어야 할 옛사람의 속성을 발견하고, 옛사람의 옷을 벗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회개는 양심의 죄책감으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통해서 죄의 원인인 엣사람을 깨닫고,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회개는 repent(돌이키는 것)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기 때문에,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을 망령되이 부르면 사형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의해 죽으셨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그의 아들을 죽게 하신 것이다. 누구때문인가? 바로 인간들의 죄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손과 발이 못에 밖혀 죽으셨다. 그런데 그 죽음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위하는 죽는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회개는 죄와 허물에 대해서 회개해야만 한다. 죄는 원죄인 악(옛사람)과 허물(세상 죄)을 말한다. 그래서 엣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죄를 다 사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선한 빛이 비춰주셔서 내 속에 있는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의로운 자기 아들을 내어 놓으셨다. 로마서 3장에서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그 자는 죽어야 한다』고 대노했다. 머리 속에 있는 지식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구원에 이르는 지식은 온전한 삶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옛사람이 죽는 삶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이 선한 빛을 비춰주지 않으면 다윗이 그러했듯이 문둥병처럼 자신 속에 숨어있는 죄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나단 선지자가 된다.

오늘날 우리도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면 이것이 은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죄의 용서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너는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너는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옛사람은 죽지 않고 죄만 고백한다면, 나단이 오기 전의 다윗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윗이『그 자는 죽어야 한다』고 말할 때,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호모로게어』가 되는 것이다. 다윗이 이 자가 바로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시편 52편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호모로게어』의 고백이다. 다윗의 죄책감과 양심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죽어야 죄를 벗어나게 된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구약시대 죄인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서 모세 외에는 시내산으로 하나님을 뵈러 갈 수 없었다. 다가가면 죽는 것이다.『사람들도 동물들도 올라오면 다 죽는다』고 말씀하셨다. 십계명을 받는 그 산이 불붙은 것 같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죄에 대해서 그런 방법으로 표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단을 통해 다윗의 죄에 대해서 나타내시는 것과 시내산에서 모든 히브리 백성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그들의 죄에 대한 분노는 같은 것이다.『호모로게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실 때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섬기는 자는 그 죄가 삼사대까지 갈 것이라』고 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며, 죄인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시는 것이다. 『양 한마리를 훔친 자에게는 양 네마리로 갚으라』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중심으로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느끼시는『호모로게어』를 모르는 것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의로우신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들의 죄에 대해서 느끼시는『호모로게어』는 구약성경이나 요한계시록이나 변하지 않는다. 이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하늘과 땅을 불 살라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호모로게어』다. 그 자는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고백하게 되고, 죄에 대해서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로마서 3장 25-26절에서『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진노를 쏟아붓고 있는 것을 깨달을 때, 나의 마음은『호모로게어』가 되지 않으면 이 성경 귀절이 나에게 다가올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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