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3장 25-26절『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3장 25-26절의 말씀은 24에서 말하는『속량』으로 인한 것이다. 속량은 회개하지 않은 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즉 옛사람의 옷을 벗지 않는 자는 그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옛사람의 옷을 벗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주라』고 말할 수 없다. 주인도 아니면서 주라고 말한다면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으로 간다』고 말씀하신 것을 상기하게 한다. 하나님의 뜻은『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돌아가려면 옛사람의 옷을 벗어야만 되는데, 벗지도 않으면서 회개했다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회개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예수를 영접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짜 복음에 속고 있는 것이다.
영접기도는 거듭난 자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므로 회개한 자가 아니면 만날 수 없다. 옛사람의 옷을 입고 있는 한 만날 수 없다. 옛사람의 옷을 벗고, 양의 가죽옷을 입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것이다. 날씨가 추워서 옷을 여러 벌 입듯이, 옛사람의 옷도 입고, 양의 가죽옷도 입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만 입어야만 한다. 엣사람의 옷을 벗는 것이 회개라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한 자가 가나안으로 들어간다. 가나안이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옛사람의 옷을 벗은 자 만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애굽을 나오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홍해바다는 세상과 단절을 의미한다. 그래서 광야에서 회개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과 단절된 곳이다. 세상을 벗어나 교회로 인도된 것은 회개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애굽에서는 히브리인의 죄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셨다. 애굽에서는 어린양의 피를 칠한 히브리인을 제외한 모든 장자는 다 죽었다.
어린양의 고기를 먹고, 그 피를 칠하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광야로 나와 하늘의 모형인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고, 맛나를 먹으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를 받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다. 그러나 히브리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쌓았다. 그들은 애굽을 나오는 믿음은 있었지만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은 없었다. 교회로 인도되어 예수의 피가 자신의 모든 죄를 사하신다는 것을 믿기로 하였지만, 옛사람의 옷을 벗는 거듭난 자의 믿음은 갖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
롯의 아내는 소돔성을 나올 믿음은 있었지만, 소알성에 들어갈 믿음은 없었다. 이것은 처음에 잘 믿다가 나중에 넘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시작이 잘못된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잘못된 복음을 믿고 있다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예수의 피만 강조하다보니, 옛사람의 처리를 알지 못한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히브리 백성이 출애굽하여 홍해바다를 건너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온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여호수아(헬라어:예수)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야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믿음은 내가 믿기로 시작했지만, 하늘로부터 믿음이 와야만 한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자신이 예수를 믿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이 없으면 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아브람이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제물사이로 오고 가는 하나님의 불을 보았지만, 영원한 언약(할례)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고 칭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왕이 혼인잔치에 아무나 초청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으면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다른 기름통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다섯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예수님은 『부르심을 입은 자는 많으나 택한 자는 적다』고 말씀하신다. 교회 안에 앉아있다고 모두가 택한 자가 된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택한 백성이 된다. 물에서 장사지낸, 옛사람의 옷을 벗은(세례받은) 자가 택한 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이 그리스도로 인도하시는 것처럼, 교회에 앉아 있지만 옛사람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만, 옛사람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갈 수 있다. 옛사람의 옷을 벗어야만 속량된 자가 된다. 옛사람의 옷을 벗고, 속량된 자가 예수의 피로 죄가 사해지는 것이다. 죄의 용서가 먼저가 아니라 속량이 먼저다. 속량이 되면 신분이 바뀌게 된다. 그래서 로마서 3장 25-26절이 적용되는 것이다.『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이게 십자가 사건이고, 회개하는 자가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은 십자가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곳이다. 정오에 하늘이 깜깜해졌다고 한다.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한다. 죄인은 이렇게 십자가에서 다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그러나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죽은 자라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죽은 자가 된다. 베드로는『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부인했다. 예수를 믿었지만 부인한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끔『나는 대속물로 왔다』고 말했다. 대속물이 바로 속량을 나타낸다. 피값을 지불하고 사는 것이다. 제자들은 대속물의 의미를 몰랐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자가 유일하게 막달라 마리아였다. 향유의 옥합을 깨고 장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님은『이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누가 더 크냐』라고 다투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면, 모두가 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서기 전의 제자들과 같은 모습이 된다.
회개하지 않은 자, 옛사람의 옷을 벗지 않는 자는 자신이 하나님께 죽을, 절망적인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될 수 없다. 성경에서 소개되는 좋은 말씀만 붙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와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여전히 옛사람의 옷을 입고 있다면 다 예수를 버리는 자가 된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될 수 없는 믿음인 것이다. 마치 열정탐꾼이 가나안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들어가면 죽는다』라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때 방주는 어리섞은 나무상자 정도로 보이는 것이다. 베드로만 절대 부인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은『너는 세번 부인한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옛사람의 옷을 벗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옛사람의 옷은 쉽게 벗어지지 않는다. 그게 자신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도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제자들은 하나님 앞에서『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십자가에 선 예수를 다 부인한 셈이다. 옛사람의 옷을 벗지 않으면, 회개한 적도 없는 사람이며, 예수를 부인할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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