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사도행전 15장 36-41절『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두 사람이 다툰 이후부터 바나바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바울만 등장한다. 바울은『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다. 13장 1-2절에서『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에서 앞부분의 헬라어 원문에는『안디옥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는 교회가 있으니』라고 되어 있다.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쓰임받는 사람들이었다. 바나바와 시몬과 루키우스라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사울이 참여한 것이다. 첫번째가 바나바고, 마지막이 사울이었다. 그런데『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여기서 바나바와 사울을 분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서 구별하라는 뜻이다.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모두 들었다. 13장 3절에서』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두 사람을 구별한 것이다. 그래서 두사람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갔다. 그런데 13장 5절에서『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여기에서 요한이라는 자가 바로 마가다.
그들은 마가를 데리고 간 것이다. 그런데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3장 13절에서『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이 마가는 예루살렘에서 왔으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이다.
12장에서 예루살렘에서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는데, 성도들이 기도했다. 그런데 그 기도하는 집이 바로 마가의 집이었다. 12장 12절에서『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이때 베드로가 기적으로 풀려나서 문을 두드린 집이 바로 그 집이다. 마가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안디옥으로 가서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했지만, 어쩐 일인지 베드로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베드로전후서에 보면 베드로의 동역자가 마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부터 마가는 바나바와 바울과 멀어진 것이다. 사도행전 13장에서 마가가 바나바와 바울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바울이 마가를 버린 것이다. 바울은『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여 바나바와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바울은 실라를 택하게 된다. 사도행전 15장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할례의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물으러 갔는데, 15장 22절에서『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실라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파송받은 자였다. 27절에서『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이런 일들을 안디옥에서 다 처리하고 난 뒤, 15장 32-33절에서『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그런데 34절 (없음)에서 주석에 보면,『실라는 안디옥에서 그들과 유하기를 작정했다』고 한다. 실라가 다른 형제들은 예루살렘으로 다 돌아갔는데, 그는 안디옥에 남겠다고 한 것이다. 마가는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데리고 왔는데, 도중에 가버렸지만, 오히려 실라는 안디옥에 남겠다고 한 것이다. 바울은 마가를 예루살렘에서 다시 부르지 않고, 실라를 데리고 가겠다고 한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15장 35절에서『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13장에서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내게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는데, 안디옥으로 부터 그들은 따로 세워지지 않은 것이다. 성령께로 그들을 분리해야만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안디옥교회에서 하는 사역에 엮여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피차 다투게되면서 안디옥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바나바는 다소에 홀로 있던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와서 다른 동역자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었다. 바나바는 사람 세우기를 원했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였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가 바나바의 누이인 셈이다. 바나바는 사람 세우기를 원해서 마가를 데리고 오자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주님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바나바는 사람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은 실라도 있는데, 굳이 마가를 데리고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의를 택하고, 바나바는 사랑을 택한 것이다. 이 일들이 성령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15장 40절에서『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바울은 비록 마가를 택하지 않고 실라를 택했지만 그가 잘한 것인지 형제들에게 여쭈어본 것이다. 바나바는 사람 세우기를 원해서 마가를 택해 다른 곳으로 갔지만, 다른 형제들에게 묻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바울과 바나바의 차이다.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라는 말은 사도행전 14장 26절에서『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이전에 바울과 바나바가 사역을 하다가 안디옥으로 왔었는데, 안디옥이『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는 것이다.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이라는 것이 바로 성령께서 말씀하신 사역을 위해 따로 세우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은 곳이 바로 형제들에게 부탁함을 받은 곳이라는 것이다. 이게 바울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성령이『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그래서 교회가 성령의 하신 말씀대로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낸 것이다. 이게 교회가 주의 은혜로 부탁함을 한 것이다.
여기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지시함과 교회의 부탁함이다. 그리고 사도들의 이 같은 부탁에 어떻게 행동하는가이다. 이게 바로 사도행전의 의미일 것이다. 성령이 지시하고 교회가 성령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할 때, 교회는 갈라지게 된다. 의를 주장하는 바울이나 사랑을 주장하는 바나바나 성령의 지시함을 순종하지 못할 때, 서로 갈라지게 된다. 바나바도 열심히 사역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나바의 모습은 이후에 성경에서 사라지게 된다. 형제들의 부탁함을 받은 바울만이 성경에서 사역을 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교회는 주의 몸이다. 오늘날 가짜복음을 전하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참된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주의 몸이다. 그래서 교회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참된 은혜의 성도들이 된다.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은 참 성도들에 의해서 열매맺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의가 먼저이니 사랑이 먼저이니 라고 논하기 전에 성령께서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상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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