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새사람의 믿음이다
로마서 10장 6-9절『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이 쉬워보인다.『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오늘날 교회에서는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않은 자가 혼재되어 있다.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오해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위의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자의 경우, 거듭난 자는 이 말씀이 적용되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적용되지 않는다. 거듭난 자는 하늘로부터 태어났으므로 적용되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율법 아래 있어, 이 말씀이 적용되지 않는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만 한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그래서 영접기도는 교회로 인도되어 부르심을 받아 회개의 기회를 찾은 것이지, 택함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접기도를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면 거짓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요한1서 1장 9절에서『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듣는 자의 입장에서는 죄를 고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것임을 믿는다. 이 말씀은 거듭나지 않은 자에게 해당한다. 그래서 죄를 자백하고, 옛사람의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죄를 자백하고 옛사람의 옷도 벗어야만 한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성경의 어떤 귀절을 적용해서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마치 죄를 고백만 하면 구원받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례를 받고 거듭난 자도 이 말을 적용시키려고 오해한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의 세례교인들이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 거듭났다고 하면서 매일 죄를 고백하면서 살아야만 하는가? 로마서 8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하나님은 거듭난 자에게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많은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을 주라고 말하면서도 이 말씀을 믿지 않는다. 가나안 땅 앞에서『하나님이 약속의 땅의 주시리라』라고 약속하셨는데, 열명의 정탐꾼은『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이성과 경험이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믿음직하기 때문이다.
『거듭났다고 하지만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는가요』라고 반문한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는『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세례받고 거듭났다』고 하면서도『날마다 죄를 고백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실제로 거듭나지 않았거나, 아니면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믿지 않거나 두 종류다. 거듭나지 않았다면 회개하여 옛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그러나 거듭났으면서도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성령훼방죄를 범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8-9절에서『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그는 성령을 뜻한다. 성령이 와서 죄에 대하여 책망한다는 것이다. 회개하고 거듭난 자는 부모로부터 받은 몸이 죽고,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났는데, 로마서 6장 7절에서는『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회개하는 자(옛사람이 죽은 자)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단 한번으로 족하다. 그런데 거듭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례받고 거듭난 자는 죄의 문제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옛사람이 살아나지 않도록 깨어서 싸워야 한다. 이단들은『하나님이 모든 죄를 사했으므로 더 이상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옛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면 다 가짜가 되는 것이다. 죄의 문제가 아니라 옛사람(원죄)이 처리되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옛사람은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죽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옛사람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마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옛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세례교인들은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고 있다. 죄의 용서가 아니라, 옛사람이 죽었는지 깨어『날마다 죽노라』를 통해서 승리하는 삶이 되지 않으면 곤란하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성령이 떠나 갈 것이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에서『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성령의 법을 따른다고 말하니 이게 불법인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열처녀의 비유가 나온다.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의 비유다. 모두가 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열처녀가 신랑을 기다리다가 다 졸았다. 그런데 신랑이 오신다는데, 미련한 다섯처녀는 등불이 꺼지는 것이다. 그들이『기름을 나누어달라』고 하니, 슬기로운 다섯처녀는『우리 쓰기도 부족하다』며 거절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모습이 아니다. 서로 기름을 나누어 써야되는 것 아닌가? 성경은 사랑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의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는 것이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갔을 때 신랑이 와서 혼인잔치 집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혀버렸다. 하나님은 구별하신다. 마태복음 25장 11-13절에서『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문이 닫히기 전까지는 미련한 다섯처녀와 같은 수많은 교회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여기며 살고있다. 그런데 예수님이『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옛사람이 죽고 돌아오라』고 하시는데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이다. 여전히 예수의 피만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양을 매일 죽일 생각만 하고 있다. 매일 어린양을 죽일 것이 아니라,『날마다 죽노라』가 되어야만 살 수 있다. 내가 주인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구원받는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만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이성과 경험의 자기를 더 믿고 있는 것이다. 삼년간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가 십자가 앞에선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했다. 자기의 이성과 경험을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될 것이다. 자기(옛사람)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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