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요한복음 8장 30-32절『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은『내 말에 거하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유대인들은 8장 33절에서『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라고 반문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지 않으면 죄의 종이라는 것이다.
구원은 죄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죄의 종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다.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만 한다. 예수님의 종이 되려면 말씀에 거해야 된다.『거해야 된다』는 것은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속에서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8장 37절에서『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말씀이 그들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40-41절에서는『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44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지 않으므로, 일어나는 일들을 유대인들에게 설명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말씀에 거하지 않으면, 죄의 종이 된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길지라도, 말씀이 거하지 않으면 다 죄의 종이며, 예수를 죽이는 자가 된다는 말씀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한 신앙인라고 들을 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 기적을 경험하고, 성령체험을 해도 말씀이 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열정탐꾼은 가나안 땅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거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애굽으로부터 나온 모든 백성들이 다 그들의 말을 믿었다.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애굽의 군사들이 다 죽는 그런 경험을 해도, 말씀이 거하지 않은 것이다.『가나안 땅을 주리라』고 말씀했지만 믿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을 해도, 연합되지 않고 바라만 보는 것이다. 그 시작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다.『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그러나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라는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선악과를 먹고 말았다. 옛뱀 사탄이 속였다.『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한 말을 받아 들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지만 말씀이 거하지 않으면, 모두가 옛뱀에 속아서,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기 위해서는 자기라는 생각을 말씀 앞에서 굴복시켜야만 거하게 된다.『자기의 생각』이 말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육으로부터 형성된 자기의 생각은 하나님 말씀이 거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육의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망이 된다. 요한복음 8장 45절에서 예수님이 자기를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날도 같을 수 있다. 교회에 앉아 있으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말씀이 거하지 않으면 예수님으로부터 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방주에 구원받은 사람은 8명이었다. 가나안으로 들어간 자는 광야에서 태어난 자를 제외하고는 단 두명이었다.『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한다. 구원은 말로만『내가 믿습니다』라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거해야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에게 있다. 말씀 앞에서 나의 생각을 버려야만 된다.
요한복음 8장 49-50절에서『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진리를 말하는데도, 예수님을 귀신들린 자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진리를 말하는데, 이단 취급하는 이유가 된다.
51-53절에서는『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예수님이『말씀을 지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니 이제는『너는 누구냐』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54절에서 더 나아가『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라고 믿고 살아왔고,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고 믿게 되었는데, 예수님이『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말하므로 분노가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59절에서『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병을 고치고, 성령체험하고, 기적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믿는 그런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아 회개의 기회를 갖는 믿음이 된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고 옛사람의 옷을 벗는 것이다. 회개하면 삶속에서 주님의 말씀이 거하게 된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무엇이 죽었다는 것인가?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성경은 예수를 믿으면, 죄에서 벗어나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죄에서 벗어나려면 옛사람이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는 예수믿으면, 그의 피로 죄사함을 얻는다고 말한다. 옛사람의 죽음을 말하지 않으면, 다 거짓복음이 될 수 있다. 회개의 의미가 너무나 편협되게 인식 되도록 만들고 있다. 죄의 고백과 반성 정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이다.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를 함에 있어서 옛사람의 옷을 벗는 것이 빠져있다면, 반쪽의 회개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2절에서『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회개는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의 옷을 벗는 것이다. 옛사람이 죄를 불러 일으키게 만든다.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아무리 죄를 고백하고『예수님이 나의 구주시요, 나를 위해 피흘려 죽었다』고 믿어도 소용이 없다. 옛사람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입는 자가 예수가 구주가 되시는 것이다. 그 열매는 삶속에서 말씀이 거해야만 맺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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