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자
사도행전 27장 25절『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사도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쇠사슬로 채워져 있는 죄수가 되었다. 그 때 유라굴라라고 하는 광풍이 불었다. 낮에는 해가 보이지 않고 밤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물이 배로 들어와 물을 퍼내고 지쳐서 며칠동안 먹지도 못했다. 그 상황이 27장 20-24절에서 말한다.『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예수가 주인인 사람은 주님의 사명에 따라 살게하신다. 주님은『너는 가이샤 앞에 서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님은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하셨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경을 읽어서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라고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사명을 이루라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는 것이다. 사명이 생명보다 중요하게 다가와야 한다. 사명이라는 말은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使命』심부름과 목숨으로 이해된다. 헬라어로는 디아코니아(diakonia)라는 말로 섬긴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심부름을 받은 섬기는 목숨이라는 말씀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그리고 그 사명은 바로 20장 27절에서『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주를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될 것이다. 20장 24절에서『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주님은 풍랑 속에서도 바울이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신다. 로마의 가이샤 앞에 서는 것이다. 풍랑을 가라앉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가야할 방향을 정확히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풍랑 속에서도 주님의 관심은 영의 구원이었다.『이 사람들을 너에게 붙여주리라』는 것이다.『너를 보고 나를 알게되리라』는 것이다.
바울은 풍랑 속에서도 주님을 알았다. 풍랑 속에서도 그는 평강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이 말을 듣고 관원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바울을 풀어주게 했다. 결국 배는 풍랑에 부숴졌지만 그들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섬으로 들어갔다. 그들 모두가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주님의 뜻은 사명을 따라 사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해주신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성경을 수없이 많이 읽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주가 되는 자가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된다. 계시의 영이 역사하셔서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뜻은 영의 구원에 있다. 그러나 영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그 사명이 변질되면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것이다. 전도는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전 세계를 다니면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사명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과거에 사라센 제국에 의해서 유럽이 초토화된 적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러시아 정교회는 고난받은 교인들이 러시아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결과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와 야합되면서 정치와 일치되는 교회가 되어 버렸다. 교회가 제정 러시아와 하나가 되어버렸다. 성경은 이것을 영적 간음이라고 말한다. 러시아는 최초의 공산국가가 되었다.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사도바울이 에베소서 교회에 편지하는 내용, 에베소서 6장 마지막 부분에 킹 제임스 바이블을 기록하게 된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온 수용원문(TR텍스트)에『두기고의 편에 로마로부터 에베소 교인에게 쓰여진』이라는 문장이 있다. 이 편지를 전달한 사람은 두기고가 된다. 바울이 로마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쓰는 것이다. 사도행전 18장 24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오기 전에 아볼로(아폴로라는 신의 이름)라는 사람이 에베소 교회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kjv에는 예수에 관한 것이 아니라 Lord㈜ 로 나와있다.『This man was instructed in the way of the Lord』이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18장 26절에서『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그래서 그는 18장 27-28절에서『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성령이 온 후로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했는데, 아볼로는 성경으로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언했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성경 지식으로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 바울이 하나님을 아는 그런 것과는 다른 것이다. 성경을 안다고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죽기 전에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야만 한다. 은사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아버지가 나의 주가 되는 자 만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가 주가 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자기 아버지도 아니면서 나이 많은 사람을 우대한다고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가 주가 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사무엘상 3장 12절에서『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엘리의 아들들은 성전에서 있었지만 성전에서도 죄를 지었다.
3장 29절에서『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라고 하나님이 엘리의 책임을 물었다. 엘리와 그의 집안의 사람들은 다 비참하게 죽었다. 3장 7절에서『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영생은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17장 3절은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이다. 요한복음 13장 36절에서『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를 붙잡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을 말해주신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이렇게 편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왜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로마교회에 가는지를 모르는 것이다.『십자가의 도』를 전하지 않는다면 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사명을 잃어버리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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