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가 말하는 구원의 기준
유다서 1장 5절『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자 중에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약200만명 중에 두명만 믿었으므로, 거의 대부분 안 믿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광야에서 멸하셨다.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그 고기를 먹고, 홍해바다를 건너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지만 멸망당한 이유는 믿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무엇을 믿지 않았는가? 가나안에 들어가면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정탐꾼의 말을 들으므로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열정탐꾼의 말은『들어가면 아낙자손에게 죽는다』는 것이다. 기독교 교인이면 다 아는 이야기다.
유다는 성도들에게 힘써 싸워라고 짧게 편지를 했다. 구원의 믿음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시는 것이지만 힘써 싸워 이겨야만 한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했다. 니고데모는『사람이 어떻게 모태에 들어가 다시 태어납니까?』라고 질문했다. 말이 안된다는 뜻도 있지만,『어떻게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섞여있다. 그래서 예수님이『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받을 수 없었다. 예수님은『땅의 일도 믿지 않는데, 하늘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거듭나는 것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에 요한복음 3장 14-15절에 대해서 말했다.『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여기에 15절의 말씀이 niv『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와 kjv『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의 차이가 있다. 『멸망치 않고 』라는 말이 kjv에는 있지만, niv는 빠져 있다.
니고데모는 3장 14-15절의 말을 들은 후에 예수님을 떠나가 버렸다. 모세가 놋뱀을 든 이야기는 민수기 21장의 이야기다. 뱀의 독이 퍼져 죽어가는 자가 놋뱀을 바라보면 산다는 이야기다. 출애굽해서 1년 만에 유월절을 다시 지킨 때 부터의 이야기가 바로 민수기다. 민수기 13장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내고, 14장에서 하나님이 열정탐꾼의 말을 믿은 사람들은 절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맹세하셨다. 14장 11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회개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말씀이다. 이 말은 모세가 구하여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이다. 애굽을 나오는 믿음은 있으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은 없는 것이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날은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에게『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의를 먼저 말하지 않고 사랑을 먼저 강조한다면 거짓복음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의는 모든 인간이 심판 아래,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17절의 믿음은 이러한 사실을 믿음으로, 뒤에 있는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뒤에 있는 믿음이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의 믿음이다. 바로 회개를 말한다. 회개는『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생각하는 육의 마음을 버리고,『들어가면 약속의 땅을 얻는다』라고 돌이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회개는 결과의 반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회개는 원인의 제거를 말한다.『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원인은 육적 자기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정말 회개하였다면 회개한 자는 자기를 위해서 살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가 되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는『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가 된다.
사람은 회개하여 다시 신령한 몸으로 태어나기 전까지는, 이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영의 몸을 가진 자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된다. 육(혼)의 몸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가 된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물의 의미를 제 각각 해석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을 의미한다거나, 죄를 씻는다거나 이렇게 해석하지만, 베드로전서 3장 20-21절에서 물의 의미를 말한다.『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물은 모든 사람은 노아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죽었을 것이라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물은 구원의 표』라고 말한다.『죽은 자라는 것의 인정표』다. 이것을 깨닫는 자만이 물이 구원으로 인도한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죽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자를 가리킨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여기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가 바로 마지막 부분의『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자만이 그렇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히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하나님의 의』아래 있는 자가 된다. 심판의 대상이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와 못박히는 말씀이 별로 없다. 사랑의 하나님을 강조한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사랑이 아니라 못박히는 일만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싸워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지만, 하나님의 의를 얻은 때는 100세가 되어서였다. 25년 동안 하나님 말씀 앞에서 죽은 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뜻대로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친척 롯을 데리고 나왔으며, 고향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라고 자기가 결정하는 모습을 본다. 하나님은『너에게서 난 자라야 상속자가 된다』는 말씀에 약속의 씨를 믿지 않고 이스마엘을 낳았다. 아브라함의 100세와 사라의 90세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삭을 낳는 믿음이다.
로마서 4장 17-22절에서『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아브라함이 99세때는 믿지 않다가, 100세때 믿음은 어떻게 된 것인가? 1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바울은 그 이유를 로마서 4장 23-24절에서 설명한다.『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을 믿는 그것』이라는 말씀이다. 구원의 기준인『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을 믿는 그것』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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