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약은 새사람에게 주어진 것
고린도후서 5장 17절『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새것이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5장 21절에서『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은 두가지가 있다. 부르심을 입은 믿음과 택하심을 받은 믿음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예수가 나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스스로 구원에 이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나를 위해 죽었으며, 또한 그 죽음이 나의 죽음임을 깨닫는 자의 믿음이 된다. 그의 죽음과 나의 죽음이 연합되는 자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새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구약에서는 히브리 백성이 광야에서 옛언약을 받았지만, 신약에서는 거듭난 새사람이 새언약을 받게된다. 고린도후서 3장 3절에서『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거듭난 새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3장 6절에서『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여기서『율법 조문』은 헬라어로 그람마(영어:그램머)다.
사람들은 율법이 죽이는 것으로 생각해서 은혜가운데 있으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율법 가운데 죽어야만 한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예수로 인해서 자신이 율법 가운데 벗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예수와 연합하여 그도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은 자는 율법을 벗어날 수 없다. 갈라디아서 2장 19절에서『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예수와 함께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3장 7-9절에서『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율법은 정죄의 직분이지만, 영의 직분은 의의 직분이라고 한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여전히 율법 가운데 있지만, 택하심을 입은 자는 영(성령) 가운데 있는 것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많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르심을 입은 자는 거듭난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복(의의 옷)을 준비하지 않은 자이기 때문이다.
3장 14절에서『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수건이 율법이라는 것이다. 마치 성소의 휘장처럼 덮어서 죄인들은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휘장이 찢어졌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수건이 벗겨지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새언약에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새언약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과 예수 안에 있는 것은 다른 것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는 것을 알지만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려면 새언약의 표를 받아야만 한다. 새언약의 표는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자기부인의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이 예수의 피로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부르심을 입은 자도 자신은 회개했다고 말한다. 회개는 옛사람이 죽은 자를 말한다.
히브리서 8장 6-10절에서『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새언약은 예레미야가 말한 것을 인용한 말씀으로『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는 동안에도 황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 우상은 그들 마음에 있는 것이다. 우상은 다름 아닌 옛사람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우상이다. 마음에 우상을 버리지 않으면,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지 않은 자는 하나님이 율법으로 정죄하신다. 무신론자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다고 믿는다 하더라도,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부르심을 입은 자에 머무르게 된다. 택하심을 입을 수 없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옛사람을 개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애굽기는 출애굽하여 첫해 쓰여졌지만, 신명기는 1장 3절에서 광야생활 40년에 쓰여진 것이다. 그때가 11월이었으므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약 한달 밖에 남지 않았다. 모세를 제외하고 옛사람은 광야에서 다 죽은 상태였다. 그래서 모세는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신명기 29장 1절에서『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호렙산에서 언약을 받았다. 그러나 모압 땅에서 언약의 말씀을 받았다. 신명기 30장 14절에서『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으로는 유대인들이『지킬 수 없는 것』이었으나, 이제 새사람인 너희들은『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말씀을 의지할 때 싸울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육신의 죄성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하나님은 악(옛사람)과 싸우라고 하는데, 교회는 악과는 싸울 능력이 없으므로, 죄를 없애기 위해 예수의 피를 계속 요구한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0장 8절에서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한다.『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이 말씀은 회개하여 거듭난 새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라는 단어다.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성경 말씀이 로고스가 되지만, 택하심을 입은 자에게는 레마로 다가온다.
로마서 10장 9절에서『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예수를 주로 시인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이게 회개다. 예수가 주가 될 때, 믿음이 선물로 주어진다. 이게 택하신 자의 믿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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