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언약과 새언약
민수기 13장 31-33절『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는 출애굽 후 1년이 지나서 첫번째 유월절을 지킬 때의 이야기다. 애굽을 나와 홍해바다를 건넌 것을 기억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열정탐꾼은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는데, 교회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열정탐꾼들과 같이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는『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하셨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러나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들이다.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와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자와의 차이는 자기를 부인하는, 죄악과 싸우는 자인가 아닌가의 차이가 된다.
주의 명령은 은혜와 연결된다. 회개하고 은혜가운데 있는 자는 주의 명령을 순종하게 된다. 예수님은『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고 하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다. 가나안 땅에서의 아낙자손은 바로 자기라는 옛사람일 것이다. 예수님은 또『너희가 내 말 안에 거하면 내 제자가 되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주라고 믿는다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가장 중심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주라고 말을 하면서도 일상을 통해서 자기가 주인인 삶을 산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부르심을 입은 자는 육의 눈에 반응하지만 택하심을 입은 자는 영의 눈에 반응한다. 부르심을 입은 자와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양과 염소로 갈라진다.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로 갈라지는 것이다.
믿음은 보는 것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들음에서 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보는 것을 통해서는 믿음이 나오지 않는다. 보는 것은 『아낙자손을 보는 순간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반응하는 것이다. 육의 눈으로 반응하는 자는 반드시 넘어지게 된다.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으며, 열정탐꾼이 그러했다. 눈으로 본 것 때문에, 주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육신으로 판단하고 경험한 것은 주님이 하신 약속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주님은『너희가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하니 토하여 내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육신의 눈인지, 영의 눈인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다. 그리고『내게서 불로 단련한 금을 사라 흰옷을 사서 입으라 안약을 사서 발라보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들은 다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는 육에 반응하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영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민수기 14장 11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말씀하셨다.『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한 열정탐꾼을 믿은 사람들은 얼마 전에 반석을 쳐서 물을 마신 자들이다. 또한 홍해바다를 건넌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14장 30절에서『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부르심을 입고 교회로 왔지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들은 결코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택하심을 입은 자가 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가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된다.
신명기 29장 1절에서『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시내산에서의 언약과 모압 땅에서의 언약의 말씀을 말하고 있다. 시내산에서의 언약은 출애굽한 사람들에 해당하지만, 언약의 말씀은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에게 주신 말씀이다. 29장 12절에서『네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하시는 맹세에 참여하여』여기서『언약에 참여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건너간다』는 뜻이다. 영어성경에도『enter』로 번역되었다. 이 말은 가나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래서『히브리』 라는 말이『건넌 자』라는 뜻이다.
신명기 29장 13절에서『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그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호렙산에서 세운 언약은 약속이지만, 모압 땅에서 세운 언약의 말씀은 맹세라는 것이다. 29장 14-15절에서『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이니』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말씀이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주신 것은 언약이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자에게는 맹세라는 말이다. 가나안, 즉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에 해당한다.
신명기 29장 19절에서『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여기서『저주』라는 말이 히브리어로『맹세』와 같은 단어(알라)다. kjv는 curse(저주), niv는 oath(맹세)로 번역했다. 하나님이 출애굽한 백성에게 주신 약속을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저주가 되신 것이다. 그러나 새사람에게는 맹세가 되신다.
오늘날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을 맹세하시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약속을 주셨어도 믿지 않으므로, 저주의 말씀이 되신다. 구원은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그래서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이 올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사는 자가 된다. 다시 사는 자가 신명기의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과 같은 의미다. 회개의 열매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옛사람의 죽음이다.
예레미야 31장 1절에서『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새 언약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고 31장 32-33절에서『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새언약은 마음에 새긴다는 것이다.『내 언약을 깨뜨린 것』은 가나안 땅 앞에서 열정탐꾼의 말을 듣고 모두가 그 말을 믿으므로 언약을 깨뜨렸다.『그 날 이후』라는 말은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날이다. 신약에서는 오순절을 말한다. 이 말씀은 로마서 1-10장에서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부르심을 입은 자와 택하심을 입은 자의 믿음은 서로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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