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


히브리서 6장 1-3절『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여기서『그러므로』는 5장의 마지막 부분과 연결된다.『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때(크로노스:Χρόνος)는 시간의 개념이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대상은 거듭난 자들이다.『초보』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본적 사항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6장 1절에서는 초보를 버리라고 한다. 거듭난 자도 양육을 받아서 교사가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그렇지 못한 상태를 말하고 있다. 베드로전서2장 2절에서 『갓난 아기들처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이 말씀은 niv를 번역하여, 갓난 아이가 신령한 젖을 먹고 자라야 구원에 이르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kjv는『as newborn babes, desire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that ye may grow thereby:』거듭난 자도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6장 5-6절에서『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여기서 하나님의 선한 말씀은 레마라고 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원래 거듭나지 못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지만, 자기부인의 회개를 통해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것이다. 그러나 신령한 몸으로 다시 태어난 거듭난 자가 배도의 길을 걷는다면, 다시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교회 안에서 정말 거듭난 자라고 생각하는가? 너무나도 중요한 말이다.『믿기만 하면 거듭났다』고 생각하면 곤란한 것이다. 거듭난 자가 타락한다면 다시는 새롭게 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날마다 죽은 자같이 되라는 것이다.
또한『싸워라』고 한다. 거듭났다고 하면서 싸우지 않고 계속 보혈의 피를 요구한다면 거듭난 자가 아닐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 땅에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거듭나는 자가 되는 길이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서『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거듭남은 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주신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히는 삶을 갈 뿐인 것이다. 그리고 죄악과 싸워 피흘려 승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산다고 하는데, 그들은『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했다. 아낙자손과 싸울 마음이 없는 것이다. 시작도 해 보지 않고, 주저 앉아버린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도는『로고스』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도를 다시 닦지 말라고 하신다. 닦지 말라고 하시는 내용이『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의 회개, 신앙과 세례와 안수, 죽은 자의 부활, 심판에 대한 교훈들』이다. 왜냐하면『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는 것이다. 초보의 수준에 머물지 말고, 교사가 되는 수준에 이를 때에 처음 가졌던 믿음을 견고히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초보라는 것은 구원의 확신이다. 히브리서 3장 14절에서『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우리 말 성경은『확신한 것』이 목적격이 되어있지만 kjv는『For we are made partakers of Christ, if we hold the beginning of our confidence stedfast unto the end;』(우리 확신의 시작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시작이 초보라는 말이다. 그래서 구원받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된다.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한다. 출애굽한 백성들처럼 마지막에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말한다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3장 15-16절에서『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출애굽한 히브리인들이 온갖 기적을 경험하고 갈라진 홍해바다를 건넜지만, 광야에서 다 죽은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은 구원의 시작일 뿐이다. 구원의 확신은 출애굽하여 홍해바다를 건넌 사람들이다.

히브리서 4장 1절에서『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이 말씀의 대상은 홍해바다를 건너 광야에 이른 사람들이다. 4장 2-3절에서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이미 믿는 자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말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가 거듭난 자다.

구원의 확신은 출애굽하여 광야를 나왔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에 결부될 때 구원받는 믿음으로 나타난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홍해바다를 건넜지만, 칠일 만에 물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하나님은 반석을 쳐서 물을 먹이게 된다. 이것을 고린도전서 10장 1-5절에서 바울이 해석해 준다.『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구원의 확신이 구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상황이 자신을 어렵게 할 때 넘어질지도 모른다. 끝까지 그 확신을 부여잡지 않으면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히브리서 3장 12-13절에서『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