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가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
마태복음 5장 5절『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성경에는 순서에도 영감이 있다. 먼저 영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그 다음에 온유한 자가 되는 것이다. 영이 가난하다는 것은 영이 갇혀있어 상하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저히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애통하는 것이다. 갇혀있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을 떠난 자임을 고백하고, 회개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자가 된다. 이게 온유한 자다.
영이 가난한 것, 애통하는 것, 온유하게 되는 것은 바로왕에 묶여 있는 것과 부르짓는 것과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일치한다. 온유함을 얻는 것이 주의 말씀에 반응하는 거듭남이다. 온유함은 거듭난 자가 갖는 생명이다.『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이 말씀은 거듭난 자를 주님이 죄를 용서해주시고, 씻어주셔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기는 자가 될 때 주님은 흰옷을 입힌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이 말씀은 거듭난 자의 모습일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죄악으로 둘러싸여 있는 현실적 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신다. 이기는 자의 삶을 나타낸다.
온유한 자에 대한 말씀은 시편 37편에서 나타난다. 시편 37편 9-11절에서『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9절에서의『악인은 없어진다』는 말은 1-2절에서『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하신 말씀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서 온전히 주님께 복종할 때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다. 오늘날도 거듭난 자는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복종되는 삶이다. 9절에 이어서 나오는 우리말로『소망한다』는 말로 번역되었지만 kjv는『기다린다』라는 말이다. 『For evildoers shall be cut off: but those that wait upon the LORD,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시편 37편 3-5절에서『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여기서『맡기라』는 말은 가나안에 들어가면『길갈』이라는 명칭이 나오는데,『돌을 굴리다』라는 단어의 명사형이다. 즉 여호와와 함께 굴러가는 것을 뜻한다.
온유한 자는 시편 37편에서 처럼 오직 여호와를 기다리며, 여호와와 함께 굴러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악한 자를 바라보지 말고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다. 악한 자는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오직 주님 만을 의뢰하는 자를 아시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37편 6절에서 처럼『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편 69편 1-21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의 말씀이다. 21절에서『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26-28절에서는『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하나님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를 우리가 사랑할 때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반대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의 구원을 위해 말씀하신 것이다.
시편 69편 29-32절에서『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영이 가난하고, 애통해하는 자가 하나님을 찾아 거듭나게 된다. 하나님은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이사야 66장 2절에서『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여기에서도 영이 가난하고 통회하는 자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영이 왜 갇혀있는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통회할 수 없다. 히브리 백성들이 바로왕에 묶여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출애굽한 백성들이 광야에서 애굽을 다시 동경하기 시작했다. 그 때가 좋았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영이 세상의 육체에 갇혀있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면 광야에서 애굽을 바라보는 자와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영이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만이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애통하게 된다. 애통하는 자가 주님께 달려가게 된다. 주님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왜 자신이 갇혀있는가를 깨닫게 되고, 주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역대하 34장 27절은 요시아 왕의 이야기인데, 자기 아버지가 왕이 되자말자 2년 만에 암살당하고 겨우 8살에 왕이 되었다. 그는 16살 때부터 다윗의 하나님을 구했다. 그리고 요시아가 왕으로 재직한지 18년째(26세)에 성전을 정결케하는 일을 행했다. 그는 성전을 청소하다가 모세오경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모세오경을 읽자말자 자기 옷을 찢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래서 설명하는 것이다.『내가 이 곳과 그 주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이 말씀은 선지자가 와서 요시아에게 말한 내용이다.
『마음이 연약하여』가 영이 가난한 자의 모습이다.『옷을 찢고 통곡하며』가 애통하는 자의 모습이다. 이게 회개하는 자의 모습이 된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영이 갇힌 자라는 것을 깨닫고 통회하며 떨며,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으면 회개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 66장 2절에서『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를 기억나게 하신다.
오늘날 주의 말씀으로 인하여 떨며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성경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해서, 주의 말씀으로 떨게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예배를 엄숙하게 드려도 자기부인의 회개가 없다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영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만 자기부인의 회개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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